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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칼럼

[허성원 변리사 칼럼] #46 이끄는가 보좌하는가 지키는가 받드는가

by 변리사 허성원 2021. 10. 16.

이끄는가 보좌하는가 지키는가 받드는가

 

논공행상(論功行賞)은 공()을 논하여 상()을 시행하는 일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정변 등으로 권력을 잡았을 때 상을 베풀어 공신들의 충성심을 고취시키고 권력의 유지와 강화를 도모한다. 그러나 논공행상이 공정과 적정에 실패하면 신뢰가 무너지고 분란이 일으켜 오히려 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스타트업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실적이 오르고 투자가 넉넉히 유치되면 경영자는 그동안 고생해온 팀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베풀어야 한다. 다들 나름 기대한 바가 있을 것이고 사람마다 능력, 역할, 기여가 모두 달라 차등이 불가피하니 경영자들의 머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다. 고민하는 그들에게 진문공(晉文公, 재위 BC636~628)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진문공은 제환공(齊桓公)에 이어 춘추시대 두 번째로 패업을 이룬 진나라 군주다. 정치적인 핍박을 피해 19년 동안 근 1만 리에 이르는 망명의 유랑생활을 하며 파란만장한 역경을 겪고 62세가 되어서야 귀국하여 임금 자리에 올랐다. 고되고 긴 망명 생활을 함께 한 여러 충성스런 신하들에게 진문공은 즉위 후 논공행상을 시행하였다.

하급 관리 호숙(壺叔)이 공신록에서 빠져있음을 알고 진문공에게 나서 말했다. "신은 포 땅에서부터 주공을 따라 발꿈치가 모두 갈라지도록 천하를 뛰어다녔습니다. 머무르면 침식을 받들고 나서면 거마를 점검하며 잠시도 곁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지금 주공께서 망명에 따랐던 사람들에게 상을 내리시면서 저에게만 미치지 않으니, 혹 신에게 잘못이 있어서입니까?"

이에 진문공이 대답했다. "가까이 오라. 과인이 잘 알게 해주리라. 나를 인의(仁義)로써 이끌어 나의 마음을 넓게 열어준 사람(肺俯開通者)에게 높은 상을 내렸다. 나를 지략으로 보좌하여 제후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해준 사람(不辱諸侯者)에게는 그 다음 상을 주었다.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창날을 막으며 온몸으로 나를 지킨 사람(以身衛寡人者)에게는 또 그 다음의 상을 내렸다. 그러니 높은 상은 덕()에 대한 상이며, 다음이 재()에 대한 상이고, 그 다음이 공()에 대한 상이다. 천하를 돌아다닌 수고로움()은 필부의 힘을 쓴 것이니 그 아래에 있다. 세 가지 상을 시행한 후에 너의 차례가 올 것이다." 호숙은 부끄러이 승복하며 물러났다.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에 나오는 대목이다. 사기(史記)의 기록과는 약간 다르지만, 이쪽이 가슴에 더 와 닿는다. 진문공의 포상 등급 기준은 덕(), (), (), ()의 순이다. 각 덕목에 대한 수식어만 보아도 각 상에 대한 의미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마음을 열어준 사람’, ()부끄럽지 않게 한 사람’, ()창칼을 무릅쓴 사람’, ()뛰어다닌 사람이다. 혹은 이들은 각각 이끈 사람’, ‘보좌한 사람’, ‘지킨 사람’, ‘받드는 사람으로 표현되어 있다.

()'은 군주를 인의로서 이끌어 바른 인성 및 철학을 심어주고 포부를 키워 큰 비전을 가진 리더로서 성장시켜주었다. 가히 가장 높은 공적을 차지할 만하다. ‘()’는 지략으로 군주를 도와 조직의 생존과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이는 타인이 만든 상황에 반응하거나 의존하지 않고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힘 즉 생존역량을 제공한다. ‘()’은 주어진 의무를 다하는 충성과 용기에 기초한 덕목이다. 군주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하지만 상황 반응적인 개인의 헌신이기에, 리더십과 조직 역량의 기초가 된 덕()과 재()의 아래에 둔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는 지시에 응하여 성실하게 자신의 힘을 다한 소극적 가치이니 가장 낮게 평가되었다.

