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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보호/글로벌

[아테나이칼럼] Bilski 판결, 전가의 보도?

by 변리사 허성원 2011. 10. 24.
Bilski 판결, 전가의 보도?


* Bilski 판결은 비즈니스 방법이나 소프트웨어에 대한 향후 미국의 특허 기조를 상당히 보수적으로 후퇴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판결은 당초의 대상이었던 비즈니스 방법 등에 한정되지 않고, 최근 비즈니스 방법과는 매우 거리가 멀어 보이는 진단방법에 관한 발명이나 심지어는 기계 형태로 표현된 클레임에까지 전가의 보도처럼 적용되고 있다.






미국 특허 업계에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소위 Bilski 케이스(In re Bilski; 08/833,892 patent application)에 대해, CAFC(United States Court of Appeals for the Federal Circuit)는 지난 2008년 10월 말 그 판결을 내놓았다. Bilski 발명은 상품 거래에 있어서의 리스크 헷지 방법에 관한 전형적인 비즈니스 방법이다. 이에 대해 금번 판결은 특허의 허여를 거부하였다.

이에 따라 1998년 State Street Bank의 특허 이래 비교적 폭넓게 허용되었던 비즈니스 방법에 대한 특허 부여의 기조가 불가피하게 상당히 후퇴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Bilski 사건은 그 판결이 있기 오래 전부터 그 귀추에 대해 수많은 이해관계인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이 판결의 향방이 장래 미국에서의 비즈니스 방법이나 소프트웨어 특허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업계의 관심에 부응하듯 CAFC는 이례적으로 스스로 재판관 전원 공청회(en banc hearing)를 개최하기도 하였고, 최종 발표된 작성된 판결문은 12명의 판사 중 9명의 지지를 받은 다수 의견과 반대 측 판사들의 반대 의견을 포함하여 무려 132페이지에 달한다.

그리고 찬반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뉜 많은 이해당사자들은 각자 자신의 법정 조언자(amicus curiae)를 통해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의견(court filing)들을 제출하였다. 이들 법정 조언자들은 그 수가 40명 이상이나 되며 판결문의 첫 4페이지에 걸쳐 그들의 의뢰인들과 함께 열거되어 있다. 이번 판결을 반기는 비즈니스 방법 특허 반대론자 중 대표 기업은 IBM이었다. IBM의 상대편에 서서 21세기 경제혁명의 중심에 해당하는 금융서비스 등 비즈니스 방법 특허의 폭넓은 보호를 주장하는 쪽의 대표주자는 Accenture이다.

이 판결을 두고, Copyleft 주의자 등과 같은 프로세스 특허 반대론자들은 프로세스 혹은 소프트웨어의 특허는 이제 종말을 맞이했다고 크게 반기는가 하면, 일부는 비기술적 프로세스의 특허를 저지하는 데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였다고 하며 그동안 괜한 호들갑을 떨었다(‘Much Ado About Nothing’)고 말하기도 한다.

여하튼 이 Bilski 케이스는 향후 비즈니스 방법이나 소프트웨어 특허과 관련된 실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임은 틀림이 없다. Bilski 케이스가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지금까지 정립되지 않았던 프로세스 발명의 특허 자격 평가를 위한 테스트 룰을 확정하였다는 점이다.

35 U.S.C. § 101은 특허 대상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Whoever invents or discovers any new and useful process, machine, manufacture, or composition of matter, or any new and useful improvement thereof, may obtain a patent therefor, subject to the conditions and requirements of this title.”

여기서 “any new and useful process”의 특허가능성 판단에 그동안 여러 가지 테스트가 적용되어 왔지만, CAFC는 금번 Bilski 케이스에서 ‘기계 또는 변환’(‘machine-or-transformation’) 테스트만을 유일한 해석 기준임을 명백히 하였다. ‘machine-or-transformation’ 테스트는 보호받고자 하는 발명이 특정의 기계에 결부되어 있거나 ‘물건(article)’(물질이나 데이터를 포함)을 변환시키는 것의 확인을 요구한다("the claimed invention is either tied to a particular machine or that it transforms an “article” (such as a substance or data)).

그러면, 문제가 되는 Bilski 발명의 클레임은 도대체 어떻게 기재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도록 하자.

