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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세상살이/설원(說苑)_유향(劉向)

수문(券十九 修文)_설원(說苑) _ 유향(劉向)

by 변리사 허성원 2022. 8. 7.

수문(券十九 修文)_설원(說苑) _ 유향(劉向)

 

** 역문은 동양고전DB에서 가져옴.

**   禮樂 制度 修治하여 文治 强化하는 데 重點을 두고 있다. 앞에서는  을 기술하여 王業 을 이루면  制定하고 정치가 안정되면 을 만드는 意義를 제출하여 禮樂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敎化를 펼치는 예악사상을 闡明하였다. 과 예악의 관계를 논하여 덕이 지극하지 않으면 예악을 할 수가 없음을 말하여 德政의 기본이 예악에 있음을 밝혔다. 그리하여 군자가 예가 없으면 바로 庶人이고, 서인이 예가 없으면 바로 禽獸라 하여 예가 없이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음을 드러내었다.
예의 구체적 내용과 응용, 言行擧止와 용모, 복장 등을 제시하고, 冠禮의 중요성과 婚姻 , 帝王 寢殿 , 饋贈  등을 차례로 들어 論及하고 있다. 그 밖에 賞罰 , 天子 諸侯 政績 考察하는 , 天子의 사냥하는 , 葬禮 喪禮, 祭祀  등이 뒤를 이어 전개되고 있다. 끝부분에서 音樂 效用 理論  亂世의 음악과 治世의 음악에 대하여 열거하였다.

 

1. 移風易俗,莫善於樂;安上治民,莫善於禮

天下有道,則禮樂征伐自天子出。夫功成制禮,治定作樂,禮樂者,行化之大者也。孔子曰:「移風易俗,莫善於樂;安上治民,莫善於禮。是故聖王修禮文,設庠序,陳鍾鼓,天子辟雍,諸侯泮宮,所以行德化。詩云:『鎬京辟雍,自西自東,自南自北,無思不服。』此之謂也。」

천하에 가 있을 때에는 禮樂의 제정과 征伐이 천자로부터 나온다. 功業을 이루면 禮를 제정하고 정치가 안정되면 음악을 제작하니, 禮樂은 교화를 행하는 중대한 일이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풍속을 善하게 변화시키는 데에는 음악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윗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백성을 잘 다스리는 데에는 禮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이 때문에 聖王禮文을 밝게 제정하고 학교를 설치하며 악기를 진열하였다. 천자의 學宮辟雍이라 하고 제후의 學宮泮宮이라 하는데, 교화를 행하기 위한 것이다詩經鎬京辟雍을 세우자, 서쪽에서 동쪽에서, 남쪽에서 북쪽에서,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네.”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2. 積恩為愛,積愛為仁,積仁為靈

積恩為愛,積愛為仁,積仁為靈,靈臺之所以為靈者,積仁也。神靈者,天地之本,而為萬物之始也。是故文王始接民以仁,而天下莫不仁焉。文,德之至也,德不至則不能文。

恩德을 쌓으면 사랑하는 마음이 되고, 사랑하는 마음을 쌓으면 仁德이 되며, 인덕을 쌓으면 신령하게 된다. 靈臺가 신령스럽게 된 까닭은 인덕을 쌓았기 때문이다. 신령스러움은 天地의 근본이고, 萬物의 시초이다. 이 때문에 文王이 처음 仁德으로 백성을 대하자, 천하 사람들이 인덕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는 文德의 지극한 경지이니, 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文敎를 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3. 商者,常也,常者質,質主天;夏者,大也,大者,文也,文主地。

商者,常也,常者質,質主天;夏者,大也,大者,文也,文主地。故王者一商一夏,再而復者也,正色三而復者也。味尚甘,聲尚宮,一而復者,故三王術如循環,故夏后氏教以忠,而君子忠矣;小人之失野,救野莫如敬,故殷人教以敬,而君子敬矣。小人之失鬼,救鬼莫如文,故周人教以文,而君子文矣。小人之失薄,救薄莫如忠,故聖人之與聖也,如矩之三雜,規之三雜,周則又始,窮則反本也。詩曰:「彫琢其章,金玉其相。」言文質美也。

商은 항상[常]이라는 의미이고, 항상은 질박함이니 질박함은 하늘의 주체이다. 夏는 크다는 의미이고, 큰 것은 禮文이니 예문은 땅의 주체이다. 그러므로 王朝가 한 번은 나라가 되고 한 번은 나라가 되었으며 한 번은 質朴을 숭상하고 한 번은 修飾을 숭상하였으니, 文質은 두 번에 걸쳐 돌아오는 것이고, 正朔服色은 세 번에 걸쳐 돌아오는 것이다.

단맛[]을 숭상하고, 宮聲을 숭상하는 것은 한결같이 사용하여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周 三王의 통치하는 방법은 잇따라 도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夏后氏가 백성들에게 을 가르치자 君子들이 충성하였다. 일반 백성의 결점은 거칠고 상스러움인데, 거칠고 상스러움을 바로잡는 법은 恭敬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나라 사람이 백성들에게 공경을 가르치자 군자들이 공경하였다. 일반 백성들의 결점은 귀신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인데, 귀신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을 바로잡는 방법은 예문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주나라 사람이 백성들에게 예문을 가르치자 군자들이 예문을 닦았다. 일반 백성들의 결점은 경박함인데 경박함을 바로잡는 방법은 충성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聖人과 성인이 계승하여 통치하는 방법은, 자나 그림쇠처럼 세 바퀴를 돌아, 한 바퀴 돌면 다시 시작하고, 다 돌면 처음으로 돌아간다詩經아로새겨 다듬은 문채요, 같은 바탕이다.” 하였으니, 문질의 아름다움을 말한 것이다.

