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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아비 도둑과 아들 도둑 이야기 _ 강희맹의 도자설(盜子說) _ 암묵지

by 변리사 허성원 2025. 5. 11.

아비 도둑과 아들 도둑 이야기 _ 강희맹(姜希孟)의 도자설(盜子說)

 

<도자설(盜子說)> 즉 ‘아비 도둑과 아들 도둑 이야기’는 조선시대 문인 강희맹(姜希孟)이 아들을 훈계하기 위해 지은 <훈자오설(訓子五說)>에 실려있는 글이다.
이 이야기는 아비 도둑이 아들 도둑에게 도둑질의 기술을 전수하고, 마지막으로 일부러 곤경에 빠뜨려 진정한 지혜를 깨닫도록 한다는 주제의 고전 수필이다.

* 줄거리 요약 *

  • 도둑질을 업으로 삼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신의 모든 기술을 전수한다. 아들은 자신이 이제 아버지보다 더 뛰어나다고 자만하게 된다. 이에 아버지는 “아직 멀었다. 진정한 지혜는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 어느 날 밤,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부잣집에 도둑질을 하러 간다. 아들이 창고에 들어가 보물을 챙기고 있을 때, 아버지는 밖에서 문을 잠가버리고 일부러 소리를 내어 집주인이 나오게 만든다.
  • 집주인은 창고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돌아가지만, 아들은 창고에 갇혀버린다. 아들은 손톱으로 문을 긁으며 쥐 소리를 내고, 집주인이 쥐를 쫓으려고 문을 열자 그 틈에 도망친다. 쫓기는 중에는 연못에 돌을 던져 자신이 연못에 빠진 것처럼 속이고, 그 틈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
  • 집에 돌아온 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하지만, 아버지는 “이제야 네가 진정한 도둑이 되었다. 남에게 배운 기술에는 한계가 있지만, 스스로 터득한 지혜는 무한하다. 내가 너를 위험에 빠뜨린 것은 오히려 너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가르친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도둑 이야기라기보다, 지혜와 경험의 중요성, 그리고 진정한 실력은 곤경 속에서 스스로 깨닫고 터득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남에게 배운 기술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나, 위기 상황에서 임기응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이 진정한 능력임을 일깨워준다.

 

**
<전문>

도둑질을 업으로 하는 자가 그 아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모두 가르쳐주었다.
아들도 재주를 믿고 자신이 아비보다 훨씬 낫다고 여겼다.
도둑질을 갈 때마다 아들은 반드시 먼저 들어가고 나중에 나왔으며, 값싼 것은 버리고 귀중한 것만 가져왔다. 
귀는 먼 곳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눈은 어둠 속에서도 잘 살필 수 있어, 뭇 도둑들의 부러움을 사니,
아비에게 자랑하며 말했다
.
“저의 기술이 아버지에 비해 모자람이 없고 힘은 더 나으니, 이걸로 도둑질 나가면 해내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아비 도둑이 말했다.
지혜란, 배움으로만 성취하기엔 모자람이 있으니,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데에서 넉넉함이 있는 법이다
.
 
너는 아직 멀었다.”

民有業盜者敎其子盡其術盜子亦負其才自以爲勝父遠甚
每行盜盜子必先入而後出舍輕而取重耳能聽遠目能察暗爲群盜譽
誇於父曰吾無爽於老子之術而強壯過之以此而往何憂不濟
盜曰
未也智窮於學成而裕於自得汝猶未也

아들 도둑이 답했다.
도둑의 도는 재물을 가져오는 것으로 공을 삼습니다.
저의 공은
 언제나 아버지의 배나 되고 또 나이도 아직 젊으니, 
아버지의 나이가 되면 아마도 능력이 훨씬 나은 경지에 이를 것입니다.”
아비 도둑이 말했다.
“아직 멀었다. 내 기술대로 움직인다면 겹겹의 성도 들어갈 수 있고 깊히 숨겨둔 것도 찾아낼 수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만 차질이 생겨도 재앙이 되는 법이니
모습이나 흔적이 
드러나지 않고 임기응변의 요령에 막힘이 없으려면,
스스로 깨달은 바가 없어서는 안 된다. 너는 아직 멀었다.”
아들 도둑은 여전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盜子曰盜之道以得財爲功吾於老子功常倍之且吾年尙少得及老子之年當有別樣手段矣
盜曰未也行吾術重城可入祕藏可探也然一有蹉跌禍敗隨之若夫無形迹之可尋應變機而不括則非有所自得者不能也汝猶未也盜子猶未之念聞

