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
(*안광복 철학 강사의 SERICEO의 250224 강의 스크립트를 옮겨 왔다.
'다수의 횡포' 혹은 '다수의 폭정'은 민주주의의 한계이면서 취약점이기도 하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미국의 정치 경제적 혼란도 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어느 나라든 민주주의 하에서는 같은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러한 '다수의 폭정'의 위험에 대해 이 강의가 잘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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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영국은 전쟁을 벌였습니다. 미국 독립 전쟁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기라, 영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감정이 좋지 않았지요. 게다가, 영국은 자신들과 갈등 중인 프랑스 편을 드는 미국이 마뜩잖았습니다. 그렇다고 두 나라가 전쟁까지 벌일 만큼 심각한 갈등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군사력이 충분치 않았고 영국 또한 미국을 손보기에는 너무 먼 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는 미국의 캐나다 침공으로 시작하여, 영국이 워싱턴을 함락하고 백악관을 불 지를 정도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마침내 전쟁은 소득 없는 평화 협정으로 끝났지요. 이렇듯 의미 없는 전쟁이 왜 벌어졌을까요?
영미전쟁은 미국 민주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입니다. 당시 미국인은 마음은 영국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했는데요. 정치가들은 이 점을 붙들고 늘어졌지요. 선거에서는 영국과 전쟁을 하자는 편이 번번이 이겼습니다. 그래서 의회와 정부를 전쟁 찬성론자들이 차지하게 되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깨어있다면 올곧은 목소리로 시민들의 흥분을 가라앉혀야 합니다. 하지만 볼티모어의 한 신문사가 문제점을 지적하자, 성난 군중들은 편집자를 살해하고 기자들을 폭행해 버립니다. 그러자 언론은 성난 여론 앞에서 입을 닫아버립니다. 사법부는 또 어땠을까요? 시민들로 이루어진 배심원들은 앞서 사건의 범인들을 재판에서 풀어주었습니다. 입법과 사법과 행정, 그리고 언론. 민주주의의 네 기둥을 모두 흥분한 다수가 장악해 버린 셈입니다. 파괴와 혼란을 낳은 영미 전쟁이 그 결과이고요.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1805~1859)은 <미국의 민주주의> 2권에서, 미국식 민주주의가 품은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고 처방합니다. 그에 따르면 미국 민주주의의 문제는 제도가 취약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수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원칙 자체에 있지요. 토크빌은 '민주국가가 다다르게 될 압제는 여태껏 세상에 존재했던 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며 강하게 경고합니다. 그는 이를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이라 부르는데요.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200년 전에 토크빌의 눈에, 미국은 독재자의 등장을 막기에는 매우 취약한 나라로 보였습니다. 미국인들은 독립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따라서 분쟁도 많은 수밖에 없는데요. 이럴수록 갈등을 잠재울 강한 지도자를 은근히 바라게 되기 마련입니다. 잘난 누군가가 나타나서 내 통동댕이쳐지는 모습은 대중을 환호하게 합니다.
게다가 포퓰리즘 정책에도 휘둘리기 쉬운데요. 퍼주기식 정책은 평등에 익숙한 시민들에게 자기도 남들만큼 누린다는 안도감을 안기는 까닭입니다. 게다가 일상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에 매달리느라 사회 정의나 공적인 일에 무관심해지기 쉽습니다. 마지막으로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도로와 항만 등 큰 인프라가 필요해지곤 하는데요. 이런 것들을 개인이 어쩌지 못할 규모이지요. 그래서 이를 체계적으로 추진할 크고 강한 국가 권력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토크빌은 앞으로 미국의 민주주의는 결국 강력한 국가가 권력을 움켜쥔 대중 독재국가로 변할 수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무려 200여 년 전에 말이지요. 토크빌의 진단은 지금의 현실과 들어맞는 듯도 보입니다.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걸고 다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펼치는 논리는 토크빌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곳곳에서 국가의 살림을 좀 먹는 적들, 그들에게 이용당하며 시민들은 등쳐먹는 무능한 기득권자들층, 이상만 외치며 현실을 외면하는 무능한 정치가들이 가득한 나라, 트럼프의 눈에 비친 지금의 미국이지요. 트럼프의 말은 많은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두목과 리더는 다릅니다. 힘으로 상대를 윽박지르며 당장의 이익을 챙길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나에게 틈이 생기면, 상대도 곧 나를 밟으려 덤벼들 테니까요. 관세와 보호무역으로 상대를 길들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효과가 오래가기는 어렵습니다. 철저한 보호정책의 결과, 안전히 무너진 미국의 조선업이 그 증거라 할 만한데요. 힘으로 윽박지르는 두목과 달리, 리더에게는 존경심을 자아내는 도덕성과 높은 품격이 있어야 합니다.