4. 敬上愛下,謂之諸侯;天覆地載,謂之天子

傳曰:「觸情縱欲,謂之禽獸;苟可而行,謂之野人;安故重遷,謂之眾庶;辨然通古今之道謂之士;進賢達能,謂之大夫;敬上愛下,謂之諸侯;天覆地載,謂之天子。是故士服黼,大夫黻,諸侯火,天子山龍;德彌盛者文彌縟,中彌理者文彌章也。」

옛 책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자기의 감정대로 행동하고 자기의 욕망대로 방종한 사람을 禽獸라 이르고, 구차스럽게 적당히 지내는 사람을 촌스런 野人이라고 이르며, 옛 풍습을 편안하게 여기고 쉽게 고치지 않는 사람을 일반 백성이라 이르고, 是非를 분별하고 古今의 道理를 통달한 사람을 士라 이르며, 어진 이를 천거하고 재능 있는 이를 추천하는 사람을 大夫라 이르고,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을 諸侯라 이르며, 하늘처럼 덮어주고 땅처럼 받아주는 사람을 天子라 이른다.

이 때문에 는 도끼 무늬가 있는 黼服을 입고, 대부는 자 무늬가 있는 黻服을 입으며, 제후는 火焰 무늬가 있는 옷을 입고, 천자는 의 무늬가 있는 옷을 입는다. 이 더욱 성대한 사람은 옷의 문채가 더욱 繁華하고, 마음이 더욱 사리에 밝은 사람은 옷의 문채가 더욱 빛나는 것이다.”

5. **

詩曰:「左之左之,君子宜之;右之右之,君子有之。」傳曰:「君子者,無所不宜也,是故冕厲戒,立于廟堂之上,有司執事無不敬者;斬衰裳,苴絰杖,立于喪次,賓客弔唁無不哀者;被甲攖冑立于桴鼓之間,士卒莫不勇者。故仁者足以懷百姓,勇足以安危國,信足以結諸侯,強足以拒患難,威足以率三軍。故曰為左亦宜,為右亦宜,為君子無不宜者,此之謂也。」

詩經왼쪽에서 왼쪽 일을 도울 적에 君子가 알맞게 하며, 오른쪽에서 오른쪽 일을 도울 적에 군자가 빠짐없이 일을 둔다.” 하였고, 옛 책에 군자는 알맞게 하지 않는 일이 없다.” 하였다.

이 때문에 朝服을 갖추어 입은 복장으로 朝廷에 서 있으면 각종 직무를 맡은 官員들이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고, 斬衰服을 입고 喪杖을 짚은 차림으로 喪主의 자리에 서 있으면 弔問하는 손님들이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으며, 갑옷을 입고 투구 끈을 묶은 복장으로 전쟁을 지휘하는 북 사이에 서 있으면 병사들이 용감하게 진격하지 않는 자가 없다.

그러므로 군자의 仁愛는 백성을 安撫할 수 있고, 勇氣는 위기에 처한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으며, 信義諸侯結盟할 수 있고, 강력함은 患難을 막을 수 있으며, 威武三軍을 통솔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왼쪽 일을 도울 적에도 알맞게 하고, 오른쪽 일을 도울 적에도 알맞게 하며, 군자는 알맞게 하지 않는 일이 없다.”라고 말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6. 禮者所以御民也,轡者所以御馬也;無禮而能治國家者,嬰未之聞也。

齊景公登射,晏子脩禮而待。公曰:「選射之禮,寡人厭之矣。吾欲得天下勇士,與之圖國。」晏子對曰:「君子無禮,是庶人也;庶人無禮,是禽獸也;夫臣勇多則弒其君,子力多則弒其長,然而不敢者,惟禮之謂也。禮者所以御民也,轡者所以御馬也;無禮而能治國家者,嬰未之聞也。」景公曰:「善。」乃飭射更席以為上客,終日問禮。

齊 景公射臺에 올라 大射를 거행할 때 晏子禮儀를 가지런히 하여 대기하였다.

경공이 말했다. “사람을 선발하는 활쏘기 예절은 복잡하여 나는 싫어하오. 나는 천하의 勇士를 얻어 그와 함께 나라의 큰일을 도모하고자 하오.”

안자가 대답했다. “君子가 禮가 없으면 바로 庶人과 같고, 서인이 예가 없으면 바로 禽獸와 같습니다. 신하가 勇力이 많으면 그 임금을 시해하고, 어린 사람[]이 용력이 많으면 그 어른을 시해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오직 예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는 백성을 통제하는 것이고, 고삐는 말을 제재하는 것입니다. 예가 없으면서 나라를 잘 다스렸다는 사람을 저는 듣지 못했습니다.” 경공이 말했다. “좋은 말이오.”곧 활 쏘는 예를 신칙하고 자리를 바꾸어 안자를 上客으로 삼아 온종일 예에 대하여 물었다.

