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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AI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by 변리사 허성원 2025. 6. 21.

AI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경향포럼의 특집 인터뷰 기사이다. 중국 출신 인문학자 샹뱌오 독일 막스플랑크 사회인류학연구소장의 대단히 인문학적으로 통찰력을 주는 말이다.)

“우리가 ‘초가속 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은 부분적으로 방향 감각 상실에서 비롯된다. 많은 사람이 뭔가를 안정적으로 붙잡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지면에 발을 단단히 디디는 감각도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 들고, 무엇이 닥칠지 모르겠고, 방향을 잃은 느낌이 드는 거다. 이럴 때는 매 순간이 매우 빠르게 느껴진다. 이어 혼란, 심지어는 두려움이 생긴다. 왜냐하면 기준점, 닻을 잃었기 때문이다.

"빠르게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에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없고, 지적으로 대응할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AI는 매우 중요할 수 있다. 다만 우리는 AI가 실제로 어떻게 진화할지 알 수 없다. AI가 어떻게 변할지, 그게 재난을 초래할지 등 다양한 공상이나 가능성을 따지는 건 흥미롭긴 하다. 하지만 그건 나 같은 인문학자가 할 일은 아니다. 내 일은 전통을 들여다보고 우리 자신의 기반을 만들고, 우리의 강점을 구축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어떻게 발전하든, 우리가 거기에 대응하거나 저항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바이러스를 대하는 중의학 또는 한의학과 같다. 바이러스는 분명 무섭다. 서양 의학은 바이러스를 겨냥해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아시아 의학은 ‘바이러스가 아닌 자신에게 집중하라’라고 말한다. 면역 체계를 키우고, 몸의 균형을 유지해야 함을 강조한다. 물론 모든 위험을 제거할 수는 없지만, 그 위험이 우리 삶을 지배하거나 압도할 것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일상의 아름다움이나 평범한 사람들의 힘, 강인함을 구체적인 이미지와 언어로 만들어낼 사람들이 필요하다. 현재 AI가 강력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정책 언어로 쉽게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증시를 보면, 사람들이 AI 관련 주식을 엄청나게 산다. 이건 경제적인 현상뿐 아니라 상징적 효과도 있다. 모든 자본을 빨아들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와, AI는 진짜 강력하구나’ 생각한다. 또 전쟁에서 AI가 무기를 강화하는 것도 미디어로 접하며 마치 자신의 삶이 아무 의미 없는 깃털이나 나뭇잎처럼 느낀다. 그런데 작은 나뭇잎에도 아름다움은 있다. 그걸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있어야 하고, 감수성을 길러야 한다."

"AI가 등장하기 전부터 인간은 이미 AI를 흉내 내고 있었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학교에서 글을 쓰기 시작할 때, 기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 학자로서 일을 막 시작했을 때, 우리는 자기 목소리로 글을 쓰지 않는다. 권위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낸다. 그 권위 있는 목소리는 보통 사회가 좋다고 여기는, 힘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규범이다. 하지만  AI가 등장하면서 AI는 우리에게 ‘너희들 굳이 그렇게 쓸 필요 없어, 내가 대신 써줄게’ ‘너희도 어차피 AI처럼 쓰잖아’라고 말하고 있다. 이건 인간이, 특히 예술가나 연구자들이 자신만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라 생각한다. AI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문장을 만든다. 100만개의 텍스트를 보고 그 문장 구조를 따라간다. 예술가나 학자는 AI와 정반대 방식을 취해야 한다. ‘100만명이 이렇게 이해했다면, 나는 다르게 이해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철학자, 시인, 예술가로 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게 바로 예술과 인문학, 사회 연구의 원래 정신이다."

"자기 목소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힘있게 표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대 사회는 정보의 접근성이 높아지고 모든 게 다 투명해져 범죄자를 추적하거나 검거하기 쉬워졌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는 숨 쉴 공간이 없다고 느낀다. 삶이 옥죄는 느낌을 받는다. AI가 더 투명해져도 우리가 삶의 의미를 더 많이 느끼거나, 더 숨 쉴 수 있게 되거나, 삶이 더 풍요로워지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들이 ‘AI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알아야 하고, 왜 그런 결과를 내는지 알아야만 우리가 AI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 길은 잘못된 방향이다. 그 길은 막다른 골목이다. AI는 어떤 설명도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그건 AI에게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우리다. 때로는 덜 투명한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

"그런데 만약 모든 게 100% 투명하다면,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이 사람이 당신에게 보답할 확률이 98%다’라고 예측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럼 나는 그걸 기반으로 도와주는 결정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더 이상 도덕적 결정이 아닌 계산이다. 사랑은 또 어떤가. ‘사랑에 빠진다’라는 건, 이성적 계산을 내려놓고 감정에 맡긴다는 의미다. 그런데 빅데이터가 ‘이혼 확률이 50%다’라고 알려준다면, 그건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인간의 사랑 능력은 투명성이 높아지면 사라질 거다. 우리가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감정, 학교에서 역사 과목에 빠져드는 감정, 일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설명할 수 없는 거다.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이란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인간의 감정과 활동에 대한 이런 설명 불가능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대를 한 단어로 정의해야 한다면, ‘상실’을 택하겠다. 숲에서 길을 잃은 듯한, 그런 상실감. 많은 사람이 지금 방향을 잃었다고 느낀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해한다. 상실감은 AI가 초래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실이 초래한 결과가 AI다. 상실감은 AI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가 길을 잃었기 때문에 AI가 더욱 큰 존재처럼 보인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다시 길을 찾아야 할 때다. AI와 싸울 것인가, AI를 받아들일 것인가. 긴 인류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가족·사회·복지란 무엇인가’, ‘경제는 어떻게 조직돼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들을 다시 던져야 한다.”

샹뱌오 독일 막스플랑크 사회인류학연구소장



https://www.khan.co.kr/article/202506181416001

 

“AI 등장 전부터, 인간은 AI 흉내를 내고 있었다”…인문학자의 일침

“우리가 ‘초가속 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은 부분적으로 방향 감각 상실에서 비롯된다. 많은 사람이 뭔가를 안정적으로 붙잡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지면에 발을 단단히 디디는 감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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