아비 도적은 다음 날 밤에 아들을 데리고 한 부잣집에 갔다.
아들이 보물 창고 속에 들어가서 보물을 탐하며 챙기고 있을 때
, 
아비 도둑은 밖에서 문을 걸어 닫고 자물쇠를 잠그고 일부러 소리를 내어 주인에게 들리게 하였다.
주인이 나와서 아비 도둑을 쫓다가 돌아가 자물쇠를 보니 이전처럼 잠겨 있기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들
 도둑은 보물 창고 속에서 빠져 나올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손톱으로 빡빡 긁어서 늙은 쥐가 긁는 소리를 내자, 
주인이 말했다. 쥐가 보물 창고 속에 들어가 물건을 망가뜨리니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
등불을 들여서 자물쇠를 열고 살펴보려 할 때, 아들 도둑이 뛰쳐나와 달아났다. 
주인집 식구가 모두 나와 쫓으니 아들 도둑은 다급해졌다.
피하기 힘들 것으로 여겨
, 연못가를 돌며 달리다가 물에다 돌을 던졌다.
쫓던 사람들은도둑이 물에 뛰어 들었다.” 소리치며, 물에서 나오는 쪽을 막고서 잡으려고 찾으니, 
아들 도둑은 그 틈을 타서 달아나 돌아올 수 있었다. 

後夜與其子至一富家令子入寶藏中盜子眈取寶物盜闔戶下鑰攪使主聞
主家逐盜返視鎖鑰猶故也主還內盜子在藏中無計得出
以爪搔爬作老鼠噬嚙之聲主云鼠在藏中損物不可不去
張燈解鑰將視之盜子脫走主家共逐盜子窘度不能免繞池而走投石於水
逐者云盜入水中矣遮躝尋捕 盜子由是得脫歸

아들은 아비를 원망하며 말했다.
짐승들도 하물며 제 새끼를 지킬 줄 아는데, 제게 무슨 잘못이 있길래 해서 이런 고생을 시키십니까?

아비가 말했다.
“이제부터는 당연히 네가 천하를 독보할 것이다.
무릇 사람의 기술이란 남에게 배운 것은 한계가 있는 법이니,
제 마음으로 깨우쳐야만 무궁한 임기응변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하물며 곤궁하고 꽉막힌 상황이라면,
능히 사람의 심지를 굳건하게 하고, 사람의 인성을 성숙하게 하지 않겠느냐?
내가 너를 곤경에 처하게 한 것이야말로 곧 너를 편하게 하기 위한 것이요,
내가 너를 함정에 빠뜨린 것이야말로 바로 너를 구하기 위한 것이다.
네가 창고에 갇히고 추격을 당하던 환란을 겪지 않았다면,
어찌 쥐 긁는 소리 내고 돌을 던지는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해낼 수 있었겠느냐?
네가 곤경에 빠졌기에 지혜를 이끌어내고 임기응변을 구하여 기발한 생각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밑바닥까지 한번 열리고 나면, 다시는 미혹에 빠지지 않는 법이다.
너는 이제 마땅히 천하를 독보할 것이니라.”

과연 그 후로 천하에 그를 당할 적수가 드물었다.

怨其父曰禽獸猶知庇子息何所負相軋乃爾
盜曰而後乃今汝當獨步天下矣凡人之技學於人者其分有限得於心者其應無窮而況困窮咈鬱能堅人之志而熟人之仁者乎吾所以窘汝者乃所以安汝也吾所以陷汝者乃所以拯汝也不有入藏迫逐之患汝安能出鼠嚙投石之奇乎汝因困而成智臨變而出奇心源一開不復更迷汝當獨步天下矣
後果爲天下難當賊

무릇 도적질이란 것은 나쁜 기술이기는 하지만,
그조차도 스스로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천하에 적수가 없다는 말을 듣지 못한다.
하물며 선비나 군자가 도덕과 공명(道德功名)을 논함에 있어서는 어떠하겠는가? 
대대로 벼슬아치를 지내며 녹봉을 받아온 후손들은, 인의의 아름다움과 학문의 유익함을 모르고, 
제 몸이 영예로운 벼슬자리에 오르면 망령되이 앞선 위인에 대적하여 옛 업적을 가벼이 여기니, 
이는 바로 아들 도둑이 아비 도둑에게 잘난 체하는 것과 같다.

만약 능히 존귀함을 사양하고 비천함에 머물며, 호방함을 버리고 담박함을 좋아하고,
자신
을 굽혀 학문에 뜻을 두어, 하늘과 사람의 이치(性理)에 깊이 마음을 쓰면서, 세속에 휩쓸리지 아니하면, 
가히 남들에 뒤처지이 않으면서, 공과 이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라에 쓰임을 받아 나아가거나 물러나 은둔하게 되더라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니,
이는 
이는 바로 아들 도둑이 곤경에 처해서 지혜를 발휘하고 마침내 천하를 독보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다.

너 또한 이와 같으니,
갇히고 쫓기는 시련을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으로부터의 깨달음을 스스로 얻도록 하여라.
이 가르침을 소홀히
 여기선 안 된다.