7. 溫溫恭人,惟德之基

書曰五事:一曰貌。貌者男子之所以恭敬,婦人之所以姣好也;行步中矩,折旋中規,立則磬折,拱則抱鼓,其以入君朝,尊以嚴,其以入宗廟,敬以忠,其以入鄉曲,和以順,其以入州里族黨之中,和以親。詩曰:「溫溫恭人,惟德之基。」孔子曰:「恭近於禮,遠恥辱也。」

書經五事의 첫째는 용모[]이다.”라고 하였으니, 용모는 남자의 공경을 표현하는 곳이고, 여자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곳이다. 걸어갈 때에는 곱자[矩]의 규범에 맞아야 되고, 꺾어서 돌 때에는 그림쇠[規]의 규범에 맞아야 되며, 서 있을 적에는 경쇠처럼 약간 구부정해야 되고, 拱手할 적에는 북을 안은 것처럼 되어야 한다. 이런 용모로 조정에 들어가면 尊貴하고 엄숙하며, 宗廟에 들어가면 공경하고 충성하며, 시골에 들어가면 온화하고 遜順하며, 고을의 親族 중에 들어가면 화락하고 친절해진다.

詩經온화하고 공경하는 사람은 德行의 바탕이다.하였고, 孔子공경하는 태도가 禮에 가까우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고 하셨다.

8. 衣服容貌者,所以悅目也;聲音應對者,所以悅耳也;嗜慾好惡者,所以悅心也

衣服容貌者,所以悅目也;聲音應對者,所以悅耳也;嗜慾好惡者,所以悅心也。君子衣服中,容貌得,則民之目悅矣;言語順,應對給,則民之耳悅矣;就仁去不仁,則民之心悅矣。三者存乎心,暢乎體,形乎動靜,雖不在位,謂之素行。故忠心好善而日新之,獨居樂德,內悅而形。詩曰:「何其處也?必有與也;何其久也?必有以也。」惟有以者,惟能長生久視,而無累於物也。

衣服과 容貌는 보는 눈을 즐겁게 하고, 목소리와 응답은 듣는 귀를 즐겁게 하며, 嗜慾과 好惡는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君子의 의복이 몸에 맞고 용모가 적당하면 백성의 눈이 즐겁고, 군자의 말이 和順하고 응답이 민첩하면 백성의 귀가 즐겁고, 군자가 에 나아가고 不仁을 없애면 백성의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

이 세 가지를 마음에 보존하고, 온몸에 밝게 통하며 행동에 드러내면 벼슬자리에 있지 않더라도 이를 素行이라 한다. 그러므로 忠心으로 을 좋아하여 날마다 새로워지면 혼자 있어도 즐겁고 덕이 충만하여 밖으로 드러난다.

詩經어쩌면 그렇게 편안히 있는가? 반드시 함께하는 이가 있다네. 어찌 그렇게 오래 유지하는가? 반드시 이유가 있다네.”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이유가 있는 자는 오랫동안 생존하여 外物의 얽매임을 받지 않는다.

9. 君子衣服中而容貌得,接其服而象其德

知天道者冠鉥,知地道者履蹻,能治煩決亂者佩觿,能射御者佩韘,能正三軍者搢笏;衣必荷規而承矩,負繩而準下。故君子衣服中而容貌得,接其服而象其德,故望玉貌而行能,有所定矣。詩曰:「芃蘭之枝,童子佩觿。」說行能者也。

天道를 아는 사람은 鉥冠을 쓰고, 地道를 아는 사람은 짚신을 신으며, 번잡하고 어지러운 일을 잘 다스려 해결하는 사람은 뿔송곳을 차고, 말을 몰며 활쏘기를 잘하는 사람은 깍지[]를 차며, 三軍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을 꽂는다.

옷은 반드시 일정한 圓方尺寸에 맞고 上衣下衣의 꿰맨 부분이 서로 바르게 맞아야 한다. 그러므로 君子는 의복이 법도에 맞고 용모가 체통에 맞아야 그 의복을 통하여 그의 德을 상징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그의 차린 용모를 보고 그의 품행을 확정하여 알 수 있다.

詩經芄蘭의 가지여! 동자가 뿔송곳을 찾는구나.”라고 하였으니, 이런 품행이 있는 사람을 말한 것이다.

10. 正其衣冠,尊其瞻視,嚴然人望而畏之,不亦威而不猛乎?

冠者所以別成人也,脩德束躬以自申飭,所以檢其邪心,守其正意也。君子始冠,必祝成禮,加冠以屬其心,故君子成人,必冠帶以行事,棄幼少嬉戲惰慢之心,而衎衎於進德脩業之志。是故服不成象,而內心不變,內心脩德,外被禮文,所以成顯令之名也。是故皮弁素積,百王不易,既以脩德,又以正容。孔子曰:「正其衣冠,尊其瞻視,嚴然人望而畏之,不亦威而不猛乎?

을 쓰는 것은 成人임을 구별하는 것이다. 修養하고 자신의 몸을 단속함은 그의 邪心을 점검하고 올바른 생각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君子가 처음 관을 쓸 때 반드시 祝禱하고 冠禮를 거행한 뒤에 관을 써서 그 마음을 오롯이 힘쓰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성인이 된 이후에 반드시 관을 쓰고 띠를 맨 차림으로 일을 행하여 어릴 적의 장난하고 나태한 마음을 버리고, 화락한 마음으로 道德增進하고 功業을 닦아 이루려는 데 뜻을 두어야 한다.

