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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 #70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by 변리사 허성원 2022. 5. 27.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창업하여 오래 경영해온 회사를 처분하고 은퇴한 친구가 있다. 근황을 물으니 일생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하며, 말한다. 회사 경영은 욕심이라는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과 같더라. 수익 창출과 생존이라는 강박관념에서 잠시도 벗어날 수 없어. 그래서 항상 의욕과 욕심으로 단단히 무장되어 있어야 하는 거지. 그게 과하면 위태롭고 부족하면 쓰러지는 거야. 그래서 언제나 두려웠다. 이루어놓은 것을 잃을까 두렵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까 두려웠지. 물러나고 나서야 그런 욕심의 굴레에서 벗어나 두려움에도 시달리지 않게 되어 마음이 너무도 평온하다네.

친구가 해탈한 도인처럼 보였다. 이 비슷한 이야기는 플라톤의 '국가론'에서도 나온다. 소크라테스가 피레우스의 축제에 다녀오다 폴레마르코스를 만나 그의 집으로 초대받는다. 거기서 그의 아버지인 케팔로스에게 인사를 건네며 묻는다. "어르신께서는 지금 시인들이 '노년의 문턱'이라고 말하는 그런 연세가 되셨는데, 심경이 어떠하신지 듣고 싶습니다. 산다는 것이 힘드신가요?" 케팔로스가 답하였다.

"어떤 사람이 시인 소포클레스님에게 질문하였지요.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오. '소포클레스 선생님, 선생님의 성생활은 어떠하신가요? 아직도 여자와 사랑을 나눌 수 있나요?' 소포클레스님이 이렇게 대답했다오. '이 사람아. 그런 말마시게. 나는 성욕에서 벗어난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 마치 미쳐서 날뛰는 포악한 주인에게서 벗어난 것 같다네.' 나는 그때 그 대답이 기가 막힌 명답이라고 생각했다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소크라테스 선생,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그런 욕망에서 자유로워져 매우 평화로운 시기라 할 수 있다오. 욕망이 한 풀 꺾이어 그 졸라댐이 느슨해지면, 소포클레스님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미쳐 날뛰는 수많은 주인에게서 해방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어떤 사람이 불행하다고 한다면 그 원인은 나이 탓이 아니라 자신의 성격 탓일 거요. 절제하여 자족할 줄 안다면, 노년도 가벼운 짐에 불과하다오. 절제하지 못한다면 늙으나 젊으나 힘들기는 마찬가지라오."

욕망은 미쳐 날뛰는 폭군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살아 있는 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다. 욕망이 없는 나른한 세상에서는 이 영악한 인류와 그 사회가 지속할 수 없다. 특히 우리가 누리는 이 번영을 가져다준 자본주의는 오로지 인간의 욕망이라는 에너지에 의해서만 활기차게 가동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욕망은 모든 성취의 출발점이다. 욕망은 동기를 부여하고, 동기는 강할수록 더 큰 성취를 이끈다. 그런 욕망은 노년 즉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부득이 그 힘이 약해진다. 그래서 욕망은 젊음 혹은 삶에 가깝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늙음 혹은 죽음에 가까운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은 이렇게 씌어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인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로서 유명한 대문호도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욕망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모양이다. 사후의 묘비명에 기록해둘 정도이니 살아있는 동안 욕망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얼마나 갈망했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욕망(Desire)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묘지(Cemetery)역에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을 지나 엘리시안 필즈(Elysian Fields, 천국)에 내리면 된다고 했어요.”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이런 첫 대사로 시작한다. 테네시 윌리엄스 원작 소설을 말론 브란도와 비비안 리가 주연하였다. 욕망의 상징인 블랑쉬가 고향에서 집과 직장을 잃고 뉴올리언스에 사는 여동생의 집을 찾아가면서 기차역에 내려 길을 묻는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바로 우리의 삶이다.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욕망의 전차를 타고 여행하여야 한다. 그 전차는 묘지에서 멈춘다. 욕망으로 살아온 삶이 끝나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야만 천국으로 가는 전차로 갈아탈 수 있다. 거기서 내리지 않고 버티면 결코 천국으로 가지 못한다. 여기서의 묘지는 굳이 죽음만이 아니라, 은퇴, 창업자의 엑시트 혹은 특별한 깨달음 등 어떤 마무리의 시기일 수도 있겠다. 우리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언제 어디서 멈출 것인가.

 

욕망 (Desire) 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묘지 (Cemetery) 역에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을 지나 엘리시안 필즈 (Elysian Fields, 천국) 에 내리면 된다고 했어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