토크빌은 미국이 “다수의 폭정에 휘둘릴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미국 민주주의의 강건함을 근거 믿었습니다. 토크빌에 따르면, 미국은 “바르게 이해된 자기 이익의 원리”를 경험으로 느끼며 몸에 익히는 나라입니다. 어쩌면 자국의 이익 중심으로 완전히 돌아버린 지금의 미국은 “바르게 이해된 자기 이익의 원리”를 더 깊게 배워가는 과정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토크빌이 진단한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다수의 절대적인 지배”로 흐를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뜻”이 언제나 옳으리라는 법은 없지요. 민주주의는 결코 완전한 제도가 아닙니다. 히틀러도 민주적인 투표를 통해 국민의 뜻에 따라 집권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토크빌이 말한 민주주의의 핸디캡, 즉 “다수의 폭정”에서 벗어날 방법은 무엇일까요? 프랑스의 몰락한 귀족이었던 토크빌은 영국의 민주주의자인 존 스튜어트 밀과 가까웠습니다. 밀의 '타인 위해의 원칙'은 다수의 폭정을 막을 결정적인 근거가 되는 데요. 다음 시간에는 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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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 위해의 원칙(Harm Principle)> _ 챗GPT 해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 『자유론(On Liberty, 1859)』에서 제시한 ‘타인을 해하지 않는 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원칙은, 흔히 ‘타인 위해의 원칙(harm principle)’이라 불리운다.
이 원칙은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핵심 기준 중 하나로,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개입 사이의 경계를 제시하려는 시도였다.
* 타인 위해의 원칙(Harm Principle)이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당한 이유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자신에 대한 해를 막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 핵심 내용 정리:
1. 자유의 전제
성인 개인은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대해 절대적인 권리를 가진다.
즉, 개인의 자기결정권이 최우선임.
2.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단, '다른 사람에게 피해(harm)'를 줄 경우에는 사회나 국가가 개입할 수 있다.
단순한 도덕적 불쾌감, 불편함은 ‘해악’으로 간주하지 않음.
3. '스스로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예: 음주, 자해)'는,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한 금지되어서는 안 된다.
* 철학적 함의:
밀은 개인의 자유와 사회 질서 사이의 균형을 고민했다.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을 경계한 점에서, 앞서 말한 토크빌과도 연결된다.
다수가 어떤 행동을 불쾌하게 여긴다고 해서 그것이 금지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오직 ‘해악’이 있는 경우에만 법과 권력이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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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광복 중동고 철학 교사의 칼럼)
1789년부터 1848년까지 유럽은 '혁명의 시대'였습니다. 프랑스대혁명으로 왕이 사라진 세상. 사람들은 이제 시민 모두가 주인인 시대가 펼쳐지리라 기대했어요. 하지만 민주주의는 쉽게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정치는 혼란스러워졌고, 그때마다 독재자가 등장하거나 왕이 다시 세워지곤 했으니까요. 프랑스의 법관이었던 알렉시 드 토크빌(1805~1859)은 미국에 눈길을 돌렸습니다. 영국으로부터 갓 독립한 미국은 경제적으로도 약하고 정부와 행정도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안정적으로 민주주의를 꾸려나갔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1831년, 토크빌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미국 여행에 나섭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책이 '미국의 민주주의'예요. 그는 미국을 '유년기 없이 바로 청년이 된 사람'에 빗댑니다. 미국 사람들에게는 왕의 다스림을 받았던 기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사회에는 시민들끼리 모든 것을 논의하고 결정짓는 습성이 쉽게 뿌리를 내렸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이지요. 이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무작정 따르기보다, 스스로 자기 행동을 책임지며 도덕적으로 삶을 가꾸려고 노력합니다. 그만큼 개인주의 색채도 강했어요.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를 미국인들의 습성과 도덕성에서 짚어냅니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유럽은 미국 같은 민주주의의 풍습이 없었기에 엄청난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점에서 토크빌은 미국을 아주 부러워했어요. 하지만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품고 있는 위험도 정확하게 진단합니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수의 지배'를 당연하게 여기지요. 그러나 다수가 언제나 옳지는 않아요. 토크빌은 정의롭지 못한 다수가 권력을 잡을 때, 여느 독재보다 훨씬 잔인하고 무서운 '민주적 전제'(democratic despotism)가 펼쳐진다고 걱정합니다.
1812년, 캐나다 영토를 둘러싸고 미국과 영국은 전쟁을 벌였어요. 정치인들은 영국에 대한 적대감을 한껏 부추겨 미국을 싸움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한 신문이 이런 정치인들이 문제라고 지적하자 화가 난 군중들은 신문사를 습격해 직원들을 폭행합니다. '민주적인' 재판을 담당한 배심원들마저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폭행범들을 풀어주지요. 입법과 행정, 사법이 모두 다수의 손에 들어갔기에 가능했던 결과입니다. 하지만 전쟁은 서로에게 큰 손실만 남긴 채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습니다.
토크빌은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려면 독재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다수의 횡포를 막을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산업이 발전하고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시민들은 강력하고 효율적인 정부를 바라게 됩니다. 그러한 정부를 견제받지 않는 다수가 차지할 때, 민주주의는 그 어떤 독재보다도 무서운 전체주의로 빠질 수 있어요. 이를 막으려면 민주적인 풍습과 도덕이 사회에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 점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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