이 때문에 복장에 성인을 나타내는 상징이 없으면 노력하여 향상하려는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 마음에 도덕을 수양하고 외면에 예의에 맞는 文飾의 옷을 입는 것이 아름다운 명성을 이루는 것이다. 이 때문에 皮弁素積은 수많은 역대의 帝王이 모두 변경하지 않았으니, 이 복식은 이미 도덕을 수양하고 또 용모를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孔子“衣冠을 단정히 하며, 보는 눈길을 존엄하게 하여 嚴然히 사람들이 바라보고 두려워하니, 또한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은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하셨다.

11. 令月吉日,加子元服,去爾幼志,順爾成德

成王將冠,周公使祝雍祝,王曰:「達而勿多也。」祝雍曰:「使王近於民,遠於佞,嗇於時,惠於財,任賢使能。」於此始成之時,祝辭四加而後退,公冠自以為主,卿為賓,饗之以三獻之禮。公始加玄端與皮弁,皆必朝服玄冕四加,諸侯、太子、庶子冠公為主,其禮與上同。冠於祖廟曰:「令月吉日,加子元服,去爾幼志,順爾成德。」冠禮十九見正而冠,古之通禮也。

周 成王冠禮를 거행하려고 할 때 周公祝雍을 보내 성왕에게 祝辭를 하게 하면서 말했다. “축사는 뜻만 전달하고 말을 많이 하지 말라.” 축옹이 축사를 하였다. “왕은 백성을 친근히 하고 간사한 사람을 멀리하며, 시간을 아끼고 재물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며, 어진 이를 중용하고 재능 있는 사람을 임용하게 하소서.” 이렇게 처음 冠禮를 이룰 때에 축사를 네 차례 말한 뒤에 물러났다.

이 관례를 거행할 때에는 자기가 주인이 되고 으로 삼아 주인이 빈에게 세 차례 술을 올리는[三獻] 로 대접한다. 공의 첫 번째 을 씌울[始加] 때는 玄端服皮弁을 씌우고, 賓客은 모두 朝服을 입고 玄冕을 쓰고서 네 차례 관을 씌운다. 諸侯太子와 여러 아들의 관례를 거행할 때는 공이 주인이 되는데, 그 거행하는 예는 士冠禮와 같다.

祖廟에서 관례를 거행하면서 이렇게 축사를 한다. “좋은 달 吉日에 너[子]에게 관을 씌우노니, 너의 어릴 때 지닌 뜻을 버리고, 너 成人의 德을 順히 따르라.” 관례는 바른 일을 알게 되는[見正] 19세에 관례를 치르는 것이 古代通行하던 예이다.

12.

夏,公如齊逆女,何以書?親迎禮也。其禮奈何?曰:諸侯以屨二兩加琮,大夫庶人以屨二兩加束脩二。曰:「某國寡小君,使寡人奉不珍之琮,不珍之屨,禮夫人貞女。」夫人曰:「有幽室數辱之產,未諭於傅母之教,得承執衣裳之事,敢不敬拜?」拜祝,祝答拜。夫人受琮取一兩,屨以履女,正笄衣裳而命之曰:「往矣,善事爾舅姑,以順為宮室,無二爾心,無敢回也。」女拜,乃親引其手,授夫乎戶,夫引手出戶;夫行女從,拜辭父於堂,拜諸母於大門。夫先升與執轡,女乃升輿,轂三轉,然後天下先行。大夫士庶人稱其父曰:「某之父,某之師友,使其執不珍之屨,不珍之束脩,敢不敬禮某氏貞女。」母曰:「有草茅之產,未習於織紝紡績之事,得奉執箕帚之事,敢不敬拜?」

春秋여름에 魯 莊公나라에 가서 제나라 여자를 맞이하여 장가들었다.” 하였는데, 春秋公羊傳이 일을 무엇 때문에 썼는가? 신랑이 신부의 집에 가서 직접 맞이한 것[親迎]이니, 禮儀에 맞는 일이다.” 하였다그 예의는 어떻게 행하는 것인가?

이렇게 대답한다. “諸侯親迎에는 신 두 쌍에 琮玉을 추가하여 준비하고, 大夫庶人의 친영에는 신 두 쌍에 束脩 을 추가하여 준비한다. 친영할 때 이렇게 말한다. 아무 나라의 寡小君이 寡人을 보내 보잘것없는 종옥과 보잘것없는 신을 받들어 夫人의 貞潔한 따님에게 예물로 드리게 하셨습니다.’ 부인은 이렇게 말한다. ‘깊은 閨中에서 자란 딸이 있어 그대의 請婚을 여러 차례 받았으나 傅母의 가르침을 받지 못했는데 옷을 대령하여 모시는 일을 받았으니, 감히 공경히 절하며 축하하지 않겠습니까.’ 君主를 대신하여 答拜한다부인이 종옥을 받고 한 쌍의 신을 가져다가 딸에게 신기고 나서 비녀를 바르게 꽂아주고 의복을 갖추어 입히고는 딸에게 타이른다.시댁에 가거든 너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잘 섬기고, 온순한 태도로 집안을 화목하게 하여 네 속에 두 마음을 품지 말며 감히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라.’

