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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세상살이/지혜로운삶

이공계 인재들에게 의사소통 교육이 필요하다?

by 변리사 허성원 2023. 6. 10.

이공계 인재들에게 의사소통 교육이 필요하다?

 

<이공계 인재들, 의사소통 교육이 꼭 필요한 이유>라는 글을 보고 몇 자 끄적거려 본다.

이 칼럼 글의 취지에는 동의한다.
이공계 출신이 평균적으로 인문학 전공자들에 비해 소통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좀더 좋은 소통을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글의 구체적인 내용을 읽다보니 좀 거부감이 생긴다. 그의 글을 읽으며 선뜻 동의할 수 없던 부분은 대충 다음의 이유이다.

첫째, 범주화, 일반화의 오류다.
이공계가 의사소통 능력에 미숙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섣부른 범주화, 일반화이다.
우리는 이공계 출신 중에서 대단히 뛰어난 문장가도 있고 대중적 인기를 크게 누리는 과학자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그런 한편 철학 등 인문학 전공자 중에서 수학이나 과학적 지식을 잘 무장하여, 이공계 출신의 입을 꼼짝없이 닫게 만드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공계가 의사소통 능력에 미숙하다'는 일반화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인문학 전공자는 과학적 사고나 논리적 검증에 있어 무능하다'는 일반화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글이라면, 그냥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여하히 구제할 것인가를 다루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굳이 이공계라는 범주를 한정하여 끌어온 것은 글의 전체 논지상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만약 이공계가 소통에 미흡한 원인나 이유를 발견해내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거나 혹은 사후적으로 치유하는 대안을 제시하였다면, 충분히 그럴 듯한 설득력을 가진 글이 되었을 것이다.

둘째, 의사소통이 미숙하다고?
글쓴이는 자신의 구체적인 두어 가지 체험에 기초하여, 이공계는 의사소통에 미숙하다고 진단하였다.  
그것은 동료들 간의 대화가 매우 적다는 점과, 듣는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는 대화 태도를 꼽았다. 곧 대화부족과 공감부족이 소통 미숙함의 현상이며 증거라는 말이다.
그들의 업무를 잘 모르는 인문계 사람들은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원이나 엔지니어들은 입으로 말하는 언어가 아닌 다양한 채널을 통해 치열하게 토론하기도 한다. 과학적 혹은 기술적 성과물은 말이 아닌, 온라인 메시지, 실험체, 도면, 완성품, 시제품 등의 모습으로 그 개발자의 생각을 웅변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곤조곤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다정하게 이야기 하여야만 의사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나 엔지니어들에게는 고요한 침묵이 치열하고 소란스런 논쟁일 수 있으며, 핏대 올려 싸우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악의적인 갈등이 아니라 진정한 동료의 애정 표현일 수도 있다. 우리 이공계 출신들은 논쟁 당사자 혹은 방관자의 관점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그런 가슴 뜨거운 장면을 수도 없이 경험하였다. 그보다 더 뜨거운 의사소통이 어디 있겠는가.

셋째, 의사소통이 뭔데?
의사소통이란 무잇인가. 사람들 사이에서 지식, 생각, 정보 등을 교환하는 것을 말한다.
우호적으로 지식 등을 교환하면 좋은 의사소통이라 할 수 있겠지만, 다소 우호적이지 않더라도 연구개발이나 비즈니스 현장 등에서는 필요한 정보 등을 제대로 주고 받아 상대를 설득하였거나 내 생각이 바뀔 수 있다면, 그것도 훌륭한 성공적인 의사소통이다.
인문학 분야에서 인문학이 그들의 중요한 소통 수단 중 하나이듯이, 수학, 물리학, 화학, 공학 등도 이공계 출신에게는 소통의 언어이다. 아무래도 이런 소통 언어는 따뜻하기 어렵다. 날카로운 칼처럼 빼도박도 못할 명백한 근거에 바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문분야라는 것은 워낙 세분화되어 있어, 해당  분야 내의 사람들과의 대화는 극도로 생략되어 눈빛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소통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분야가 조금 어긋나면 웬만큼 친절해서는 의사전달 즉 '의사소통'에 애를 먹는다.
그래서 인문학 전공자들이 공학석사나 박사들의 대화를 섣불리 판단하여 평가하는 것은 더 조심스럽고 신중하여야 할 일이다. 물론 이공계 출신들도 항상 인문학자들의 대화를 이해하는 데 진땀깨나 흘리고 있지 않은가.  
다들 그들만의 언어, 수단, 의사소통 방식이 있는 법이다.

넷째, 오히려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과학적 논리적 사고의 교육이 필요하다.
칼럼 글을 보면서 국문학과 같은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과학적 논리적 사고 능력이 많이 미숙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공계 출신들은 어떤 가설(추론)을 세우면 그 가설을 반드시 검증하고자 노력한다.
가설이 설득력을 가지고 검증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 가설이 참임을 주장하거나 그것을 받아들여 믿는다. 이공계 출신들의 소통은 기본적으로 이런 가설과 검증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국문과 교수님의 글은 '이공계는 의사소통에 미숙'하다는 가설을 내세웠지만, 그것을 검증하지 않았다. 그저 그럴 것으로 추정하였을 뿐이며, 곧 그것을 일반화시켜 버렸다.
그런 논지의 글은 과학적이지도 못하고 논리적이지도 못하다.
그래서 이공계에게 의사소통 능력을 가르쳐야 하듯, 인문계 출신들에게 과학적 사고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 
사실 인문계 교수 등 특히 정치 분야에서 나오는 많은 칼럼들은 이런 일반화 오류, 범주화 오류, 비논리적 단정 등이 남용되고 있고, 목적적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 아침에 우연히 이 글을 보다가 논지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을 몇 자 끄적거렸는데, 결국 뜻하지 않게 남의 귀한 칼럼을 비판하는 반박문이 되고 말았다. 글쓴이 신지영 교수는 전혀 모르는 분이고, 그 분 개인에 대해 아무런 감정은 없다. 글장난을 즐기는 이공계 출신이 순수한 자격지심에서 몽니를 부려보았는데, 신지영 교수님께서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주시길 빈다.)

 

 

더칼럼니스트

 

www.thecolumnist.kr

 

**(참고)
문과는 없어져야 합니다. 문이과를 구분하는 곳은 일본과 한국 뿐이예요. 이과의 핵심은 수학입니다. 수학은 현대사회의 기본 언어입니다. 수학을 모르면 말 못하는 사람과 같은 거예요. 문맹이 되는 거죠. 누구한테는 수학을 빼고 가르친다? 이건 무책임한 것이고 청년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겁니다.”
“AI시대이기 때문에 암기 교육이 중요합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검색하면 되지? 굉장히 나태한 것이죠. AI로 창조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도, 생성AI가 만든 결과를 판단하기 위해서도 내 머리 안에 뭔가 있어야 해요. 가진 게 없으면 배울 게 없습니다.”
철학자 김재인 경희대 교수가 작심하고 쏟아내는 AI시대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미래세대에게 수학을 빼고 가르친다? 문과 학생들을 바보로 만드는 거예요.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지만 할 얘기는 해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