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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 #14 누가 명의를 만드는가

by 변리사 허성원 2021. 3. 7.

누가 명의를 만드는가

 

사무소 내에서 피자파티가 열렸다. 승소 기념이다. 중요한 소송에서 이기면 그동안 애쓴 담당 변리사를 격려하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만든다. 이번에는 특히 의뢰인이 크게 감사하며 넉넉하게 주문해주어 풍성하게 즐겼다. 매우 힘든 사건이었다. 하나의 특허침해 이슈에 대해 민사 소송과 함께 심판 항소심까지 여러 개의 소송이 병행되었다. 법리 다툼도 치열했고, 패소할 경우 의뢰인이 져야할 부담도 컸다. 결과적으로 이 번 판결에서 권리가 무효로 인정되어 전반적으로 깔끔히 정리된 셈이다.

승소는 기쁜 일이다. 하지만 이번 분쟁은 큰 아쉬움이 있다. 그동안 의뢰인이 겪은 고통과 기회비용이 너무도 컸던 한편, 애초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제품의 개발 단계에서 다른 특허에 대한 저촉 여부 즉 특허 리스크를 확인해보았더라면, 안전하고 편한 비즈니스의 길을 갈 수 있었던 사안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포크레인으로 막은 셈이니 과도한 학습비용을 썼다.

전국시대에 죽은 사람도 살려냈다는 신의(神醫) 편작(扁鵲)에게 위문왕(魏文王)이 물었다. “그대 3형제 중 누가 가장 뛰어난 의원이오?" 편작이 답하였다. "맏형이 가장 뛰어나고, 둘째형이 그 다음이며, 제가 가장 못합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편작이 답하였다. "맏형은 병이 있기 전에 원인을 찾아내어 병이 나타나지 않도록 그 원인을 없애버립니다. 그래서 그 명성이 집밖을 나가지 못합니다. 둘째형은 병이 미미하게 시작될 때 치료해버리니 그 명성은 마을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저는 혈맥에 침을 놓고 독한 약을 쓰고 살갗을 찢어서 병을 누그러뜨립니다. 그랬더니 명성이 온 제후들에게까지 나게 된 것입니다."

환자의 고통을 최소로 한 진정한 명의들은 그 명성이 널리 퍼지지 못하고, 병이 깊어진 후에 환자를 고통스럽게 치료한 편작은 천하에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는 부조리를 지적한 이 이야기는 갈관자鶡冠子’ ‘세현世賢에 나오는 고사이다.

기업 실무에서도 그런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사전에 지혜롭게 잘 헤아려 예방한 공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들 응당 그러려니 여기고 만다. 그러나 리스크에 대한 무지나 게으름으로 문제를 키워 큰 혼란이 발생시키고, 그 혼란을 힘들게 수습하면 기뻐하며 그 공로를 높이 칭송한다. 예방의 귀한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인간들 보편의 어리석은 모습이다.

그런 어리석음은 특허 업무에서도 종종 보게 된다. 특히 특허 출원의 경우, 발명자가 변리사를 찾아올 때는 대체로 기술 개발이 완료되어 있다. 많은 자원을 들여 개발한 기술을 타인의 모방으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특허출원 의뢰가 등록에까지 이어지는 비율은 높지 않다. 우선 상당 부분은 변리사의 선행기술 조사에서 걸러져 출원조차 되지 못하고, 출원되더라도 심사과정에서 높은 비율로 거절된다. 그러니 이래저래 당초 출원을 도모한 발명 중에서 특허등록까지 성공하는 비율은 20~30% 미만일 것이다.

특허 취득의 실패는 단순히 그 발명에 투입한 노력과 자원이 무위로 돌아간 것에 그치지 않는다. 특허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은 이미 그 발명과 유사한 기술이 누군가에 의해 이미 개발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무상으로 쓸 수 있는 기술에 불필요한 비용을 썼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남의 특허에 저촉되어 애써 개발한 기술을 스스로도 쓸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런 안타까운 일은 미리 변리사의 조력을 얻었다면 예방할 수 있다. 특히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 전이라면 매우 바람직하다. 기술 환경 등을 사전에 널리 이해하여 학습효과를 얻을 수 있고, 리스크 없는 독자의 개발 방향을 자유로이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치과의사인 친구가 있다. 가장 다니기 싫은 곳이 치과라고 했더니, 그는 치과는 자주 오지 않기 위해 자주 와야 하는 곳이야!’라고 말했다. 예방과 조기치료의 중요성을 기막히게 잘 설명한 말이다. 그처럼 질병 치료와 건강은 환자가 의사를 찾는 타이밍에 달려있다. 뿐만 아니라 특허, 법률, 세무, 노무 등 사실상 모든 전문분야의 일은 의뢰인이 언제 전문가를 찾는가에 따라 문제해결의 성공률이나 난이도가 결정된다.

결국 명의는 환자가 만든다. 마찬가지로 변리사 등 모든 전문 영역에서도 유능한 전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의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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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가장 뛰어난 의원이오?(最善為醫)

煖曰:「王獨不聞魏文王之問扁鵲耶?曰:『子昆弟三人其孰最善為醫?』扁鵲曰:『長兄最善,中兄次之,扁鵲最為下。』魏文侯曰:『可得聞邪?』扁鵲曰:『長兄於病視神,未有形而除之,故名不出於家。中兄治病,其在毫毛,故名不出於閭。若扁鵲者,鑱血脈,投毒藥,副肌膚,閒而名出聞於諸侯。』
鶡冠子·世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