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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 #20 나는 오랑캐의 바지를 입고자 하오

by 변리사 허성원 2021. 4. 19.

나는 오랑캐의 바지를 입고자 하오

 

허물을 벗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 마찬가지로 혁신하지 못하는 조직은 생존이나 성장을 지속하지 못한다. 그래서 혁신을 이루는 것은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숙명적인 사명이다. 하지만 혁신은 고통스러운 변화이기에 항상 큰 저항에 부딪힌다.

2300년 전 군사강국을 꿈꾸며 혁신을 추구한 군주가 있었다. 전국시대 조나라의 무령왕(趙武靈王, BC 340~ BC 295)이다. 당시 조나라는 중원의 북쪽에 위치하여 진, , 연 등 인접 강대국 외에도 북쪽 흉노의 위협에 상시 노출되어 있었다. 나라의 생존을 위해 강한 군대가 절실함을 인식한 조무령왕은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강력한 군대의 보호가 없으면 사직은 망할 수밖에 없소. 무릇 세상에 이름을 높이고자 하면 물려받은 풍속에 누를 끼쳐야할 때가 있는 법이오. 나는 오랑캐의 바지(호복胡服)를 입고자 하오."

'오랑캐의 바지' 즉 호복이 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당시 중국 남성의 복식은 저고리와 치마 즉 의상(衣裳)이었다. 의상은 중원 문화의 자존심인 반면, 호복은 야만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중원의 군대는 병차(兵車)를 기초로 조직되어 있었다. 병차는 네 필의 말이 끌고, 어자(御者), 차좌(車左) 및 차우(車右)로 이루어진 3명의 전투조가 탑승한다. 이런 전통적인 병차 시스템은 전쟁이 잦은 전국시대에 와서는 산악 등 비평지전에서 기동성을 떨어지고 그 유지관리에 많은 비용과 인력이 소요된다는 취약점이 드러났다. 북방의 적족이나 융족은 개별적으로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아 전투를 할 수 있으니, 기동성과 전투력이 현저히 우수하였다. 호복을 입고 기마 상태에서 활을 쏜다고 하여 호복기사(胡服騎射)라 하며, 고구려 무용총의 벽화 수렵도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다.

조무령왕은 강한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병차를 버리고, 전투력이 탁월하면서도 경제적인 호복기사의 채용이 불가피함을 통찰한 것이다. 그래서 신하들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이제 나는 호복기사(胡服騎射)를 백성에게 가르치고자 합니다.”

호복기사(胡服騎射)에 대한 조정의 반발은 거세었다. 천박한 오랑캐 습속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조무령왕은 신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끈질기게 설득하였다. 조무령왕이 신하들을 설득하기 위해 절실히 말한 언어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혁신 방향에 대해 깊이 통찰하고 강력한 추진 의지를 가졌는지 잘 알 수 있다.

세상에 높은 공을 이룬 사람은 물려받은 풍속에 누를 끼치는 짐을 져야 하며, 홀로 지혜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은 변화를 싫어하는 백성들의 원망을 감내해야 합니다.” “지극한 덕을 논하는 사람은 세속과 화합하지 못하고, 큰 공을 이루는 자는 여러 사람과 도모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일이 이루어져도 제대로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조짐이 나타나기도 전에 그것을 봅니다.”

나라 다스림의 원칙은 인민을 이롭게 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정무 처리의 원칙은 명령이 이행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덕을 밝히고자 할 때는 먼저 아랫사람부터 논의하여야 하고, 정책을 실행하고자 할 때는 먼저 윗사람부터 믿음을 갖게 해야 합니다.”

무릇 옷이란 것은 입기에 편하기 위한 것이고, 예라는 것은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현명함이라는 것은 변화와 더불어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글로 말을 몰고자 하는 자는 말의 성정을 다 알지 못하며, 옛것으로 지금을 규제하려는 것은 일의 변화를 충분히 알 수 없습니다.” “옛 법을 좇는 공만으로는 세상을 뛰어넘을 수 없고, 옛날 가르침만을 본받아서는 현재를 규제하기에 부족합니다.”

