본문 바로가기
지적재산권보호

[지재권제도해설] 특허기술을 빼돌린다고?

by 변리사 허성원 2011. 12. 26.
소속 회사나 거래처의 "특허기술을 빼돌린" 사건에 관한 기사를 종종 보게 된다.

       "건설업체 특허기술 빼돌린 부사장 등 구속" 
       "현직 공무원이 육아휴직을 내고 위장 취업해 업체의 특허기술을 빼돌려 회사까지 세운.."
       "거래처 특허기술 빼돌려 수십억대 부당이익 챙겨"
       "회사 간부가 특허 기술 빼돌려"
       "반도체 특허기술 日 유출 일당 검거 이런 빌어먹을 일이.." 
       "특허기술 빼돌려 정부기금 ‘꿀꺽’ "
       ...

우리와 같은 전문분야의 사람들은 '특허기술을 빼돌렸다'는 말이 대충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알고 그러려니 이해하지만, 일반인들은 크게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그래서 이 기사의 문언을 씹어보기로 한다.

'빼돌리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람이나 물건을 '몰래 빼내어 보내거나 감추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대상물을 '빼돌렸다'고 하기 위해서는, 우선 특정의 보유자가 그 대상물을 지배하거나 '보유'한 상태가 존재하였어야 하고, 그 대상물을  타인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행위가 있어야 하며, 그런 타인의 이동 행위를 보유자가 몰라야 한다.

그리고 '특허기술'이란, 특허를 받은 기술로서 특허 대상인 발명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특허는 등록되고 나면 모두 공고가 된다. 발명 기술의 내용이 빠짐없이 공표되어 누구라도 열람하여 볼 수 있는 상태가 되며, 설사 등록되지 않더라도 출원일로부터 1년6개월이 지나면 자동으로 공개된다.
공개되지 않는 경우는 국방상 필요한 경우 등 특별한 경우일뿐이다.

그러므로, '특허기술'은 특정인이 비밀상태로 보유하거나 지배할 수 없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공개되어 인터넷 등을 통해 훤히 검색가능하기 때문에, 달리 이동하거나 숨길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며 누구 몰래 그런 행위를 하는지 여부가 문제되는 사안도 아니다.

따라서, '특허기술'을 '빼돌리는' 행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어떤 상황을 두고 '특허기술을 빼돌린다'고 할까?
특허권 자체를 부당한 방법으로 이전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사실상 예상하기 어렵다. 특허권의 이전 절차는 부동산의 경우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기사의 내용을 확인하여 보아도 이 사안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가장 유력한 상황은 아무래도 특허출원을 하기 이전의 상태에 있는 기술을 빼돌린 경우이다.
이 경우는 특허출원을 할지 여부가 결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특허기술'이라 불러서는 아니된다.
굳이 말하자면 '연구개발 성과' 혹은 영업비밀(노하우)이라 불러야 맞을 것이다.

실제로 정작 기사의 제대로 내용을 알고 보면 대개 "영업비밀의 침해행위"를 가리켜 '특허기술을 빼돌렸다'고 부르고 있다.
영업비밀의 문제는 사실상 특허와는 관련이 없다.
영업비밀은 보유자의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 기술적 노하우 등을 의미하며, 그 비밀 상태가 해제되면 피보호이익 자체가 상실되는 휘발성이 강한 권리이다.
이에 반해 특허는 공개를 전제로 하여 일정 기간 독점권이 부여된다.
코카콜라의 제법은 특허로 보호되지는 않지만 비밀 상태로 유지되기 때문에 수십년간 보호되고 있고, 그 비밀 상태가 유지되는 한 사실상 영구히 독점할 수도 있다.

그리고 관련 법규도 '특허법'이 아니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적용된다



따라서 이제 이런 사안의 기사는 '특허기술을 빼돌려'가 아니라 '영업비밀을 빼돌려'라고 써야만 정확한 표현이다.

아니 혹시 기자들이 무지하여 그렇게 타이틀을 붙였더라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겠다.


참고로, 특허제도는 '발명자의 보호제도'라기 보다는 '발명 공개제도' 쪽에 더 가깝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허권 부여를 통한 발명자의 보호는 발명 공개의 미끼에 해당한다고 보면된다.
특허제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가의 산업발전'이며, 발명의 공개에 의해 기술발전과 산업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허제도는 발명의 공개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엄격한 서면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출원시 발명 내용을 특정하기 위해 언어로 작성된 명세서를 반드시 제출하여야 한다. 발명의 내용을 실물이나 구두로 혹은 동영상 등으로 특정할 수는 없다. 도면을 제출하기도 하지만 이는 명세서를 설명하기 위한 보조수단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