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연말에 전문직이 신랑감으로서 선호도가 높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쓴 글입니다. 페이스북에 있던 것을 블로그로 옮겼습니다.)
'전문직 선호' 사상에 대해..
작성: 허성원 2010년 12월 29일 수요일 오후 7:16
신랑감 선호도 1위 전문직!
변리사가 전문직 중 판사에 이어 2위!
오늘 매경 뉴스에 난 기사입니다.
배우자 직업으로 男`교사` 女`판사` 선호 _ 매일경제 101228 기사
전문직이 신랑감 선호도가 높다는 점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호도 높은 직업인 변리사를 업으로 하는 저의 입장에서는 그저 웃어 넘길 수 없는 좀 씁쓸하고 우려되는 점이 있습니다. 변리사가 가장 선호도 높은 직업으로 꼽히는 것은 돈 잘 버는 직업이라는 소문이나 기사가 젊은이들을 현혹시킨 탓에 기인하겠지만, 그 진실 여부는 당사자든 배우자든 당해보면(?) 알 테니 그 진실 여부에 대한 논의는 제쳐두겠습니다.
제가 이런 기사를 보고 정작 불편한 것은 농경수렵시대의 ‘남아선호사상’처럼 한물간 구시대의 ‘전문직 선호’가 우리 사회에 아직 뿌리 깊게 잔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대의 변화와 변화한 시대의 요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전문직이 주도하던 시대를 우리는 ‘지식사회’라 부릅니다. ‘지식사회’는 ‘수렵농경사회’와 ‘산업사회’를 뒤따르는 소위 인텔리겐차가 주도하던 시대를 말합니다.
우리나라 지식사회의 대표적 전문직은 속칭 ‘사’자로 그룹화되어 하얀 와이셔츠와 쌈박한 서류가방을 들고 도시를 누비는 그들은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의 원조였지요. 그들이 가진 ‘지식’은 고도성장기에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권력의 모습으로 때로는 권력의 반대편에서 저항하는 모습으로 이 사회의 민중들을 지배하거나 저항세력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던 존경과 믿음의 대상이던 전문직이 힘을 쓰던 ‘지식사회’는 1990년대 말 IT와 벤처의 광풍과 함께 우리에게 휘몰아친 ‘정보화사회’에 떠밀리고, 그리고 나서 정보화사회에 이어 이제 스마트폰이나 SNS에 의해 제법 자리를 잡아가는 ‘감성사회’에 오래 전에 안방을 내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전문직의 대표격인 변호사는 ‘정보화사회’와 ‘감성사회’에서는 벤처기업인의 대서소 역할을 하거나 걸그룹이나 축구선수 뒤를 가방 들고 졸졸 따라다니는 비서 역할(속칭 '가방모찌')을 하고 있습니다.
변리사, 의사, 한의사 등도 다르지 않습니다. 실제로 밥벌이도 못하여 파산하는 의사, 변호사들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리지요. 실제 제 친구들이나 후배 중에 적잖이 그런 친구들이 나타납니다.
전문직이 왜 그렇게 몰락했을까요?
전문직은 말 그대로 자신의 전문 지식을 타인에게 제공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받는 직업입니다.
이 전문직의 정의에서 전문직의 특성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세 가지의 키워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지식’, ‘타인’, ‘대가’입니다.
이들 세 키워드를 두고 곰곰히 생각해 보면 전문직 몰락의 원인에 대한 해답이 나옵니다.
먼저 '지식'입니다.
‘지식’은 전문직이 독점하던 유일한 핵심역량입니다.
과거의 전문직들은 그 핵심역량을 구축하기 위해 죽기살기로 공부했습니다. 도서관, 고시원, 심지어는 절에서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고, 그렇게 엄청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고 나면, 연수, 수습, 인턴 등의 과정에서도 엄청난 경쟁과 함께 공부를 하지요. 그렇다고 해도 공부가 끝나지 않습니다. 실무에 들어가면 워낙 새로운 판례, 새로운 의료기술, 새로운 트랜드가 나타나니 잠시도 지식을 새로이 보충하지 않으면 금세 뒤처지고 말지요.
그렇게 쌓은 지식으로 몽매한 민중들을 교도한다고 생각했지요.
실제로 무지한 민중들은 그들을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지식’은 어떻습니까?
인터넷에서 너무도 쉽게 검색할 수 있고, 그것도 귀찮으면 지식IN에 대충 질문만 던져두면 우루루 지식을 제공해줍니다.
어떤 땐 일반인들이 전문지식을 더 잘 압니다. 조금 게으른 변호사나 의사는 호되게 당합니다. 실제로 의사인 제 친구는 똑똑한 환자들 때문에 의사 짓 못해먹겠다고 진지하게 하소연하기도 했습니다.
변호사의 경우도 일반인들이 판례 동향까지 훤히 분석해서 들고 다니니, 환장할 일이지요. 세무사도 장래 없어질 직업이라고 합니다. 모든 세무처리는 컴퓨터의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처리하게 될 거라고 하더군요.
이와 같이 이제 ‘지식’은 전문직 그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그러니 어깨에 힘주고 다니기 힘들게 되었겠지요?
