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 #132 옹졸한 사회는 가라

by 변리사 허성원 2023. 10. 15.

옹졸한 사회는 가라

 

몇 년 전 한 주요 일간지에 '간장 두 종지'라는 칼럼이 실렸었다. 필자인 그 신문의 기자는 중국집에서 간장을 인원수대로 달라고 했는데, ‘간장은 2인당 하나입니다’라는 종업원의 대답을 듣고 분개한다. 그래서 그는 '여기가 무슨 배급사회인가'라며 '다시는 그 중국집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거기에다 그 집이 어디인지 내용에서 가늠할 수 있게 하여 세심한 복수까지 곁들였다.

한 전직 대학교수는 커피숍에서 커피 주문 후 진동벨을 주지 않고 전화번호를 입력하라기에,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입력을 거부했단다. 그랬더니 ‘그럼 커피가 나올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고 받아가세요'라는 종업원의 말에, 이따위 건방진 커피숍은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성토를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들 일상에서 그만그만한 사소한 일로 짜증이나 화를 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도 종종 그러고는 후회도 한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이는 김수영 시인의 시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의 초입부이다. 눈앞의 사소한 이해에는 분노조절장애자처럼 분개하면서, 정작 국가나 사회를 위한 더 중요하고 더 큰 일에는 침묵한다. 자신의 권리에는 그토록 민감하지만, 타인의 권리나 정서는 쉽게 무시하거나 둔감하다. 이것이 현대를 사는 우리의 옹졸한 삶의 모습이다. 이런 옹졸한 장면들은 정치,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매일 접하고 있다.

왜 우리는 이토록 옹졸하게 살까? 한때 젊은 시절에는, ‘백수산 돌은 칼을 갈아 다하게 하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겠노라’는 남이장군의 시를 외우며, 그 호방함을 배우려하지 않았던가. 그런 우리가 이토록 쩨쩨하게 변한 것은 필시 현대의 삶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빌딩 속의 닭장 같은 공간에 갇혀 좁은 화면을 통해 세상을 보고, 매일 똑같은 패턴의 그렇고 그런 생활을 하면서, 말을 타고 광야를 거침없이 달리던 옛사람들의 호방함을 언감생심 어찌 흉내라도 내볼 수 있겠나.

가장 큰 원인은 ‘거래 사회’에 있는 듯하다.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가 ‘거래관계’로 되었다. 옛날에는 길을 가다 우물가의 처녀에게 물을 청하여 목을 축이고, 날이 저물면 아무 집이나 그 대문에 서서 ‘길가는 나그네가 하루 쉬어가고자 하오’라고 소리치면 행랑채든 헛간이든 밤이슬은 피할 수 있었다. 그 시절의 그런 베풂은 거래가 아니라, 순수한 인정 즉 ‘사람의 정’이었다. 지금은 '거래' 때문에 '인정'이 멸종되었다.

‘거래관계’는 재화를 사고파는 시장에서 이루어진다. 우리의 비즈니스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에 필요한 물질이나 서비스를 얻기 위해, 우리는 매일 수도 없이 많은 거래를 하고 있다. 시장은 어디에나 있다. 컴퓨터나 휴대폰 속에도 있어, 책상에 앉아서나 길을 걸으면서도 거래를 한다. 직장 동료, 동창회, 사회 모임, 배움, 심지어 가족 등의 관계까지도 돈이나 가치를 서로 주고받는 거래관계로 여긴다. 거래는 이제 우리의 삶이고, 우리 삶은 언제나 시장 바닥에 있다. 이렇게 우리는 철저히 시장주의자가 되어 간다.

시장주의 사회는 자연스럽게 모든 관계를 갑과 을로 자리매김하고, 강자와 약자로 구분한다. 그리고 매사 경쟁을 요구하며, 결국 인간관계를 이긴 자와 진 자로 나눈다. 이긴 자는 그 승리를 남용하며 교만하게 누리면서 패자를 보듬지 않고 철저히 짓밟으려 든다. 이런 시장주의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개인의 이익 추구가 최우선의 가치가 된다. 자신의 이익만을 잘 챙기는 이기주의자가 유능한 모범적 인간이다. 그들 이기주의자의 눈에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신과 가족을 희생한 홍범도 같은 분이나 팔 걷어 부치고 남을 돕는 의인은 위선자이며,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의 유족들은 ‘시체팔이’ 꾼으로 보인다. 그들은 지극히 옹졸하게 살면서도 그 부끄러움을 모르고, 오히려 그것을 자랑하며 떠든다.

