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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능양시집서(菱洋詩集序) _ 까마귀의 깃털 색깔 _ 연암 박지원

by 변리사 허성원 2025. 7. 19.

능양시집서(菱洋詩集序) _ 연암 박지원

 

통달한 사람에게는 괴이한 것이 없으나 속인들에게는 의심스러운 것이 많다. 이른바 ‘본 것이 적으면 괴이하게 여기는 것이 많은 법'이다.

그러나 통달한 사람이라 해서 어찌 사물을 일일이 찾아 눈으로 모두 보고 확인하겠는가. 한 가지를 들으면 열 가지를 눈앞에 그려 보고, 열 가지를 보면 백 가지를 마음속에 설정해 보아, 천만 가지 괴이한 것들이란 사물에 잠시 붙은 것으로서 자기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기에, 마음이 한가롭고 사물에 대응하는 데도 한없이 여유롭기 마련이다.

본 것이 적은 자는 해오라기를 기준으로 까마귀를 비웃고 오리를 기준으로 학을 위태롭다고 여긴다. 그 사물 자체는 본디 괴이할 것이 없는데 자기 혼자 화를 내고, 한 가지 일이라도 자기 생각과 같지 않으면 만물을 모조리 모함하려 든다.

아, 저 까마귀를 바라보라. 그 깃털보다 검은 검은 것은 없지만, 어느 순간 은은한 금색이 어리기도 하고, 다시 옥색처럼 반짝이기도 한다. 햇빛을 받으면 자줏빛이 드러나고, 눈이 언뜻거리면 비취빛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이를 푸른 까마귀라 불러도 옳고, 붉은 까마귀라 해도 그 또한 옳다. 그것은 애초에 정해진 색이 없거늘, 내가 눈으로 미리 그 색깔을 정해버린 것이다. 어찌 그 눈으로만 정했다고 하겠는가. 보기도 전에 마음으로 이미 정해놓았던 것이다.

噫。瞻彼烏矣。莫黑其羽。忽暈乳金。復耀石綠。日映之而騰紫。目閃閃而轉翠。然則吾雖謂之蒼烏可也。復謂之赤烏。亦可也。彼旣本無定色。而我乃以目先定。奚特定於其目。不覩而先定於其心。

아, 까마귀를 검은색으로 고정 짓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거늘, 또다시 까마귀로써 천하의 모든 색을 고정 지으려 하는구나. 까마귀가 과연 검기는 하지만, 누가 다시 이른바 푸른빛과 붉은빛이 그 검은 빛깔〔色〕 안에 들어 있는 빛〔光〕인 줄 알겠는가. 검은 것을 일러 ‘어둡다’ 하는 것은 비단 까마귀만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검은 빛깔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물은 검은 까닭에 능히 비출 수가 있고, 옻칠은 검기 때문에 능히 거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색깔이 있는 것치고 빛이 있지 않은 것이 없고, 형체〔形〕가 있는 것치고 맵시〔態〕가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미인(美人)을 관찰해 보면 그로써 시(詩)를 이해할 수 있다. 그녀가 고개를 나직이 숙이고 있는 것은 부끄러워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고, 턱을 고이고 있는 것은 한스러워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고, 홀로 서 있는 것은 누군가 그리워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고, 눈썹을 찌푸리는 것은 시름에 잠겨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이 있으면 난간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바라는 것이 있으면 파초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만약 다시 그녀에게 서 있는 모습이 재계(齋戒)하는 것처럼 단정하지 않다거나 앉아 있는 모습이 소상(塑像)처럼 부동자세를 취하지 않는다고 나무란다면, 이는 양귀비(楊貴妃)더러 이를 앓는다고 꾸짖거나 번희(樊姬)더러 쪽을 감싸 쥐지 말라고 금하는 것과 마찬가지며, ‘사뿐대는 걸음걸이〔蓮步〕’를 요염하다고 기롱하거나 손바닥춤〔掌舞〕을 경쾌하다고 꾸짖는 것과 같은 격이다.

