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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세상살이/경제

온라인 게임 아이템 거래 "1조원 시장"의 명암_중앙일보_090215

by 변리사 허성원 2009. 3. 22.

‘1조원 규모 블랙마켓’vs ‘닌텐도 뺨치는 블루오션’

온라인 게임 아이템 거래의 명암

나현철 | 제101호 | 20090215 입력 블로그 바로가기
거래 참여자 최소 500만 명. 한 달 평균 거래량 130만 건. 건당 거래 가격은 몇천원부터 천만원대까지. 연간 거래 규모는 1조원대. 국내 게임 아이템 시장 얘기다. 아이템은 온라인 게임을 보다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나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사이버머니를 말한다. 시장이 커지면서 한 해 중개 수수료로 수백억원을 벌어들이는 회사도 생겨났다. 하지만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분명치 않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한쪽에선 지적 재산권을 침해하고 사행성을 조장하니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외친다. 다른 쪽에선 한국이 만든 새로운 사업 모델이라며 잘 육성하자고 맞선다. 불황에 뜨는 산업인 온라인 게임과 함께 급속히 성장한 아이템 시장의 명암을 들여다봤다.

속히 확대되는 시장
지난해 12월 한 게임 아이템 중개 사이트에 1000만원이 넘는 매물이 올랐다. 국내 대표적 온라인 게임 ‘리니지2’에 쓰이는 이 아이템은 일반인이 1년을 꼬박 투자해도 얻을 수 있을까 말까 한 것이었다. 하루 만에 서너 명의 매수 희망자가 나타났고, 이틀 뒤 실제 거래가 이뤄졌다. “온라인 게임의 지존이라 할 수 있는 ‘성주’ 캐릭터(온라인상의 가상인물)의 경우 5~6년 전 3000만원에 거래된 적도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귀띔이다.

온라인 게임 아이템을 거래하는 시장은 이미 무시하지 못할 규모로 성장했다. 정식으로 허가를 받은 중개 사이트의 거래액만 1조10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엔 게이머끼리 직거래하거나, 불법으로 규정돼 있는 고스톱·포커 등 사행성 보드 게임을 음성적으로 거래하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거래량까지 합하면 시장 규모가 지난해 1조5000억원가량 될 것이란 게 업계의 추산이다.

아이템매니아와 아이템베이 등 ‘빅2’로 꼽히는 중개 사이트엔 500만 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다. 두 사이트의 한 달 평균 거래량만 130만 건이다.

평균 거래가는 4만3000~6만5000원이지만 인기 높은 일부 아이템은 엄청난 몸값을 자랑한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개 사이트를 통해 공식적으로 거래된 아이템 중 가장 고가인 것은 1250만원짜리 ‘리니지 2’의 ‘16드라포커’와 ‘+17엔젤’이었다. 온라인 게임에서 단박에 최고 레벨에 오를 수 있는 아이템들이다. 이 밖에도 대여섯 가지 아이템이 3~4%의 수수료와 세금을 부담하고 온라인에서 1000만원 넘는 가격에 거래됐다. 높은 레벨의 캐릭터를 가진 게이머가 자신의 권리(계정)를 파는 경우도 적지 않다. 리니지, R2온라인, 카발온라인 등 최상급 계정은 900만원 이상에 매매된다.

‘사이버 장난감’인 아이템이 고가에 사고 팔릴 수 있는 건 온라인 게임의 구조 때문이다.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다중접속역할분담게임(MMORPG)은 가상 공간에 다수의 게이머가 접속해 마법사나 전사·요정 등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른 게이머보다 우위에 서려면 게임 머니를 얻을 수 있는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가상 공간을 많이 돌아다녀 경험치를 쌓아야 한다. 어느 쪽이든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다. 10년 이상 역사를 가진 ‘리니지’의 경우 사이버머니로 ‘100만 아덴’을 모으려면 하루 8시간씩 꼬박 일주일이 필요하지만 이 정도론 다른 게이머와 경쟁하기에 어림도 없다. 게임사들이 유료로 판매하는 아이템이 있지만, 기본적인 무기나 방어장비뿐이다. 이를 뛰어넘는 성능 좋은 아이템은 시간을 들여 직접 만들도록 설정돼 있다. 시간이 남는 사람과 돈이 넉넉한 사람 간에 거래가 발생할 여지가 생기게 된다. 시장의 탄생이다.

