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리는 꽃잎 한 장에도 봄은 깎이어 가고
一片花飛減却春 (일편화비감각춘)
날리는 꽃잎 한 장에도 봄은 깎이어 가고
風飄萬點正愁人 (풍표만점정수인)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에 시름만 깊어가네
且看欲盡花經眼 (차간욕진화경안)
보고 또 보려 하나 꽃잎은 눈앞을 스쳐가버리니
莫厭傷多酒入脣 (막염상다주입순)
서러움 많다 말고 입술로 술이나 들이키세
江上小堂巢翡翠 (강상소당소비취)
강가 작은 정자에 비취새가 둥지 틀고
苑邊高塚臥麒麟 (원변고총와기린)
언덕 가 큰 무덤에 기린 석상 누워있으니
細推物理須行樂 (세추물리수행낙)
세상 이치 헤아려 세세히 즐겨야 마땅하거늘
何用浮名絆此身 (하용부명반차신)
어찌 부질없는 명성에 이 몸을 얽어맬 건가
_ < 두보(杜甫)의 곡강(曲江) 제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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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리는 꽃잎 한 장에도 봄은 깎이어 가고"
이 첫 연의 시구가 가 워낙 강렬한 느낌을 주어서 찾아보았다.
봄이 가고 있음을 이토록 감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역시 두보(杜甫)는 가히 시성(詩聖이라 불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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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杜甫)>
중국(中國) 당나라(唐--) 때의 시인(詩人)(712~770). 자(字)는 자미(子美). 호(號)는 소릉(少陵)ㆍ공부(工部)ㆍ노두(老杜). 율시(律詩)에 뛰어났으며, 긴밀(緊密)하고 엄격(嚴格)한 구성(構成), 사실적(事實的) 묘사(描寫) 수법(手法) 따위로 인간(人間)의 슬픔을 노래하였다. ‘시성(詩聖)’으로 불리며, 이백(李白)과 함께 중국(中國)의 최고(最高) 시인(詩人)으로 꼽힌다. 작품(作品)에 <북정(北征)>, <병거행(兵車行)> 따위가 있다.
이백(李白, 701~762)과 더불어 중국(中國)의 최고 시인(詩人)으로 일컬어진다. 만년(晚年)에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의 관직(官職)을 지냈으므로, 두공부(杜工部)라고 불리기도 한다. 오늘날 전해지는 두보(杜甫) 시는 대략 1,470여 수이다. 그 시를 보면 고난으로 가득 찼던 유량의 시기에 따라 각각 시풍(詩風)의 변화(變化)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다른 시인(詩人)에게서는 그 예를 찾아보기 드문 일이다. 두보(杜甫) 시는 그의 엄격한 정신을 표현(表現)한 격조 높은 것으로 철저(徹底)하게 사실(事實)을 묘사(描寫)하는 수법(手法)과 엄격한 성률(聲律)에 의해 세상(世上) 일이나 사람의 감정(感情)을 미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두보(杜甫)는 안사의 난 이후 현실주의적(現實主義的) 시풍(詩風)을 전개했다. 나아가 그의 시는 다음 세대인 북송(北宋)의 왕안석(王安石) ㆍ 소식(蘇軾) ㆍ 황정견(黃庭堅) 등에 의해 높이 평가(評價)되어 오늘날까지 여전히 민중을 위한 시인(詩人)으로 널리 존중(尊重)되고 있다. 보통 이백(李白)을 시선(詩仙), 두보(杜甫)를 시성(詩聖)이라고 하며, 흔히 이 두 사람을 이두(李杜)라고 부르고 있으나, 후세(後世) 한시(漢詩) 문학(文學)에 끼친 영향(影響)은 두보(杜甫)가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백성(百姓)들의 고난, 사회(社會)의 부조리, 충군애국(忠君愛國)과 당시의 현실(現實)을 그대로 시로 읊어, 후세(後世) 사람들이 그의 시를 시로 쓴 역사(歷史), 곧 “시사(詩史)”라고도 부른다. 율시(律詩)와 악부(樂府)시에 더욱 뛰어났다. 그의 시는 웅혼(雄渾)ㆍ침통(沈痛)하여 충후(忠厚)의 정이 가득했다. 저서(著書)에 ≪두공부집(杜工部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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