딸이 작별인사를 하면 곧 직접 그 손을 끌어당겨 방문 앞에서 신랑에게 인계해준다. 신랑은 신부의 손을 이끌고 방문을 나가고, 신랑이 앞서서 가면 신부는 그 뒤를 따라간다. 대청에서 아버지께 절하여 하직하고 大門에서 어머니께 절하여 이별한다신랑이 먼저 수레에 올라 고삐를 잡으면 신부가 곧 수레에 오르고, 바퀴가 세 번 구른 뒤에 신랑은 수레에서 내려 앞서서 간다. 大夫庶人의 친영은 아버지의 名義를 들어 말한다. 아무개의 아버지와 아무개의 師友가 저에게 보잘것없는 신과 보잘것없는 束脩를 가지고 가게 하였으니, 감히 아무 씨의 정결한 따님에게 공경히 禮儀를 행하지 않겠습니까.’ 신부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草野에서 생장한 딸이 있으나 바느질과 베 짜는 일을 익히지 못했는데 쓰레받기와 비를 들고 청소하는 일을 받들게 되었으니, 감히 공경히 절하여 사례하지 않겠습니까.’

13. **

春秋曰:「壬申,公薨於高寢。」傳曰:「高寢者何?正寢也。曷為或言高寢,或言路寢?曰,諸侯正寢三:一曰高寢,二曰左路寢,三曰右路寢。高寢者,始封君之寢也。二路寢者,繼體之君寢也。其二何?曰,子不居父之寢,故二寢。繼體君世世不可居高祖之寢,故有高寢,名曰高也。路寢其立奈何?高寢立中,路寢左右。」春秋曰:「天王入于成周。」傳曰:「成周者何?東周也。然則天子之寢奈何?曰,亦二承明,繼體守文之君之寢,曰左右之路寢。謂之承明何?曰承乎明堂之後者也。故天子諸侯三寢立而名實正,父子之義章,尊卑之事別,大小之德異矣。」

春秋壬申日魯 定公高寢에서 薨逝했다.”라고 하였는데, 公羊傳고침이란 무엇인가? 고침은 正寢이다.”라 하였다어째서 고침이라 말하기도 하고, 路寢이라 말하기도 하는가諸侯는 세 개의 전침이 있으니, 첫째는 고침이라 하고 둘째는 左路寢이라 하며, 셋째는 右路寢이라고 한다. 고침은 처음 제후로 봉해진 君主寢宮이고, 두 노침은 왕위를 계승한 군주의 침궁이다. 노침을 두 개 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자식은 아버지의 침궁에 거처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두 개의 노침을 두는 것이다. 왕위를 계승한 군주는 대대로 高祖(처음 제후가 된 始祖)의 침궁에는 거처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고침을 두어서 라고 일컫는 것이다노침은 어떤 형식으로 건립하는가? 고침은 중앙에 건립하고, 노침은 왼쪽과 오른쪽에 건립한다.

春秋天王(天子)成周로 들어갔다.”라고 하였는데, 公羊傳성주는 어떤 곳인가? 東周이다.”라고 하였다그렇다면 천자의 침궁은 어떤 형식으로 되었는가? 이곳도 셋인데, 承明王位를 계승하여 先王法度를 준수하는 군주의 침궁이니, 고침의 왼쪽과 오른쪽에 건립한 노침이라는 것이다승명이라 부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明堂의 뒤쪽에 맞닿아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천자와 제후는 세 침궁을 건립하여야 명분과 실제가 바로잡히고, 父子의 도리가 드러나며, 尊卑의 일이 구별되고, 크고 작은 덕행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14. 天子以鬯為贄 諸侯以圭為贄

天子以鬯為贄,鬯者百草之本也,上暢於天,下暢於地,無所不暢,故天子以鬯為贄。諸侯以圭為贄,圭者玉也,薄而不撓,廉而不劌,有瑕於中,必見於外,故諸侯以玉為贄。卿以羔為贄,羔者,羊也,羊群而不黨,故卿以為贄。大夫以鴈為贄,鴈者行列有長幼之禮,故大夫以為贄。士以雉為贄,贄可不可指食,籠狎而服之,故士以雉為贄。庶人以鶩為贄,鶩者鶩鶩也,鶩鶩無它心,故庶人以鶩為贄。贄者,所以質也。

天子처음 만날 때의예물로 삼으니, 창은 온갖 풀의 근본이다. 위로는 하늘에 통하고 아래로는 땅에 통하여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므로 천자는 창을 예물로 삼는 것이다.

諸侯를 예물로 삼으니, 규는 玉의 일종이다. 얇아도 휘어지지 않고, 모가 나도 베이지 않으며, 안에 티가 있으면 반드시 밖에 드러난다. 그러므로 제후는 옥을 예물로 삼는 것이다.

를 예물로 삼으니, 이다. 양은 떼를 지으면서도 편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경은 양을 예물로 삼는다. 大夫는 기러기를 예물로 삼으니, 기러기는 열을 지어 날되 長幼의 예절이 있다. 그러므로 대부는 기러기를 예물로 삼는다.

士는 꿩을 예물로 삼으니, 꿩은 좋은 먹이로 유인하거나 새장에 가두어 길들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는 꿩을 예물로 삼는다. 庶人은 오리를 예물로 삼으니, 오리는 순박하고 단순하다는 뜻이니, 순박하고 단순하여 다른 마음이 없다. 그러므로 서인은 오리를 예물로 삼는다. 예물이란 소박한 정성을 표시하는 것이다.