공생 또는 기생
게임 아이템은 홀로 설 수 있는 시장은 아니다. 온라인 게임이라는 기반이 필요하다. 게임 개발사들이 아이템 거래 시장을 ‘기생시장’으로 간주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다. 아이템 거래 규모가 온라인 게임 시장의 절반 안팎으로 커졌다는 점도 이들의 불만을 키운다. 하지만 사람이 모이면 장이 선다. 더 많이 모이면 애초 정해진 장터 밖에도 하나둘 노점상이 생기게 마련이다. 온라인 게임 시장과 게임 아이템 시장의 관계가 꼭 이렇다. 온라인 게임이 활성화될수록 아이템 거래도 활발해진다. 재미삼아 노점상 구경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듯, 아이템 시장의 활성화가 게임 시장을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게임산업개발원이 2007년 온라인 게임과 아이템 거래의 상관관계를 조사해 보니 ‘리니지’ ‘R2온라인’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 등 주요 게임 모두에서 아이템 거래가 활발해질수록 게임 이용자와 이용시간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아이템 유통업계는 ‘기생이 아니라 공생’이란 논리를 펴고 있다. 온라인 게임이 특히 활성화한 한국에서 시작된 사업모델인 만큼 위축보다는 활성화가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한다.

양쪽의 갈등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무색하게 온라인 게임 시장이 쑥쑥 크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코리안 클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국내 온라임 게임 이용자는 165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남녀노소를 통틀어 3명당 1명꼴로 온라인 게임을 즐긴다는 것이다. 인터넷 이용자의 51%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온라인 게임 사이트를 방문한다는 통계도 있다. 경기 침체로 이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게 분명하다. 주진석 삼성증권 수석연구원은 ‘실업률이 1% 늘어나면 게임 이용시간은 0.7%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게임산업진흥원은 2008년 23% 성장한 온라인 게임 시장이 올해에도 20%대의 성장률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애매한 법률이 논란 키워
양자의 갈등을 부채질하는 건 모호한 법률이다. 게임 아이템이 누구의 것인지부터 분명치 않다. 게임사는 지적재산권에 비춰 분명히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한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도 창작의 결과가 아니라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일 뿐이라는 논리다. 아이템 유통업계와 이용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귀중한 시간을 쓴 게이머들의 권리도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개발사의 지재권과 게이머의 양도권을 함께 인정하는 쪽이다. 개인 간 아이템 거래를 인정하면서도 부당한 방법으로 얻은 아이템을 사고 팔거나 직업적으로 아이템 매매를 하는 행위, 사행성 보드게임(고스톱·포커)의 사이버 머니를 매매하는 행위 등엔 유죄판결을 내리고 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지난 9일 온라인에서 유명 게임사이트의 포커 게임에 사용되는 사이버 머니 2경원어치를 사고 팔아 3억원가량의 차익을 챙긴 설모(42)씨 등 3명을 입건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계가 애매하다는 게 문제다. 아이템을 사는 사람은 해킹 등 부당한 방법으로 얻은 아이템인지 알기 어렵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장물을 일반인이 구분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직업적인 거래’를 금지하는 법규와 국세청의 과세 정책도 서로 부닥친다. 국세청은 최근 온라인 벼룩시장인 오픈 마켓이 활성화되자 ‘연간 600만원 이상의 물품을 판매하려면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과세 근거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지만, ‘사업자 등록을 하면 직업적으로 하는 게 되지 않느냐’는 지적을 받는다. 1년에 몇 건, 어느 정도의 금액을 거래해야 ‘직업적’이 되는지도 분명치 않다

정해상(법행정학) 위덕대 교수는 “소유권은 없지만 이용권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 아이템이 상가 권리금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사회적 합의는 불충분한 상태”라며 “사이버화가 진행될수록 이 같은 신종 권리를 둘러싼 갈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논란을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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