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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

"내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중소기업 사장들의 이야기

by 변리사 허성원 2011. 10. 24.
   어제 몇 명의 중소기업 사장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대화가 자녀들의 진로에 관한 주제로 옮아갔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모두 그들의 자녀들이 전문직, 공무원, 대학교수 등 사업과는 다른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들 모두 비교적 성공한 지역 기업인인데도 자녀들이 자신과 같은 기업인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점이 다소 의아했다. 심지어는 제법 잘 성장시켜 놓은 자신의 기업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당신네들은 가슴 설레는 도전을 시도하고 수많은 시련을 극복하면서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재미를 즐기고 또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등 성공의 즐거움을 누리지 않았는가? 그런 짜릿한 도전과 성공의 재미를 왜 애들에게는 경험하지 못하게 하려는가? 지금 당신들의 기업을 잘 교육받은 자식들이 물려받는다면 당신네들과는 달리 훨씬 더 멋지게 성장시킬 수도 있을 거다.. 등
 
   그들은 말했다. 자신들은 멋모르고 사업에 뛰어들어 생존을 위해 죽기 살기로 뛴 것뿐이다. 만약 다시 그 길을 걸으라고 한다면 그들 스스로도 전혀 자신이 없다. 애들에게는 특히 자신들의 그런 생존 본능 등 절실함이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녀들에게 자신이 경험한 ‘을’의 설움을 상속시키고 싶지 않다. 그런 부당한 갑과 을의 관계를 애들이 도저히 받아들이기도 어려울 것이고 그런 관계에 적응하는 꼴도 보고 싶지 않다. 등이 주요 이유였다.
 
   ‘을’의 설움이란 게 도대체 어떻기에 그러냐고 물었다. 요즘 같은 대명천지에 아직도 그런 구시대적 관행이 그것도 사장이 진저리 낼 정도로 남아 있단 말인가? 나도 대기업과 일을 하고 있지만 전혀 그 정도는 아닌데.. 그러자 그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자신들이 경험한 사례들을 들려주었다. 대충 기억나는 것들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외국에 나가 있는 ‘갑’ 담당자가 국내의 자기 아들 생일 선물을 대신 챙겨달라고 요청하더라.
  - ‘갑’ 회사의 검사역이 자기 친구들을 회사에 초청하여 직원들에게 차 심부름을 시키고,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 업무와 관계없는 일로 직원에게 호통을 쳤다. 사장 입장에서 그 꼴을 도저히 볼 수 없어 언쟁을 하다 주먹질이 오갔다. 사장은 직원들에게 울면서 사과했다. 자신이 못나서 직원들에게 그런 더러운 꼴을 당하게 했다고.. 그런데 얼마 지나서 그 ‘검사역’의 상관이 자신을 불러 그 ‘검사역’에게 사과하라고 하더란다. 사과 요구에 응하지 않아 일이 끊겼다.
   - 대기업인 ‘갑’의 과장급 담당자가 뜨면 전무가 따라다니며 접대하여야 한다. ‘갑’ 과장은 30초반이고 전무는 50대. 접대의 마지막은 항상 여자.
   - 일거리가 없을 때 평소 잘 관리해온 ‘갑’ 회사의 담당자에게 호소하면 일거리를 만들어(?) 준다.
   - ‘갑’ 담당자의 배려로 단가를 올려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게 올려받은 수입은 절반씩 사이좋게 나눈다.
   - 서울 소재 ‘갑’의 한 임원은 고스톱을 엄청 좋아한다. 그 임원이 지방에 출장 내려와서 부르면 만사 제쳐놓고 가서 고스톱을 친다. 물론 납품업체 사장들은 항상 실력이 부족해 적당히 잃는다. 그런 다음에는 수주가 순조롭다. 특히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그 임원이 고스톱 칠 때 양복이 구겨지지 않도록 깨끗이 다린 여벌 바지 하나를 제공하기 위해 항상 차안에 싣고 다녀야 한다는 것.
   - 어떤 ‘갑’ 회사는 정문의 경비에게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적절히 양념을 치지 않으면 차량 출입 시 트렁크 검사 등이 너무 까다롭다. 잘 사귀어두면(?) 1년 내내 전혀 조사 없이 무사통과하기도 한다.
 
   정말 기가 막히는 일이다. 신흥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다는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고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가사의하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버텨왔다고 치자.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도 그런 구태로 생존할 수 있을까?
 
   2300년 전 맹자의 선의후리(先義後利) 가르침이 생각난다. 맹자는 양혜왕에게 말했다. 왕이 ‘배려와 옮음’(仁義)보다는 나라의 ‘이로움’(利)을 추구하게 되면, 그 아래의 대부는 자신의 집안의 이로움을 생각하고 그 아래의 평민은 자신의 몸의 이로움을 쫒을 것이다. 그래서 온 나라의 사람들이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경쟁을 하게 되고, 서로가 서로를 빼앗기 위해 혼란은 가중되어 그 나라는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왕은 항상 ‘배려와 옳음’(仁義)이 입에서 붙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나라에 仁義의 풍속이 구축되고 나라가 더욱 단결되어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많은 갑 기업의 임직원들이 자신의 탐욕을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그들의 상관이나 CEO가 이미 옳지 않은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모범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부패한 기업에서 어찌 신뢰와 상생의 풍속이 정착할 것이며 어찌 창의력과 애사심이 우러나올 수 있겠는가? 직원들의 창의력과 애사심이 없는 기업이 언감생심 생존과 번영을 바라는가?
 
   선의후리(先義後利)! 진실로 지금 우리의 기업 경영자와 정치인들이 배우고 따라야 할 너무도 절실한 가르침이다.(11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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