(* 鬯 울초 창, 贄 폐백 지)

15. 士一適謂之好德,再適謂之尊賢,三適謂之有功

諸侯三年一貢士,士一適謂之好德,再適謂之尊賢,三適謂之有功。有功者,天子一賜以輿服弓矢,再賜以鬯,三賜以虎賁百人,號曰命諸侯。命諸侯者,鄰國有臣弒其君,孽弒其宗,雖不請乎天子而征之可也,已征而歸其地於天子。諸侯貢士,一不適謂之過,再不適謂之傲,三不適謂之誣。誣者天子黜之,一黜以爵,再黜以地,三黜而地畢。諸侯有不貢士,謂之不率正,不率正者,天子黜之,一黜以爵,再黜以地,三黜而地畢。然後天子比年秩官之無文者而黜之,以諸侯之所貢士伐之。詩云:「濟濟多士,文王以寧。」此之謂也。

諸侯3년마다 한 차례씩 天子에게 貢士해야 하니, 추천한 인재가 한 차례 합당한 것을 好德이라 하고, 추천한 인재가 두 차례 합당한 것을 尊賢이라고 하며, 추천한 인재가 세 차례 합당한 것을 有功이라고 한다. 공이 있는 사람은 천자가 첫 번째 으로 수레의복화살을 下賜하고, 두 번째 상으로 鬯酒를 하사하며, 세 번째 상으로 백 명의 虎賁을 하사하는데, 이를 命諸侯(명을 받은 제후)’라고 일컫는다.

命諸侯는 이웃 나라에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거나 庶子宗子를 시해하는 사건이 있으면 천자에게 요청하지 않고도 정벌할 수가 있으니, 정벌을 마치고 나면 그 國土를 천자에게 귀속시킨다. 제후가 공사했을 적에 추천한 인재가 한 차례 합당하지 않은 경우를 過라 하고, 추천한 인재가 두 차례 합당하지 않은 경우를 傲라 하며, 추천한 인재가 세 차례 합당하지 않은 경우를 誣라고 한다.

속인 사람은 천자가 廢黜하니, 첫 번째는 爵位를 폐출하고, 두 번째는 땅을 폐출하며, 세 번째는 국토 전체를 폐출한다. 제후가 공사하지 않는 것을 不率正(정도를 따르지 않음)이라 한다. 정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천자가 폐출하니, 첫 번째는 爵位를 폐출하고, 두 번째는 땅을 폐출하며, 세 번째는 국토 전체를 폐출한다. 그런 뒤에 천자는 해마다 정식 관리의 성적을 考課하여 功效가 없는 사람은 폐출하고, 제후가 공사한 사람으로 대체한다. 詩經많고 많은 인재들이여, 文王이 이 때문에 편안하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16. 故其民皆興仁義而賤財利,賤財利則不爭,不爭則強不凌弱,眾不暴寡

古者必有命民,命民能敬長憐孤,取舍好讓,居事力者,命於其君。命然後得乘飭輿駢馬,未得命者不得乘,乘者皆有罰。故其民雖有餘財侈物,而無仁義功德者,則無所用其餘財侈物;故其民皆興仁義而賤財利,賤財利則不爭,不爭則強不凌弱,眾不暴寡。是唐虞所以興象刑,而民莫敢犯法,而亂斯止矣。詩云:「告爾民人,謹爾侯度,用戒不虞。」此之謂也。

고대에는 반드시 命民이 있었으니, 백성이 능히 어른을 공경하고 孤兒를 가엾게 여기며, 取捨할 때 謙讓을 좋아하며, 일을 할 때 있는 힘을 다하는 사람은 그 임금에게 명을 받는다. 명을 받고 난 뒤에야 두 필의 말이 끄는 장식한 수레를 탈 수 있다. 임금의 명을 받지 못한 사람은 이런 수레를 타지 못하니, 타는 사람은 모두 벌을 받는다.

그러므로 백성은 남은 재물과 사치스러운 물건이 있어도 仁義功德이 없으면 그 남은 재물과 사치스런 물건을 쓸 데가 없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모두 인의를 숭상하고 재물을 賤視한다. 재물을 천시하면 서로 다투지 않고, 다투지 않으면 강력한 사람이 나약한 사람을 능멸하지 않으며,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을 사납게 대하지 않는다.

이것이 堯舜시대에 象刑을 제정하자 백성들이 감히 을 범하는 사람이 없어서 紛亂이 곧 그치게 된 원인이다. 詩經너희 백성들에게 고하노니, 네 임금의 법도를 삼가 지켜서, 뜻밖의 사고에 경계하라.”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17. 天子曰巡狩,諸侯曰述職

天子曰巡狩,諸侯曰述職。巡狩者,巡其所守也;述職者,述其所職也。春省耕,助不給也;秋省斂,助不足也。天子五年一巡狩,歲二月東巡狩,至於東嶽,柴而望祀山川,見諸侯,問百年者,命太師陳詩以觀民風,命市納賈以觀民之所好惡,志淫好僻者,命典禮,考時月定日,同律禮樂制度衣服正之。山川神祇有不舉者為不敬,不敬者君黜以爵;宗廟有不順者為不孝,不孝者君削其地;有功澤於民者,然後加地。入其境,土地辟除,敬老尊賢,則有慶,益其地;入其境,土地荒穢,遺老失賢,掊克在位,則有讓,削其地。一不朝者黜其爵,再不朝者黜其地,三不朝者以六師移之。歲五月南巡狩,至于南嶽,如東巡狩之禮;歲八月西巡狩,至于西嶽,如南巡狩之禮;歲十一月北巡狩,至于北嶽,如西巡狩之禮。歸格于祖禰,用特。

天子가 제후국을 순행하는 것을 巡狩라 하고, 諸侯가 천자에게 직무를 진술하는 것을 述職이라 한다. 순수는 자기가 지키는 영토를 巡視하는 것이고, 술직은 자기의 직무를 진술하는 것이다.

