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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칼럼

[경남시론] 강한 기업, 꽃뱀을 닮다

by 변리사 허성원 2021. 2. 4.

강한 기업, 꽃뱀을 닮다

 

꽃뱀이라 불리는 유혈목이는 실은 독사다. 알록달록한 무늬를 가진 모습이 위협적이지 않고 겁이 많아 독 없는 뱀으로 알려져, 짓궂은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많이 당하였다. 앞니에 독주머니가 있는 보통의 독사와 달리 꽃뱀은 어금니 쪽에 작은 독주머니가 있다. 저장한 독의 양이 적은데다 어금니가 짧아 독은 주로 먹이를 먹을 때만 쓰인다. 그래서 꽃뱀에게 물려 위험하게 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일부 꽃뱀은 목덜미에 공격용 독주머니를 가지고, 위협을 느끼면 코브라처럼 목을 납작하게 하여 독을 분출한다. 꽃뱀은 원래 목덜미에 독을 생성하는 세포가 없다. 그 독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잡아먹은 두꺼비의 독을 모은 것이다. 게다가 독을 더 강하게 처리하여, 독성은 살모사보다 몇 배나 위험하다고 한다. 암컷 꽃뱀은 독을 알에게 물려주어 새끼는 태어나면서부터 독을 품을 수 있다. 목덜미 독의 보유 여부는 그들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독을 가지면 대담하고 공격적이지만, 독이 없으면 소극적이어서 도망치기 바쁘다.

은 자연 생태계에서 개체의 생존 보장에 매우 효과적인 물질이다. 그러나 화학적 구조가 복잡한 독은 정교한 생화학적 메커니즘과 함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남의 독을 빌려서 자기의 무기로 무장하는 꽃뱀의 전략은 대단히 효율적이고도 경제적이다.

''은 기업의 '핵심역량'으로 대치해볼 수 있다. 핵심역량은 기업의 생존과 지속가능성을 규정한다. 그래서 모든 기업은 강한 핵심역량을 구축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시대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핵심역량을 부단히 확장, 심화, 변경, 혁신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고도의 인적, 물적 시스템과 많은 비용을 수반한다. 그래서 외부에서 배우거나 빌려오거나 사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가져와서 자신의 핵심역량으로 삼으면 그것을 더욱 다듬어 강화하고, 때로는 남에게 빌려주거나 다른 기업이나 후대에 물려주기도 한다. 핵심역량이 강한 기업은 당당하고 공격적이지만, 그것이 약한 기업은 항상 불안하고 소극적이다. 이처럼 기업의 습성은 꽃뱀과 매우 닮아 있다.

남의 핵심역량을 가져와서 내 것으로 무장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기업의 인수합병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작년 한 해에만 20조원 규모의 인수합병이 이루어졌고, 지난 5년간 500건이 넘는 사례가 있다. 구글, 아마존, MS 등 글로벌 공룡 기업들은 그들의 덩치에 걸맞게 각자 매년 수십 개의 기업을 인수하는 엄청난 포식성을 자랑한다. 이처럼 기업 비즈니스는 꽃뱀의 습성을 충실히 따른다.

그런데 인수합병은 비용이 많이 든다. 이런 비싼 방법을 쓰지 않고도 남의 것으로 내 핵심역량을 강화하는 손쉬운 방법이 있다. 그건 특허에 있다. 모든 특허는 출원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발명이 공개된다. 전 세계의 특허출원이 연간 약 300만 건 정도에 달하니, 그 수만큼 세계 유수의 발명자들이 창안해낸 온갖 발명이 누구나 볼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중국, 미국 및 일본에 이어 세계 4위의 다출원 국가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발명이든 그것을 창안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필요나 이유가 있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발명자의 고뇌와 창의력이 그에 화체되어 있다. 발명은 기업 핵심역량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자연 속의 생물체가 만들어낸 과 같은 귀한 성과물이다. 그렇게 귀한 성과물을 별다른 비용이나 노력을 들이지 않고 배워 가질 수 있다. 모든 강한 기업은 예외 없이 경쟁자 등 남의 특허를 부단히 모니터링하고 분석하며 학습한다. 그렇게 배운 지식은 가공되고 조합되어 새로운 발명으로 창출된다. 그리하여 기업에 힘찬 추진력을 제공하는 새로운 성장엔진 혹은 핵심역량이 된다.

그래서 꽃뱀을 닮을수록 기업은 더욱 강하다.

(* 2021.02.08. 경남신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