夫盜賊惡之術也猶必自得然後乃能無敵於天下而況士君子之於道德功名者乎
簪纓世祿之裔不知仁義之美學問之益身已顯榮妄謂能抗前烈而軼舊業此正盜子誇父之時也
若能辭尊居卑謝豪縱愛淡泊折節志學潛心性理不爲習俗所搖奪則可以齊於人
可以取功名用舍行藏無適不然此正盜子因困成智終能獨步天下者也
汝亦近乎是也毋憚在藏迫逐之患思有以自得於心可也毋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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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맹(姜希孟)>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문신이자 문장가, 학자, 화가.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 국오(菊塢), 운송거사(雲松居士) 등 여러 호를 사용했다. 시호는 문량(文良).

- 희맹은 명문가 출신으로, 아버지는 강석덕(姜碩德), 어머니는 세종의 비 소헌왕후의 여동생인 청송 심씨이다. 
형은 유명한 화가 강희안(姜希顔)이다.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고 있었고, 집안은 대대로 고위 관직을 역임했다.

- 1447년(세종 29)에 24세로 친시문과에 장원급제해 관직에 진출했다. 이후 종부시주부, 예조판서, 형조판서, 좌찬성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세종부터 성종까지 6대에 걸쳐 관직생활을 했습니다.

-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꼽혔으며, 서거정과 쌍벽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문선』, 『동국여지승람』, 『국조오례의』, 『경국대전』 등 국가적 편찬 사업에 적극 참여했다.

- 대표 저서로는 조선 초기의 농서인 『금양잡록(衿陽雜錄)』이 있다. 이는 농업 기술과 풍속, 지방의 실정을 기록한 중요한 문헌이다.
아들을 훈계하기 위해 쓴 교훈적 산문집인 『훈자오설(訓子五說)』, 특히 ‘도자설(盜子說, 도둑의 아들 이야기)’이 유명하다. 이 글은 배움의 한계와 스스로 깨달음(자득)의 중요성을 우화적으로 강조한다.

- 그림에도 뛰어나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도 이름을 남겼다. 형 강희안과 함께 예술적 업적을 쌓았다.

- 강희맹은 조선 초기 문신 중에서도 문장, 학문, 예술에 모두 능했던 인물로, 세조와 성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의 삶과 저작은 조선 전기 지식인과 관료, 예술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 요약:
강희맹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 문신이자 문장가, 학자, 화가로, 국가 편찬 사업과 농서 저술, 아들 교육을 위한 교훈적 산문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으며, 명문가 출신으로 왕실과도 인척 관계가 깊었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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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설(盜子說)과 암묵지의 관계>

도자설(盜子說)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도둑질의 기술을 모두 가르쳤지만, 실제로 위기 상황에 빠진 아들이 스스로 지혜를 발휘해 탈출함으로써 ‘진정한 기술’은 체험과 자기 깨달음을 통해 얻어진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는 암묵지(暗默知, Tacit Knowledge)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암묵지란,  언어나 문서로 명확하게 설명하거나 전달하기 어려운, 몸에 밴 경험적 지식과 직관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으로 자전거 타기, 장인의 손맛, 위기 상황에서의 임기응변 등이 있다. 이는 반복된 경험과 체험을 통해 내면화된 지식으로, 단순히 설명이나 교육만으로는 습득하기 어렵다.

도자설에서 암묵지의 작동

  • 아버지는 아들에게 도둑질의 ‘형식지’(명시지, Explicit Knowledge), 즉 기술과 요령을 모두 가르쳤다. 그러나 아버지는 "진정한 지혜는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아들이 실제로 곤경(창고에 갇힘)에 처했을 때, 배운 기술만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었다. 이때 아들은 손톱으로 쥐 소리를 내고, 연못에 돌을 던져 쫓기던 상황을 모면하는 등, 즉각적이고 창의적인 임기응변을 발휘한다.
  • 이러한 과정은 경험을 통해 내면화된 지식, 즉 암묵지가 발현되는 순간이다. 아들은 위기를 겪으며 ‘몸으로 체득한’ 지혜를 얻었고, 이는 단순히 가르침(명시지)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교훈과 암묵지의 본질

  • 도자설의 핵심 교훈은 ‘진정한 지식과 기술은 스스로 겪고 깨달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암묵지의 본질과 일치한다.
  • 아버지가 의도적으로 아들을 위험에 빠뜨린 것은, 아들이 직접 체험을 통해 암묵지를 습득하게 하려는 교육적 의도였다.
  • 즉, '아버지의 가르침(명시지)' → '아들의 체험(암묵지)' → 위기 극복(암묵지의 실천)이라는 지식 전이의 과정을 보여준다.

요약

도자설은 "경험을 통해 내면화된 지식(암묵지)이야말로 진정한 실력"임을 강조하는 고전적 사례입니다. 아버지의 가르침은 명시지였으나, 아들은 위기 속에서 스스로 깨우친 암묵지를 통해 진정한 도둑의 기술을 완성했다.
이처럼 도자설은 암묵지의 중요성과, 암묵지가 어떻게 실제 상황에서 발휘되고 성장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