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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소구라 변리사의 지독지정(舐犢之情)

[소구라의 소언(搔言)]003

by 변리사 허성원 2022. 8. 8.

[소구라의 소언(搔言)]003

(*등장 인물의 작명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네요. '소구라'는 소크라테스에서 따왔고, '허소리'는 헛소리에서 빌려왔습니다. ㅎ)

- 허소리 : 소구라 선생님. 아까 상담했던 건 말이죠. 페라이트 영구자석의 착자 성능 증대 기술. 그거 실현이 가능할까요? 제가 볼 땐 영 불가능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죠?

- 소구라 : 나도 그럴 것 같아요. 근데 허소리 변리사는 박수까지 치며 완전 대박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 허소리 : (웃으며) 그 분 면전에서 말도 안되는 발명이라고 직접 대놓고 말할 수는 없고 해서.. 그 분에게 덜 민망하게 좀 에둘러 말하려다 보니 그런 말이 나왔었네요.
'그거 생각하신 대로 성공하기만 하면 완전 대박이겠는데요?'라고 한 것은 '에이~ 말도 안됩니다.'의 완곡한 표현이라고 여기시면 됩니다. ㅎㅎ

사실 세상의 기술을 제가 다 아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 기술이 실현가능할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제 반응은 진심이었습니다.
- 소구라 : 하~ 정말 대단합니다. 허소리 변리사. 그런 것으로 짐작은 했습니다만.. 내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절이라도 올리고 싶어요.
- 허소리 : (경악하며, 손을 내저으면서..) 아~ 아니~ 선생님 왜 이러세요? 진정하세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 소구라 : 아니오. 내 참말입니다. 허소리 변리사의 진정한 인간적 매력을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되었어요. 허변은 정말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따뜻한 사람입니다.
- 허소리 : 저~정말이세요? .. (울상을 지으며) 제가 여기 와서 지금껏 칭찬이라곤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 소구라 : 그것도 사과할께요. 허변은 칭찬들을 멋진 점들이 참 많아요. 내가 칭찬에 인색했던 거 같아요. 그것도 사과드릴께요.
- 허소리 : 어이쿠~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갑자기 이러시면..
근데 소구라 선생님.. 제가 도대체 뭘 잘했다는 말씀인지요. 저는 통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 소구라 : 변리사와 변호사가 모두 '변'자를 쓰고 있지요? 근데 한자가 다르다는 알고 있나요?
- 허소리 : 다른가요? 저같은 한글 세대가 보기엔 동일한 글자처럼 보이던데요?
- 소구라 : 변호사의 변(辯)자가 말 잘한다는 뜻이지만, 변리사의 변(辨)은 판별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업무의 핵심 부분은 판별하는 일이지요. 판별은 옳고 그름을 나누고 이쪽과 저쪽을 나누고 구분하는 일이지요. 그래서 변리사의 변(辨)자에는 가운데에 칼 도(刀, 刂)가 들어있습니다. 칼 도(刂)의 양측에 있는 매울 신(辛)자는 원래 노예를 뜻합니다.
여하튼 우리는 매사를 칼로 명확히 잘라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칼잡이지요.
- 허소리 : 헉.. 칼잡이..
- 소구라 : 그렇습니다. 칼잡이는 항상 피를 보고 아픔을 줍니다. 칼을 맞은 사람은 극심한 아픔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희생자의 대부분은 오늘처럼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온 우리 고객입니다.
고객들은 자신의 발명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우리는 그것이 특허가능한지를 판단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칼질이 들어갑니다. '됩니다,안됩니다', '맞습니다, 틀렸습니다'와 같이, 고객의 생각에 대해 가차없이 칼질을 하는 것이죠.
많이 경험했겠지만, 상담한 발명 중 30% 정도만이 출원으로 연결됩니다. 70%는 우리가 특허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여 고객에게 출원을 포기하도록 설득했기 때문이지요.
- 허소리 : 그렇더군요. 웬간하면 출원을 해줘도 되겠다 싶은데.. 너무 매정하게 출원하지 말라고 조언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실망해서 돌아가시는 분들이 딱해보일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 소구라 : 많은 걸 생각한 겁니다. 특허 전략적인 점 외에도 경제적 비즈니스적 고려사항도 있으니까요. 그저 장식적인 특허만 필요한 경우에는 웬만하면 출원을 해줍니다.
그건 그렇고..
고객이 오늘처럼 말도 안되는 발명을 가져오면, 우리는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명백히 말해줘야 합니다. 칼을 휘둘러야 하는 거지요. 자신이 대단한 것을 창조했다고 믿고 꿈에 부풀어 찾아온 사람에게, 시퍼런 칼날을 내세우며 그 꿈이 허황된 것임을 깨우쳐주는 겁니다. 그들이 얼마나 아팠겠어요?
- 허소리 : 그럴 것 같아요.
- 소구라 :나는 그런 일을 수십년 동안 별 양심의 가책없이 저질러왔습니다. 그들의 간절한 기대에 조금도 공감하지 않고 잔인하게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었습니다. 에너지불변의 법칙, 열역학 제2법칙 등을 들먹이고, 때로는 경제성, 생산성, 사업성 등을 나 잘났다고 마구 읊으대며, 그들의 기를 죽이는 데 인정사정을 두지 않았어요.
그런 걸 되돌려 생각해보면.. 어떤 땐 나는 소시오패스와 다름 없었던 거 같았네요.
- 허소리 : 소시오패스라고까지야.. 저를 가혹하게 다그치실 때는.. 연쇄살인범처럼 좀 잔인하게 여겨질 때가 아주 가끔 없었던 건 아닙니다만.. ㅎ
- 소구라 : 그런데 오늘 허소리 변리사의 대응 모습을 보고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했습니다. 그 허황된 아이디어를 듣고도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바로 말하지 않고,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에둘러 부드럽게 말해주었습니다.
오늘 어린 허소리 변리사에게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절을 올릴 테니 받아주시겠어요?
- 허소리 : ㅎㅎ.. 절은 좀 그렇구요. 절 대신에.. 제가 다음에 또 실수하는 일이 있으면.. 그 때 제 마음을 이해하셔서 좀 아니 매우 느그럽게 봐주시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요?
- 소구라 : 좋습니다. 허소리 변리사.. 살다가 다소 지치고 힘든 일을 만나더라도 꼭 기억해두세요. 따뜻한 마음보다 더 훌륭한 정책은 없다는 것을. 아프지않게 칼질하는 칼잡이로 성장하여 살아가길 빕니다. 자 그럼, 우리의 실무 언어를 하나 정리합니다. 영구기관이나 실현불가능한 발명 등과 같이 '말도 안되는 발명'을 만나면, '와우~ 그거 성공하면 대박'이라는 말을 쓰도록 합시다.
- 허소리 :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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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말을 잘하다’나 ‘(말에)조리가 있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자는 (따질 변)자와 (말씀 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자는 죄인 둘이 서로 다투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따지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투는 것을 뜻하는 자에 자를 더한 자는 서로 싸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변론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자는 누구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를 대변해준다는 의미인 것이다. 분쟁당사자들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말솜씨가 뛰어나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는 ‘말을 잘하다’나 ‘조리가 있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자는 ‘분별하다’나 ‘구분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자는 (따질 변)자와 (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자는 죄인 둘이 서로 다투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따지다’나 ‘고소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죄인 둘이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는 모습에 자를 더한 자는 잘잘못을 ‘분별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자에 쓰인 자는 둘 사이를 갈라 잘못을 판가름한다는 뜻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