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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 #21 낙타의 배신

by 변리사 허성원 2021. 4. 22.

낙타의 배신

 

벤허1959년에 개봉되어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을 석권한 전설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전차 경기이다. 벤허(찰턴 헤스톤 분)와 메살라는 각기 흰색과 검은색의 말들이 끄는 전차를 타고 목숨을 건 경주를 한다. 그 장면을 유심히 보면, 메살라는 시종 가혹하게 채찍질을 하지만, 벤허는 채찍을 전혀 쓰지 않는다. 게다가 벤허는 전날 밤에 마구간으로 가서 말들을 쓰다듬으며 정서를 교감하기도 한다. 물론 승리는 벤허의 것이었다.

공자가 가장 신임하였던 제자인 안연(顔淵)이 노()나라 정공(定公)을 만났다. 노정공이 말했다. "선생께서는 동야필이 말을 잘 부린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지요?" 안연이 대답했다. "잘 부린다고 하니 그렇겠지요. 그렇지만 머잖아 말들을 그르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자랑인 동야필에 대해 험담을 들은 노정공은 기분이 좋지 않아서 신하들에게 말했다. "군자도 억지를 부리며 남을 헐뜯는군!"

사흘이 지나자 사육사가 와서 아뢰기를, "동야필의 말이 잘못되었습니다. 양 참마(驂馬)는 벌어지고 양 복마(服馬)는 마구간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에 노정공이 즉시 안연을 불러오게 하여 그에게 말했다. "일전에 과인이 그대에게 물었을 때, '동야필이 말을 잘 몰기는 하겠지만, 비록 그렇더라도 머잖아 말을 그르치게 될 것이라고 하였소. 내가 몰랐던 것을 그대는 어찌 알았소?"

안연이 대답했다. "저는 다스림의 이치로 그것을 알았습니다. 옛날 순임금은 백성을 다스리는 능력이 뛰어났고, 조보(造父)는 말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순임금은 백성을 곤궁하게 하지 않았고, 조보는 말의 힘을 다하게 하지 않았기에, 순임금은 백성을 잃지 않았고, 조보는 말을 그르치지 않았습니다. 지금 동야필의 말다루기는, 수레를 얹어 고삐를 잡고 재갈을 물려서 몸을 곧게 하도록 하며, 걷고 뛰고 질주하는 것이 조정에서 예를 다하듯 합니다. 험한 곳을 지나 먼 곳까지 이르러 말의 힘이 다하였는데도, 오히려 말에게 재촉하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이로써 알 수 있었습니다."

노정공이 "좋은 말씀이오, 말씀을 좀 더 들을 수 있겠소?"라고 청하니, 안연이 대답했다. "신이 듣기로 새가 궁하면 부리로 쪼고(조궁즉탁鳥窮則啄), 짐승이 궁하면 할퀴고(수궁증확獸窮則攫), 사람이 궁하면 거짓말을 합니다(인궁즉사人窮則詐).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랫사람들을 궁하게 하면서도 위태롭지 않은 자는 아직 없었습니다."

순자(荀子) 애공(哀公) 편에 나오는 고사로서, 불궁기마(不窮其馬, ‘말을 궁하게 하지 말라') 혹은 궁하필위(窮下必危, ’아랫사람을 궁하게 하면 반드시 위태로워진다‘)라는 성어가 여기에서 나왔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체력이나 정신이 궁()한 상태에 이르게 되면 그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없다. 결국은 관계된 사람이나 조직에 해를 끼치거나 위태롭게 할 위험이 크다.

특히 의욕이 강하고 열정적이던 사람이 갑자기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느끼며 무기력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현상을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이라 한다. 번아웃은 말 그대로 소진 혹은 탈진 상태로서, 극도로 궁()한 상태에 이른 것이다.

번아웃 증후군의 다른 표현으로서 낙타의 배신이라는 말이 있다. 파올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낙타는 사람을 배신하는 짐승이라서, 수 천리를 걷고도 지친 내색을 않다가 어느 순간 무릎을 꺾고 숨을 놓아버리지.” 낙타가 힘든 징후를 전혀 보이지 않다가 사막 한 가운데에서 갑자기 무책임하게(?) 쓰러진 상황을 생각해보라. 그 죽음이 안타깝기는 하겠지만, 정작 고통스러운 것은 사막 한 가운데에서 벌어진 낭패스런 상황과, 그 상황을 만든 낙타에 대한 배신감일 것이다. 추격견도 그렇다고 한다. 추격견은 그냥 두면 쓰러져 숨이 멎을 때까지 달린다. 그래서 주인이 상태를 엄밀히 관찰하며 추격 속도와 주행 시간을 통제하여야만 한다.

낙타의 배신이 치명적인 것은 동물이든 아랫사람이든 그들이 충성스럽고 열정적이며, 특히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기 때문이다. 충성과 열정의 화신인 그들은 자신의 번아웃을 예측하지 못한다. 그들을 살피고 관리하여야 할 책임은 그들을 다루는 리더에게 있다. 낙타의 배신은 리더의 직무유기에 기인한다.

결국 낙타의 배신리더의 배신이며, 그에 대한 응징이다.

경기 중에 벤허에게까지 채찍질하는 메살라(그림을 클릭하면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사하라 사막의 낙타행렬.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 궁하필위(窮下必危)
아랫사람을 궁하게 하면 반드시 위태로워진다


定公問於顏淵曰 "子亦聞東野畢之善馭乎?" 顏淵對曰 "善則善矣,雖然,其馬將失." 定公不悅. 入謂左右曰 "君子固讒人乎!." 三日而校來謁, 曰 "東野畢之馬失. 兩驂列 兩服入廄." 定公越席而起曰 "趨駕召顏淵!" 顏淵至, 定公曰 "前日寡人問吾子, 吾子曰 '東野畢之駛善則善矣,雖然,其馬將失' 不識吾子何以知之?" 顏淵對曰 "臣以政知之. 昔舜巧於使民, 而造父巧於使馬, 舜不窮其民. 造父不窮其馬 是以舜無失民, 造父無失馬. 今東野畢之馭, 上車執轡銜, 體正矣, 步驟馳騁, 朝禮畢矣 歷險致遠, 馬力盡矣 然猶求馬不已. 是以知之也." 定公曰 "善, 可得少進乎?" 顏淵對曰 "臣聞之, 鳥窮則啄, 獸窮則攫, 人窮則詐. 自古及今, 未有窮其下而能無危者也." 순자(荀子) 애공(哀公)

** 참마(驂馬)와 복마(服馬)
병거(兵車)는 네 마리의 말이 마차의 앞에 좌우로 서로 나란히 배치되어 된다. 좌우 양쪽 끝의 말을 참마(驂馬)라 불러 좌참(左驂)과 우참(右驂)으로 구분한다. 중간의 두 마리를 복마(服馬)라 하며, 좌복(服)과 우복(服)이라 부른다.

참마 중 왼쪽 참마 즉 좌참(左驂)이 가장 경력이 많은 우두머리의 위치이다. 마차 혹은 병거의 주인을 벌하고자 할 때, 좌참의 목을 치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사기 사마양저열전).

** 안연(顏淵)

 

안회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의 현인. 공자가 가장 신임하였던 제자였다. 은군자적인 성격으로 “자기를 누르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곧 인이다”,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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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사람의 원망을 사면 망한다(
下怨者 可亡也)

한비자 '망징(亡徵)'(나라가 망하는 징조) 편에 나오는 말이다.
亡徵에는 나라가 망하는 요인 47가지를 열거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아랫사람의 원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