A method for managing the consumption risk costs of a commodity sold by a commodity provider at a fixed price comprising the steps of:
(a) initiating a series of transactions between said commodity provider and consumers of said commodity wherein said consumers purchase said commodity at a fixed rate based upon historical averages, said fixed rate corresponding to a risk position of said consumer;
(b) identifying market participants for said commodity having a counter-risk position to said consumers; and
(c) initiating a series of transactions between said commodity provider and said market participants at a second fixed rate such that said series of market participant transactions balances the risk position of said series of consumer transactions.


이 클레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Bilski 발명은 상품 판매시의 거래리스크를 헷지하기 위해, 소비자와 시장관계자의 사이에서 거래 리스크가 보상될 수 있도록 양자의 리스크 포지션을 서로 맷칭시켜 거래를 하겠다는 것을 요지로 한다.

이 Bilski 발명은, 판결문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어떠한 기계도 사용하지 않고, 또 어떠한 물건을 다른 상태나 다른 물건으로 변환시키지 않는다. 이에 대해 판결문은 “공적 혹은 사적인 의무나 관계, 비즈니스 리스크 기타 추상적 개념의 의도적 변환 혹은 조작은 물리적 대상이나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법원이 채택한 테스트에 부합될 수 없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CAFC의 입장은, 우리 특허법이 발명의 성립성으로서 요구하고 있는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의 취지와 상당히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Bilski 클레임의 구성요소는 사람 간의 거래 행위와 인간의 사고 과정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발명은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이라는 법조문을 달달 외우며 공부해온 우리나라 변리사들의 눈에는 이 Bilski 클레임이 매우 도발적으로 보일 것이다. BM특허의 문을 열게 만든 발명으로 인정되는 State Street Bank의 "Data Processing System for Hub and Spoke Financial Services Configuration." (U.S. Patent No. 5,193,056)은 당초 6개의 기계 클레임과 6개의 방법 클레임이 있었지만, 방법 클레임을 손절하여 '기계' 클레임만으로 Bilski 발명이 넘지 못한 '101 허들'을 넘었었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소위 '역경매' 특허(U.S. Patent No. 5,794,207)의 경우에도 사실상 실질적인 의미가 없어보이는 '컴퓨터를 이용..', 컴퓨터에 입력..' 등의 표현을 한정하여 기계와의 관련성을 어거지로 보여줌으로써 '101 허들'을 우회하였었다.

소수 의견을 낸 판사 Mayer의 지적대로, 컴퓨터와 연관시키거나 데이터 처리에 관하여 언급하는 등의 방법으로, Bilski 발명을 실제 기계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재작성하면 특허를 받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판사 Mayer는, 영리한 변리사들이 ‘machine-or-transformation’ 테스트에 부합하도록 클레임 작성하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에, 금번 판결이 비즈니스 방법 특허를 차단하는 실질적인 의미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 판결의 실효의 여부를 떠나서, CAFC는 이런 Bilski 발명과 같이 거래 행위나 정신 활동만을 구성요소로 하는 발명에 대해 특허를 허여하였을 경우, 그 뒤에 이어지는 파장을 뒷감당하기 두려웠을 것이다. 그야말로 판사 Mayer의 말대로 '특허 제도가 미쳐 날뛰는'(“The patent system has run amok”) 상황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자연 과학이나 경제 법칙, 금융 기법, 운동 동작 등 다양한 인간 활동 분야의 창작이 특허제도에 그 보호를 의탁하러 몰려들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의 Bilski 케이스는 그동안 과도히 진보적으로 앞서 나갔던 미국의 특허 시스템이 다소나마 우리의 상식에 가깝게 보수적으로 회귀하도록 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Bilski 판결은 소위 ‘101 허들’의 높이를 어느 정도 높아지게 하였다는 사실은 누구나가 인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판결은 그 ‘기계’ 혹은 ‘변환’은 반드시 “의미있는 한정(meaningful limits)”이어야 한다는 점과, ‘클레임 상의 변환은 보호받고자 하는 프로세스에 대해 핵심적인 것’(any claimed transformation must be “central to the purpose of the claimed process.”)이어야 한다는 점을 첨언하여, 단순히 외견상으로만 '기계'나 '변환'에 관련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허용되지 않음을 경고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비즈니스 방법을 오프라인에까지 연장하여 보호받고자 하는 욕심만 버린다면, 즉 오로지 온라인 상에서만 이루어짐을 한정하여 보호받고자 한다면, ‘데이터를 조작하는 기계’ 혹은 '기계에 의해 데이터가 변환되는 프로세스'의 형태로 클레임을 작성될 것이므로, 이 번 판결이 비즈니스 방법의 특허 가능성 확보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최근 Bilski 판결을 인용하는 판결례들은 프로세스 발명의 미래가 그리 낙관적이 않다는 것을 피부로 실감하게 한다. 더욱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Bilski 판결이 그 근거가 된 비즈니스 방법이나 소프트웨어에 한정되지 않고, 그들과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이는 진단방법(Classen Immunotherapeutics, Inc. v. Biogen Idec)이나 심지어는 기계 발명에도 전가의 보도처럼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진단방법은 그 고유의 특성상 '기계'나 '변환'을 보여주기 어렵기 때문에 이번 Bilski 판결에 의해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클레임을 '기계'의 형태로 표현된 발명도 안심할 수 없다. 최근 인텔의 특허출원이 Bilski 판결의 논리에 따라 BPAI(Board of Patent Appeals and Interferences)에 의해 거절된 최초의 기계 클레임에 해당할 것이다. 인텔의 출원이 거절된 이유는 다음의 3가지로 압축된다:

(1) 발명은 '특정'의 기계에 관련되어야 한다. 출원 클레임은 연산을 위한 '프로세서'를 언급하고 있지만, 이것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범용의 컴퓨터와 다름 없으므로, '프로세서'의 기재는 '의미있는 한정'(meaningful limit)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기계와의 관련성을 부정하였다. 매우 섬찟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2) 클레임에 언급한 ‘floating-point 하드웨어’는 '특정'의 기계에 해당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요소를 ‘의미 없는 부가 솔루션 활동’("insignificant extra-solution activity")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이를 무시해버렸다. 이 역시 어설프게 '기계' 요소를 부가하는 것만으로는 '101 허들'을 우회할 수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3) 인텔 발명은 "computer readable media"로 표현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세스에 관한 Bilski 테스트가 적용되어 거절되었다. 그 이유는 "클레임을 'computer readable media'에 한정한다 하여도 클레임의 권리범위에 실질적인 한정을 부가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적용분야(field-of-use) 한정만으로는 특허자격 없는 클레임을 특허가능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텔 출원의 클레임이 'computer readable media'에 관한 발명으로서, 소위 'Beauregard-type Claim'이라 불리는 프로세스 한정적인 특수한 클레임이기 때문에, Bilski 테스트가 '기계' 발명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될 것이라고 지레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최근 IT분야에서 널리 출원되고 있는 프로세스 지향적인 발명들의 클레임을 작성할 때에는 이 Bilski 테스트가 적지 않이 신경쓰이게 될 것이다.

한편, Bilski 판결은 ‘기계 또는 변환’ 테스트를 프로세스 발명의 유일한 테스트 룰로 인정하여 Bilski 발명의 특허를 거부하였지만, 이 테스트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언젠가는 힘든 도전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신생 기술들의 수용을 위해 이 테스트를 정정할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고 언급하여, 자신들의 고뇌에 대한 타당성 판단을 슬그머니 상급심에 떠넘기고 있다.

현재 Bilski 케이스는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이 정도에서 적당히 클레임을 수정하여 계속출원을 하면 대충 원하는 특허를 확보할 수도 있을텐데, Bilski 발명 그 자체의 특허 자격 내지는 특허 가능성에 관한 다툼을 떠나서 업계에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기 위해 꿋꿋하게 투쟁하는 출원인과 관계자들에게 진심으로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이제 우리는 이 Bilski 판결이 이후 비즈니스 방법이나 소프트웨어에 관한 특허의 운명에 얼마나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이 판결에 대한 대법원의 태도가 어떠한지 흥미있게 기다려보아야 할 것이다.


작성자 :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허성원 (090227)


참고문헌
1. "Federal Court Rules in Bilski Business-Method Patent Case" by Diane Brady
2. "In re Bilski: The Fed Circuit Tells Inventors to Stuff It" by Randy Picker
3. "Bilski: Much Ado About (almost) Nothing" by William Morriss
4. "Bilski ruling: a victory on the path to ending software patents" by Peter Brown (Executive Director Free Software Foundation)
5. BPAI Applies Bilski to Deny Patentability of Machine Claim from www.patentlyo.com
6. Applying In re Bilski to Diagnostic Method Claims by Kevin E. Noonan
7. BilskiCase_CAFC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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