더이상 '지식'은 전문직의 핵심역량이 아닙니다.
전문직은 앙코 빠진 찐빵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전문직에게 있어 ‘타인’은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존재입니다.
'타인'이 없는 전문직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전문직은 '타인'의 지시를 받아 '타인'을 위하여 일하고 '타인'에 의해 생존을 영위합니다. 비슷한 말이 생각나시지요? ‘of the people, for the people, by the people'
왜 그럴까요? 전문직은 '타인'이 없으면 스스로 어떤 ‘가치’도 창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법 가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는 있어도, 진정한 ‘가치’를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타인’의 지적 창작이나 불행(분쟁, 질병) 등에 빌붙어 사는 것이 전문직의 운명이지요. 좀 심하게 말하면 기생생물(寄生生物)과 유사합니다. 기생생물(寄生生物)은 ‘다른 생물(숙주)의 내부와 외부에 부착 또는 침입해서 그 영양을 취하여 생활하는 생물’을 일컫습니다.
그런데 전문직은 그 기생적 속성을 가지고도 상당 기간 독점한 ‘지식’이라는 막강한 무기로 민중을 호도하여 한 시대를 도도하게 지배하였습니다.
이제는 그 ‘타인’들도 ‘지식’에의 접근이 너무도 쉬워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과거와 같은 영화를 결코 누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제 ‘타인’들도 영리해졌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갑’임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뻣뻣한 전문직 ‘을’은 가차 없이 처단합니다.
한편, 전문직이 '타인'에 예속된다는 사실은 널리 불특정의 다수를 이롭게하기 힘든 직업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항상 특정의 '타인'을 위해 일하여야 하는 운명 때문이지요.
기업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고, 또 기업경영을 통해 번 돈으로 널리 기부를 하여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합니다.
전문직 중에도 그런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 경영자에 비해서는 현저히 적습니다. 직업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지요.
끝으로 '대가'입니다.
전문직은 왜 '타인'에게 자신의 전문적 서비스를 제공합니까? 오로지 하나의 이유 뿐입니다. 서비스 제공의 '대가' 즉 수수료를 받기 위한 것입니다.
‘대가’는 전문직이 경제적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자신이 행한 노동의 규모에 비례합니다.
만약 전문직이 수수료 수입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면, 엄청나게 일을 많이 했거나 아니면 부당한 수수료를 받아 챙긴 부도덕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문직은 근본적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 아닙니다.
노동시간에 비례한 수입을 얻을 수 밖에 없는 전문직은 그의 '재능 레버리지 효율'은 터무니 없이 낮습니다.
투여된 시간에 비례한 아웃풋을 얻을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 직업이라면, 사실상 육체 노동자의 효율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단지 육체 노동이냐 정신노동이냐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그저 그 레버리지 효율은 물지게를 스스로 지고 가는 정도라 할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드웨어 산업이든 소프트웨어 산업이든 통상적으로 산업활동에서 창출하고자 하는 가치는 투여된 인적 물적 자본을 수배에서 수백배 키워서 수확하는 것입니다. 농사를 생각해보십시오. 벼 한톨로 수백개의 새로운 벼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거의 모든 산업은 작은 힘으로 큰 가치를 들어올리는 소위 레버리지 효율이 매우 높습니다. 물론 종종 그렇게 되지 못할 경영 리스크는 감수하여야 하지요.
전문직들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지적 재능을 비교적 높습니다. 그러한 높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터무니 없이 낮은 효율의 직역에 묶어두겠다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선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문직이 되어 좋은 점도 있습니다.
전문성이 강한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베품의 기회를 널리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가치관과 행동하기에 따라서는 타인의 존경을 받을 가능성은 타 직업에 비해 높습니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비전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권해볼만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인의 욕구에 충실한 경제적인 동물이다보니, 실제에서는 존경받는 경우보다 그러하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이 보입니다.
특별한 가치관을 가진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 이상과 같은 현실이 뻔히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전문직의 선호도가 높은 것은 난센스입니다.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남의 불편(분쟁, 질병)을 뒤치다꺼리나 하는 전문직이 되고자 의대, 사법고시 등에 몰려드는 것을 보면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들이 전문직에 모여드는 것은 '안정추구'가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자신이 공부를 통해 구축한 자격증이라는 성 안에 안주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성 안에서 세상의 변화나 외풍으로부터 보호받으며 평생 어려움 없이 비교적 편하게 존경받는 직업인이 살고 싶은 것이지요.
투르크의 명장 톤유쿠크는 "성을 쌓는 자 필히 망하고 길을 내는 자 번성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이유에서 전문직이라는 '성'에 안주하고자 했던 자들이 이제 몰락하고 있습니다.
전문직이 되고자 하는 우수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이미 몰락하고 있는 전문직의 성'에 더이상 뛰어들지 마십시오.
자신의 미래를 성 안에 안주하게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끝없이 도전하고 창조하고 변화하며 나아가는 자신의 길을 만드십시오.
여러분의 뛰어난 재능을 창의적인 기술 개발이나 과학발전 등에 활용하면 개인의 영광은 물론이요 국가 발전에도 크게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전문직이 되려 하지 말고, 전문직을 부리는 사람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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