이처럼 이 시대는 우리를 극단의 이기주의자가 되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이기주의자들의 세상에 대해 ‘장자 천운편’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부를 추구하는 자는 남에게 재물을 양보할 줄 모르고, 명예를 추구하는 자는 남에게 명성을 양보할 줄 모르고, 권력을 좋아하는 자는 남에게 권한을 나눠주지 못한다. 부, 명예, 권력은 손에 쥐고 있으면 잃을까 두렵고, 잃고 나면 마음이 슬프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그런 것들만을 쉬지 않고 노리는 자들이야 말로 하늘의 형벌을 받은 죄인이라 할 것이다.” ‘부, 명예, 권력만을 노리는’ 이기주의자들이 모여 ‘하늘의 형벌을 받는’ 그곳은 바로 지옥이다. 우리 사회가 그런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냥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다. 공동체의 생명은 서로 돕는 이타심에 있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 옹졸함이 이 사회를 지옥으로 죽음으로 몰아간다. 공동체 속에서의 옹졸함은 비난받아야 하며, 옹졸한 자가 우리 사회의 정치, 언론, 교육 등의 분야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세상을 가속적으로 오염시키는 것은 막아야 한다. 가족, 민족, 국가, 인류 등과 같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애쓰는 이타적 호방함이 우리를 이끄는 가치 기준이 되고 귀하게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만, 이 사회는 건강히 존속할 수 있다. 그러니 옹졸한 사회는 가라.

 

(231018 게재)

2015.11.28. 조선일보 칼럼이다. 많은 논란을 낳았다. 특히 기자의 갑질에 대한 지적이 많았고, 신문의 지면을 이런 소심한 복수의 도구로 썼다는 점에 공분도 샀다. 이를 희화화한 패러디가 여러 가지 나오기도 했다.

대학교수를 은퇴한 분의 페이스북 포스팅이다. 이 글에서 극단적 시장주의자의 모습을 본다. 강력한 보수적 발언을 많이 하는 편이다. 최근 칼럼(231004)으로는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문재인 정부'가 있다.
 

 

**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

                                                                           _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王宮)의 음탕 대신에
오십(五十)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二十)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사십야전병원(第四十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二十) 원 때문에 십(十) 원 때문에 일(一)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一)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전우용 교수의 칼럼)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을 봤을 때, ①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어 구하려는 사람이 있고, ②자기가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구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으며, ③발만 동동 구르면서 누가 와서 저 사람 좀 구해줘요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다. 물론 ④못 본 척하는 사람도 있고, 심하면 ⑤“헤엄도 못 치면서 뭐하러 물에 들어갔다가 저런 일을 당하나”라며 오히려 위기에 처한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을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라고 가정하면, ①이 적극적 독립운동가, ②가 소극적 독립운동가, 또는 독립운동 지원 세력, ③이 보통사람들, ④가 수동적 친일파, ⑤가 적극적 친일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을 구하려 들지는 않는다. 그런 사람이 다수인 시대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껏 인류는 ‘이타심’에 따라 행동한 사람들을 본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배워왔다. 어떤 공동체든 그런 사람들을 ‘모범’으로 삼아야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회는 결코 공동체가 될 수 없다."

https://www.thecolumnist.kr/news/articleView.html?idxno=2422 

 

독립운동을 능욕하는 궁극 목표는 무엇일까 - 더칼럼니스트

김구가 한 게 뭐가 있어?1990년대 중반의 어느날, 소규모 학술회의 뒷풀이 자리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사학자로 잘 알려졌던 사람이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따지고 보면 김구가 해

www.thecolumnist.kr

 

**
<北征(북정)>  _ 南怡(남이)

白頭山石磨刀盡(백두산석마도진) 豆滿江波飮馬無(두만강파음마무)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 後世誰稱大丈夫(후세수칭대장부)

백수산 돌은 칼을 갈아 다하게 하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라.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태평하게 못 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일컬으리.

**
以富為是者,不能讓祿;以顯為是者,不能讓名。親權者,不能與人柄,操之則慄,舍之則悲,而一無所鑒,以闚其所不休者,是天之戮民也。_ 莊子 天運

부를 추구하는 자는 남에게 재물을 양보할 줄 모르고, 명예를 추구하는 자는 남에게 명성을 양보할 줄 모르고, 권력을 좋아하는 자는 남에게 권한을 나눠주지 못한다. 그것들을 손에 쥐고 있으면 잃을까 두렵고, 잃고 나면 마음이 슬프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그런 것들만 쉬지않고 노리는 자들이야 말로 하늘의 형벌을 받은 죄인이라 할 것이다. _ 장자 천운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