봄에는 耕作하는 상황을 시찰하여 생활이 부족한 사람을 도와주고, 가을에는 추수한 정황을 시찰하여 생활이 부족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다. 천자는 5년에 한 번 순수하니, 그해 2월에 東方을 순수하여 東嶽에 이르러 섶을 태워 하늘에 제사하고, 멀리서 山川을 바라보며 望祭를 지내고 제후들을 접견하며, 長壽한 노인을 위문하고, 樂師太師에게 그 지방의 를 바치도록 명하여 민간의 풍속을 살피고, 시장 담당자에게 市中의 물가를 조사해 바치도록 명하여 백성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물건을 관찰하여 음란하고 邪僻에 뜻을 두는지를 안다.

禮儀를 주관하는 典禮에게 명하여 四時와 달의 크고 작음과 날의 日辰을 고찰하여 맞게 정하고, 音律禮樂制度衣服 등을 바로잡아 통일하는 것이다. 산천의 神靈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을 不敬이라고 하니, 불경한 제후는 천자가 그의 작위를 삭감하고, 宗廟孝順하지 않는 것을 不孝라고 하니, 불효한 제후는 천자가 그의 封地를 삭감하며, 백성들에게 功德恩澤이 있으면 그런 뒤에 봉지를 더 봉해준다.

천자가 제후의 境內에 들어가서 농토가 개간되고, 노인을 존경하며 어진 이를 존경하는 것을 보면 慶賀하여 그 봉지를 더 늘려준다. 천자가 제후의 경내에 들어가서 농토가 황폐하고 노인을 遺棄하고 어진 이를 돌보지 않으며, 백성의 재물을 긁어모으는 사람이 벼슬에 있는 것을 보면 그의 봉지를 삭감한다.

한 차례 朝見하지 않은 사람은 작위를 삭감하고, 두 차례 조현하지 않는 사람은 봉지를 삭감하며, 세 차례 조현하지 않는 사람은 천자의 군대[六師]를 보내 정벌한다. 그해 5월에 南方을 순수하여 南嶽에 이르러 동방을 순수했을 때와 같은 를 행하고, 8월에 西方을 순수하여 西嶽에 이르러 남방을 순수했을 때와 같은 를 행하며, 11월에 北方을 순수하여 北嶽에 이르러 서방을 순수했을 때와 같은 를 행하고, 돌아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당에 이르러 特牲을 써서 제사 지낸다.

18. 故苗者毛取之,蒐者搜索之,狩者守留之。夏不田,何也?

春秋曰:「正月,公狩于郎。」傳曰:「春曰蒐,夏曰苗,秋曰獮,冬曰狩。」苗者奈何?曰苗者毛也,取之不圍澤,不揜群,取禽不麛卵,不殺孕重者。春蒐者不殺小麛及孕重者;冬狩皆取之,百姓皆出,不失其馳,不抵禽,不詭遇,逐不出防,此苗獮蒐狩之義也。故苗獮蒐狩之禮,簡其戎事也;故苗者毛取之,蒐者搜索之,狩者守留之。夏不田,何也?曰,天地陰陽盛長之時,猛獸不攫,鷙鳥不搏,蝮蠆不螫,鳥獸蟲蛇且知應天,而況人乎哉?是以古者必有豢牢。其謂之畋何?聖人舉事必返本,五穀者,以奉宗廟,養萬民也,去禽獸害稼穡者,故以田言之,聖人作名號而事義可知也。

春秋正月에서 사냥하였다.” 하였는데, 公羊傳봄 사냥을 수라 하고, 여름 사냥을 라 하며, 가을 사냥을 이라 하고, 겨울 사냥을 라 한다.”라 하였다.

는 무슨 뜻인가? 는 가려서 잡는다[]는 뜻이니, 사냥할 때 늪지를 포위해서 잡지 않고, 짐승의 떼를 덮쳐서 다 잡지 않으며, 어린 새끼를 잡지 않고, 새끼 밴 짐승을 죽이지 않는 것이다. 가을 사냥[수]에는 어린 새끼와 새끼 밴 짐승을 죽이지 않고, 겨울 사냥[]에는 모두 잡는다. 이때에는 백성들이 모두 출동하되 규범을 무시한 채 마구 추격하지 않고, 정면에서 얼굴을 쏘아 죽이지 않으며,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잡지 않고, 범위 밖으로 나가 사냥하지 않으니, 이것이 묘苗‧수蒐‧수狩意義이다. 그러므로 묘‧수‧수는 간략한 군사훈련이다.

그러므로 苗는 가려서 잡는 것이고, 蒐는 搜索하여 잡는 것이고, 狩는 머물러 지키면서 잡는다는 뜻이다. 여름철에 사냥을 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름철은 천지 사이의 陰氣陽氣가 왕성한 때이니, 猛獸도 갈겨서 빼앗지 않고, 사나운 새도 치고 박지 않으며, 독사와 전갈도 독을 쏘지 않는다. 새와 짐승, 벌레와 뱀도 天時에 순응할 줄을 아는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이 때문에 옛날에 반드시 우리를 만들어 짐승을 기르는 곳이 있었다. 사냥을 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聖人은 어떤 일을 처리할 적에 반드시 근본을 추구하니, 五穀宗廟의 제사를 받들며 만백성을 기르는 것이기에 농작물을 해치는 짐승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냥을 이라고 말하는 것이니, 성인이 사물의 명칭을 지은 데에서 사물의 含意를 알 수 있다.

