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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기술

3차원 프린터와 줄기세포로 자신의 뼈를 복제하는 시대_조선일보_090312

by 변리사 허성원 2009. 3. 22.

[뉴 테크놀로지] 3차원 프린터와 줄기세포로 자신의 뼈를 복제하는 시대

거푸집 만들때 3차원 잉크젯 프린터 이용
몸속의 고분자 물질은 시간 지나면 저절로 사라져


스위스
인젤 병원의 크리스티앙 웨이난드(Weinanad) 박사의 호주머니에는 작은 뼈가 들어 있다. 자신의 손가락뼈다. 사고로 손가락을 잘라내서가 아니다. 3차원 프린터와 줄기세포로 자신의 손가락뼈를 똑같이 복제해낸 것이다. 사고나 질병으로 뼈가 손상되면 환자 자신의 세포로 새로운 뼈를 만들어내는 맞춤형 치료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프린터로 뼈 거푸집 만들어

웨이난드 박사는 최근 '조직공학(Tissue Engineering Part A)'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어떻게 자신의 손가락뼈를 복제했는지를 밝혔다. 우선 X선과 같은 의료영상기기로 손가락뼈의 3차원 구조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 미 사우스캐롤라이나 의대 제공 3차원 프린터로 심장을 만들어내는 상상도./미 사우스캐롤라이나 의대 제공
웨이난드 박사는 그냥 자신의 손가락을 촬영했지만 사고나 질병으로 손가락뼈가 사라졌을 경우에도 문제가 없다. 예를 들어 오른손 집게손가락 뼈가 손상됐을 경우에는 왼손 집게손가락을 촬영하면 된다. 오른손을 거울에 비추면 왼손이 된다. 마찬가지로 왼손 집게손가락 영상을 거울에 비춘 것처럼 바꾸면 사라진 오른손 집게손가락의 모양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손가락뼈의 모양대로 거푸집을 만든다. 이때는 3차원 잉크젯 프린터를 이용한다. 일반 잉크젯 프린터에서는 전기신호에 따라 잉크를 종이에 분사해 흡수시킨다. 하지만 3차원 잉크젯 프린터에서는 분사된 용액이 흡수되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 덕분에 한 층 한 층 잉크를 분사하면 입체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여기에는 뼈를 유도하는 인산칼슘과 거푸집의 형태를 만드는 생분해성 고분자물질인 폴리락틱산(polylactic acid·PLA) 용액을 잉크 대신 사용했다.
▲ 3차원 프린터로 만든 거푸집에 연골세포를 주입해 만들어낸 복제 연골./아주대 의대 민병현 교수 제공
거푸집에는 구멍이 송송 나 있다. 나중에 뼈를 만들 세포들과 혈액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제 줄기세포를 이용할 차례. 줄기세포는 인체의 여러 세포로 자라나는 원시세포다. 우리 몸에선 척수나 지방 등에서 얻을 수 있다.

웨이난드 박사는 예전에 엉덩이 관절 수술을 받았을 때 뽑아둔 척수 줄기세포를 이용했다. 척수 줄기세포를 배양하면 골아세포(骨芽細胞)라는 초기 단계의 뼈 세포로 자란다. 이것을 젤이 채워진 거푸집에 주입했다. 젤은 형태를 잡아주는 동시에 세포에 영양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 단계는 거푸집을 생쥐의 등쪽 피부 아래에 봉합하는 수술이다. 15주 동안 거푸집에 들어 있는 골아세포는 생쥐로부터 영양분을 받고 완전한 뼈 세포로 자란다. 그 사이 생분해성 거푸집은 사라지고 새로운 손가락뼈만 남게 된다.

뱃속에서 자라난 턱뼈

하지만 생쥐의 등에서 자란 손가락뼈는 아무래도 찜찜하다. 생쥐에게선 아무런 문제가 없던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인체에선 치명적인 병원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자신의 몸을 이용하면 된다.
▲ 요추와 골반뼈의 컴퓨터 단층촬영 입체영상(왼쪽)과 이를 기반으로 3차원 프린터로 만들어낸 요추 모양의 생분해성 거푸집./포항공대 조동우 교수 제공
지난해 2월 핀란드 탐페레 대학의 리타 수로넨(Suuronen) 박사는 암으로 손상된 65세 환자의 위 턱뼈를 새로운 뼈로 교체하는 수술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때 사용된 뼈 역시 3차원 프린터와 줄기세포로 만든 것이다.

역시 3차원 프린터로 위 턱뼈와 똑같은 모양의 거푸집을 만들고 줄기세포를 주입했다. 수로넨 박사는 환자의 지방에서 뽑아낸 줄기세포를 이용했다. 다른 점은 줄기세포를 주입한 거푸집을 환자 자신의 배 근육 사이에 접합시킨 것이다. 아홉달 후 거푸집은 분해돼 사라지고 완전한 위 턱뼈가 만들어졌다. 수로넨 박사는 당시 "환자 자신의 줄기세포를 이용했기 때문에 면역거부 반응 없는 맞춤형 이식이 가능해졌다"고 밝혔다.

물론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아주대 의대 정형외과 민병현 교수는 "3차원 프린터로 거푸집을 만들고 여기에 세포를 주입해 원하는 뼈나 조직을 복제하는 것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라며 "환자들에게 널리 이용되지 못하는 것은 거푸집을 만들 때 사용한 고분자 물질의 안전성이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웨이난드 박사가 사용한 고분자 물질은 수술에 사용하는 봉합사와 같은 재질로 생분해성이라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몸속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만에 하나 일부가 분해되지 않고 남아 있을 경우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민 교수는 3차원 프린터와 연골세포로 손상된 무릎 연골을 복제했다. 곧 환자에게서 문제가 없는지 알아보는 임상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민 교수는 "빠르면 2~3년 내 임상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뼈 복제과정

①손상된 뼈의 입체영상 촬영

②3차원 프린터로 뼈 형태와 같은 거푸집 제작

③거푸집에 줄기세포 주입

④거푸집을 동물이나 사람의 피부에 이식

⑤줄기세포가 뼈 재생·거푸집 생분해

⑥완성된 복제 뼈 추출, 환자에 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