결국 조무령왕은 신하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여 호복기사 시스템을 채용하고, 그 결과 강력한 국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의 성공은, 오랑캐의 풍속을 과감히 도입한 실리적 통찰력과, 변화에 대해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저항을 예측하고 감내하며 끈질기게 설득한 불굴의 추진력이 조화를 이루었기에 가능하였다.

이처럼 모든 리더가 꿈꾸는 혁신의 요체는 통찰력과 추진력에 있다. 통찰력은 올바른 방향을 찾아내는 나침반이고, 추진력은 조직원을 움직이게 설득하는 엔진이다. 추진력 없는 통찰력은 이룸이 없고, 통찰력 없는 추진력은 위태롭다.

귀 조직의 나침반과 추진 엔진은 안녕하신가.

 

<병차의 구성>

 

<무용총 수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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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령왕(趙武靈王)의 호복기사(胡服騎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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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의 조세가(趙世家) 중에서.

"강력한 군대의 보호가 없으면 사직은 망할 수밖에 없소. 어찌하면 좋겠소?
무릇 세상에 이름을 높이고자 하면 물려받은 풍속에 누를 끼쳐야할 때가 있는 법이오.
나는 호복(胡服)을 입고자 하오."
(
無彊兵之救, 是亡社稷, 柰何? 夫有高世之名, 必有遺俗之累. 吾欲胡服.)

"이제 나는 호복기사(胡服騎射)를 백성에게 가르치고자 합니다.
그러면 세상은 틀림없이 과인에 대해 무어라 뒷말이 많을 것입니다.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今吾將胡服騎射以敎百姓而世必議寡人柰何?)

세상에 높은 공을 이룬 사람은 물려받은 풍속에 누를 끼치는 짐을 져야 하며
홀로 지혜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은 변화를 싫어하는 백성들의 원망을 감내해야 합니다.
(有高世之功者 負遺俗之累 有獨智之慮者 任驁民之怨.)

지극한 덕을 논하는 사람은 세속과 화합하지 못하고,
큰 공을 이루는 자는 여러 사람과 도모하지 않습니다.
(論至德者 不和於俗 成大功者 不謀於衆)

어리석은 자는 일이 이루어져도 제대로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조짐이 나타나기도 전에 그것을 봅니다.
(愚者闇成事 智者覩未形)

나라 다스림의 원칙은 인민을 이롭게 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정무 처리의 원칙은 명령이 이행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덕을 밝히고자 할 때는 먼저 아랫사람부터 논의하여야 하고,
정책을 실행하고자 할 때는 먼저 윗사람부터 믿음을 갖게 해야 합니다.
(制國有常 利民爲本 從政有經 令行爲上 明德先論於賤 而行政先信於貴)

무릇 옷이란 것은 입기에 편하기 위한 것이고,
예라는 것은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인들께서는 지역에 따라 그 편의에 따르고,
일에 따라 예를 제정함으로써, 백성들을 이롭게 하고 나라는 부유하게 한 것입니다.
(夫服者 所以便用也 禮者 所以便事也.
聖人觀鄕而順宜, 因事而制禮 所以利其民而厚其國也) 

지금 숙부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풍속 그 자체에 관한 것입니다만
제가 말하는 것은 풍속을 만드는 이치에 대한 것입니다.
(今叔之所言者俗也吾所言者所以制俗也)

현명함이라는 것은 변화와 더불어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賢者與變俱) 

글로 말을 몰고자 하는 자는 말의 성정을 다 알지 못하며,
옛것으로 지금을 규제하려는 것은 일의 변화를 충분히 알 수 없습니다.
(以書御者不尽馬之情, 以古制今者不達事之変)

옛법을 좇는 공만으로는 세상을 뛰어넘을 수 없고
옛날 가르침만을 본받아서는 현재를 규제하기에 부족하오.
(循法之功 不足以高世 法古之学 不足以制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