나의 조카 종선(宗善)은 자(字)가 계지(繼之)인데 시(詩)를 잘하였다. 한 가지 법에 얽매이지 않고 온갖 시체(詩體)를 두루 갖추어, 우뚝하니 동방의 대가가 되었다. 성당(盛唐)의 시인가 해서 보면 어느새 한위(漢魏)의 시체를 띠고 있고 또 어느새 송명(宋明)의 시체를 띠고 있다. 송명의 시라고 말하려고 하자마자 다시 성당의 시체로 돌아간다.

아, 세상 사람들이 까마귀를 비웃고 학을 위태롭게 여기는 것이 너무도 심하건만, 계지의 정원에 있는 까마귀는 홀연히 푸르렀다 홀연히 붉었다 하고, 세상 사람들이 미인으로 하여금 재계하는 모습이나 소상처럼 만들려고 하지만, 손바닥춤이나 사뿐대는 걸음걸이는 날이 갈수록 경쾌하고 요염해지며 쪽을 감싸 쥐거나 이를 앓는 모습에도 각기 맵시를 갖추고 있으니, 그네들이 날이 갈수록 화를 내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세상에 달관한 사람은 적고 속인들만 많으니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쉬지 않고 말을 하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아!

연암노인(燕巖老人)이 연상각(烟湘閣)에서 쓰노라.

達士無所恠。俗人多所疑。所謂少所見。多所恠也。夫豈達士者。逐物而目覩哉。聞一則形十於目。見十則設百於心。千恠萬奇。還寄於物而己無與焉。故心閒有餘。應酬無窮。所見少者。以鷺嗤烏。以鳧危鶴。物自無恠己。廼生嗔。一事不同。都誣萬物。噫。瞻彼烏矣。莫黑其羽。忽暈乳金。復耀石綠。日映之而騰紫。目閃閃而轉翠。然則吾雖謂之蒼烏可也。復謂之赤烏。亦可也。彼旣本無定色。而我乃以目先定。奚特定於其目。不覩而先定於其心。噫。錮烏於黑足矣。廼復以烏錮天下之衆色。烏果黑矣。誰復知所謂蒼赤乃色中之光耶。謂黑爲闇者。非但不識烏。並黑而不知也。何則。水玄故能照。漆黑故能鑑。是故有色者。莫不有光。有形者莫

不有態。觀乎美人。可以知詩矣。彼低頭。見其羞也。支頤。見其恨也。獨立。見其思也。顰眉。見其愁也。有所待也。見其立欄干下。有所望也。見其立芭蕉下。若復責其立不如齋坐不如塑。則是罵楊妃之病齒。而禁樊姬之擁髻也。譏蓮步之妖妙。而叱掌舞之輕儇也。余侄宗善字繼之。工於詩。不纏一法。百體俱該。蔚然爲東方大家。視爲盛唐。則忽焉漢魏。而忽焉宋明。纔謂宋明。復有盛唐。嗚呼世人之嗤烏危鶴。亦已甚矣。而繼之之園烏忽紫忽翠。世人之欲齋塑美人。而掌舞蓮步。日益輕妙。擁髻病齒。俱各有態。無惑乎其嗔怒之日滋也。世之達士少而俗人衆。則默而不言可也。然言之不休何也。噫。燕岩老人。書于烟湘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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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가 짧은 오리가 다리가 긴 학을 넘어지기 쉽다고 비웃는다는 뜻이다. 부단학장(鳧短鶴長)이란 말이 있다. 《장자(莊子)》 변무(騈拇)에 “길다고 해서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며, 짧다고 해서 부족한 것이 아니다. 이런 까닭에 오리는 다리가 짧지만 그 다리를 이어 주면 걱정하고, 학은 다리가 길지만 그 다리를 자르면 슬퍼한다.”고 하였다.

- 양 귀비(楊貴妃) : 당 나라 현종(玄宗)의 애첩이다. 양 귀비가 평소 치통을 앓았는데 그 모습 또한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를 그린 양귀비병치도(楊貴妃病齒圖)가 있다.