이러한 덕목들을 스타트업의 업무에 적용해보자. ()은 기업의 존재이유 즉 비전을 구축하는 리더십의 요체다. 이는 주로 창업자의 몫이지만 멘토나 투자자 등이 기여할 수도 있다. 기업의 핵심역량을 구축하여 비즈니스 주도성과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연구개발이나 기획 분야는 ()’의 역할에 해당한다. 영업이나 생산 분야와 같이 실적을 중시하는 영역은 ()’의 몫이며, ‘()’는 지시받은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실무자의 것이다. 따라서 각 영역의 주요 가치는 각각 리더십(), 주도성(), 사명감(), 성실성()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제 귀사의 논공행상의 잣대를 점검해보시라. 그대를 이끄는가, 보좌하는가, 지키는가, 혹은 받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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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관리 호숙(壺叔)이 진문공에게 나서 말했다. "신은 포 땅에서부터 주공을 따라 발꿈치가 모두 갈라지도록 천하를 뛰어다녔습니다. 머무르면 침식을 받들고 나서면 거마를 점검하며 잠시도 좌우를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지금 주공께서 망명에 따랐던 사람들에게 내리시는 상이 저에게만 미치지 않으니, 혹 신에게 잘못이 있어서입니까?"
이에 진문공이 대답했다. "가까이 오라. 과인이 잘 알게 해주리라. 나를 인의(仁義)로써 이끌어 나의 마음을 넓게 열어준 사람(肺俯開通者)에게 높은 상을 내렸다. 나를 지략으로 보좌하여 제후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해준 사람(不辱諸侯者)에게는 그 다음 상을 주었다.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창날을 막으며 온몸으로 나를 지킨 사람(以身衛寡人者)에게는 또 그 다음의 상을 내렸다. 그러니 높은 상은 덕()에 대한 상이며, 다음이 재()에 대한 상이고, 그 다음이 공()에 대한 상이다. 천하를 돌아다닌 수고로움()은 필부의 힘을 쓴 것이니 그 아래에 있다. 세 가지 상을 시행한 후에 너의 차례가 올 것이다." 호숙은 부끄러이 승복하며 물러났다.

小臣壺叔進曰:「臣自蒲城相從主公,奔走四方,足踵俱裂。居則侍寢食,出則戒車馬,未嘗頃刻離左右也。今主公行從亡之賞,而不及於臣,意者臣有罪乎?」
文公曰:「汝來前,寡人為汝明之。夫導我以仁義,使我肺俯開通者,此受上賞;輔我以謀議,使我不辱諸侯者,此受次賞;冒矢石,犯鋒鏑,以身衛寡人者,此復受次賞。故上賞賞德,其次賞才,又其次賞功。若夫奔走之勞,匹夫之力,又在其次。三賞之後,行且及汝矣。」 壺叔愧服而退.
_ <
東周列國志/第037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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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에 따라왔던 시종 호숙(壺叔)이 “국군께서 세 번이나 상을 내리셨는데 신에게는 상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감히 아뢰옵건대 제게 무슨 죄가 있는지요?”라고 했다. 문공은 “대저 나를 인의로 이끌고 덕과 은혜로 나를 지킨 사람은 제일 높은 상을 받았다. 행동으로 나를 보좌하여 마침내 자리에 오르게 한 사람은 그 다음의 상을 받았다. 화살과 돌의 위험을 무릅쓰고 땀 흘린 공로가 있는 사람은 그 다음 상을 받았다. 힘으로 나를 섬기되 나의 부족함을 보완하지 못한 사람은 그 다음 상을 받았다. 이 상들을 모두 내린 다음 그대에게도 돌아갈 것이다.”라고 답했다. 진 사람들이 이를 듣고는 모두 기뻐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권39. 진세가 [卷三十九. 晉世家] - 한글 번역문 (사기: 세가(번역문), 2013. 5. 1., 사마천, 김영수)

従亡賎臣壷叔曰;「君三行賞, 賞不及臣, 敢請罪.」文公報曰:「夫導我以仁義, 防我以徳恵, 此受上賞. 輔我以行, 卒以成立, 此受次賞. 矢石之難, 汗馬之勞, 此复受次賞. 若以力事我而無補吾欠者, 此[复]受次賞. 三賞之後, 故且及子.」晉人聞之, 皆説.

[네이버 지식백과] 권39. 진세가 [卷三十九. 晉世家] - 한자 원문 (사기: 세가, 2013. 5. 1., 사마천,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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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후 선조의 논공행상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