- 번희는 후한(後漢) 때 사람으로 영현(伶玄)의 애첩이었던 번통덕(樊通德)을 가리킨다. 영현이 번희에게 조비연(趙飛燕)의 고사를 이야기하자, 번희가 손으로 쪽을 감싸 쥐고 서글피 울었다고 한다. 이를 소재로 한 번희옹계(樊姬擁髻)라는 희곡도 있다. 《趙飛燕外傳 附 伶玄自敍》

- 사뿐대는 걸음걸이〔蓮步〕 : 제(齊) 나라 폐제(廢帝) 동혼후(東昏侯)가 금으로 연꽃을 만들어 땅에다 깔아 놓고 애첩인 반비(潘妃)로 하여금 그 위를 걸어가게 한 후 사뿐대는 걸음걸이를 보고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난다고 하였다. 《南史 齊紀下 廢帝東昏侯》

- 손바닥춤〔掌舞〕 : 한 나라 때 유행한 춤으로 춤사위가 유연하고 경쾌하다. 한 나라 성제(成帝)의 황후인 조비연(趙飛燕)이 잘 추었다고 한다. 장상무(掌上舞) 또는 장중무(掌中舞)라고도 한다.

- 종선(宗善) : 1759~1819. 연암의 삼종형(三從兄)인 박명원(朴明源)의 서장자(庶長子)로 규장각 검서를 지냈다.

- 연상각(烟湘閣) : 연암이 안의 현감(安義縣監) 시절 관아(官衙) 안에 지었다는 정각(亭閣)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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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와 통찰>

  1. 통달과 무지, 시야의 폭
    • ‘통달한 사람’과 ‘속인’의 대비
    • 통달한 사람은 적은 사례에서 많은 것을 연상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 여유를 갖지만, 속인은 본 것이 적어 작은 차이를 괴이하게 여기고 마음대로 화를 낸다.
    • 이는 경험과 관점의 폭이 사고방식과 감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서, 경험과 관점이 좁으면 사물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쉽게 평가를 내리기 마련이다. 
  2. 까마귀의 색 – 고정관념과 상대성
    • 사람들은 까마귀가 검다고만 여기나, 연암은 햇빛과 각도에 따라 까마귀 깃털이 황금색, 녹색, 자주색 등 다양한 빛을 내는 것을 묘사한다.
    • 검은 색을 어둠으로만 규정하는 것도 검은 색의 본질을 모르는 것이라고 말하며, 물과 옻칠처럼 검은 것은 오히려 다른 색을 비추어내는 거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 이는 고정관념의 위험성과 사물의 다층적 본성을 비유한 것으로, ‘검다’는 하나의 규정이 아니라 다양한 빛의 가능성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리더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고정된 잣대에 갇히지 않고, 상황과 맥락에 따라 사물의 다른 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3. 감정 읽기의 미학
    • 아름다운 이의 머리 숙임, 손짓, 표정에서 부끄러움·그리움·불안 같은 감정을 읽어내는 부분은, 외형의 정지된 모습만을 완벽이라 말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이다.
    • 리더십이나 법의 영역에서도 숫자나 외형에만 매달리는 대신, 사람들의 미묘한 태도와 맥락을 읽어야 진정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4. 다양성과 창조성에 대한 옹호
    • 조카 계지의 시가 고정된 양식에 얽매이지 않고 한·위에서 송·명으로 자유롭게 전환하는 모습을 들며,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지만 연암은 그것이 오히려 참된 창조성이라고 칭찬한다.
    • 이는 한 가지 틀을 규범이라 생각하는 태도에 대한 도전이며, 새로운 시도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박지원은 실학(實學) 사상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서양의 기술과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나라를 부강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기도 하다.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려는 그의 실용적 태도가 문학에서도 드러난다.
  5. 침묵과 표현 사이의 갈등
    • 글의 말미에서 연암은 세상에 통달한 사람이 적고 속인은 많으니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한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