19. 無事而不田,曰不敬,田不以禮,曰暴天物

天子諸侯無事則歲三田,一為乾豆,二為賓客,三為充君之庖。無事而不田,曰不敬,田不以禮,曰暴天物。天子不合圍,諸侯不揜群;天子殺則下大緌,諸侯殺則下小緌,大夫殺則止佐轝,佐轝止則百姓畋獵。獺祭魚,然後漁人入澤梁;鳩化為鴈,然後設罻羅;草木零落,然後入山林。昆蟲不蟄不以火田,不麛不卵,不殀夭,不覆巢;此皆聖人在上,君子在位,能者在職,大德之發者也。是故皋陶為大理乎,民各服得其實;伯夷主禮,上下皆讓;倕為工師,百工致功;益主虞,山澤辟成;棄主稷,百穀時茂;契主司徒,百姓親和;龍主賓客,遠人至。十二牧行,而九州莫敢僻違;禹陂九澤,通九道,定九州,各以其職來貢,不失厥宜,方五十里至于荒服,南撫交趾、大發,西析支渠、搜氐羌,北至山戎、肅慎,東至長夷、島夷,四海之內皆戴帝舜之功。於是禹乃興九韶之樂,致異物,鳳凰來翔,天下明德也。

天子諸侯는 나라에 큰일이 없으면 한 해에 세 번 사냥을 하니, 첫 번째는 제사에 쓸 乾豆를 준비하기 위함이고, 두 번째는 손님을 접대하기 위함이며, 세 번째는 임금의 廚房을 채우기 위함이다. 큰일이 없는데도 사냥을 하지 않는 것을 不敬이라 하고, 사냥을 하면서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것을 하늘이 낸 물산을 함부로 낭비한다고 한다.

천자의 사냥은 사방을 포위하여 잡지 않고, 제후의 사냥은 짐승의 떼를 덮쳐서 다 잡지 않는다. 천자가 사냥감을 잡아 죽일 적에는 지휘하던 큰 깃발을 내리고, 제후가 사냥감을 잡아 죽일 적에는 작은 깃발을 내리며, 大夫가 사냥감을 잡아 죽일 적에는 佐車를 정지하니, 좌거가 정지하면 백성들이 그제야 사냥을 하는 것이다.

수달이 물고기로 제사를 지낼 때가 된 뒤에 물고기 잡는 사람이 그제야 川澤魚梁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고, 비둘기가 변화하여 새매가 될 때가 된 뒤에 새 잡는 그물[罻羅]을 쳐서 禽獸를 잡으며, 草木이 시들어 떨어질 때가 된 뒤에 山林에 들어가 나무를 베는 것이다. 곤충이 겨울잠을 자지 않으면 불을 놓아 사냥을 하지 않으며, 어린 짐승을 잡지 않고 새알을 꺼내지 않으며, 어린 새끼를 죽이지 않으며, 새의 둥지를 엎어버리지 않는다.

이는 모두 聖人이 위에 있고, 君子官位에 있으며, 유능한 사람이 官職에 있어서 큰 을 발휘하여 制定한 것이다. 그러므로 皐陶大理를 맡아 법을 공평하게 집행하자 백성들이 각각 實情에 근거한 판결에 복종하고, 伯夷를 주관하자 上下가 모두 謙讓하고, 工師가 되자 百工成果를 바치고, 이 산림천택[]을 주관하자 山澤이 개발의 을 이루고, 가 농업[]을 주관하자 온갖 곡식이 때맞게 무성하고, 司徒를 주관하자 백성들이 親和하고, 賓客의 접대를 주관하자 먼 지방 사람이 歸附해 왔으며, 12(長官)政務를 집행하자 九州의 백성들이 감히 위반하는 사람이 없었다.

九州의 호수에 제방을 쌓고, 아홉 물길을 내어 소통시키며, 구주를 劃定하여 각각 자기 지역의 土産物貢納하여 그들의 마땅한 직책을 잃지 않게 하였다. 당시의 영토는 사방 5,000리로, 荒服에까지 이르렀다. 남쪽은 交趾大發에 이르고, 서쪽은 析支渠搜氐羌에 이르며, 북쪽은 山戎肅愼이 이르고, 동쪽은 長夷島夷에 이르렀다. 四海 안의 백성들이 모두 제순의 공덕을 칭송하였다. 이에 우가 九韶의 음악을 제작하니, 진기한 사물이 오고, 鳳凰이 와서 날아서 천하에 제순의 큰 덕을 밝게 顯揚하였다.

20. 射者必心平體正,持弓矢審固,然後射者能以中

射者必心平體正,持弓矢審固,然後射者能以中。詩云:「大侯既抗,弓矢斯張;射夫既同,獻爾發功。」此之謂也。弧之為言豫也,豫者豫吾意也。故古者兒生三日,桑弧蓬矢六射天地四方,天地四方者,男子之所有事也,必有意其所有事,然後敢食穀,故曰:「不素飧兮。」此之謂也。

활을 쏘는 사람은 반드시 마음은 평온하고 몸의 자세는 단정하며, 활과 화살을 굳게 쥐고 과녁을 주시해야 하니, 그런 뒤에 발사해야 명중할 수 있다.

詩經大侯를 이미 들어다 세우고, 활과 화살을 벌여놓으니, 射手들 짝을 지어 정돈하여, 너의 활 쏘는 공적을 바친다.” 하였으니, 이를 이르는 말이다.

射의 의미는 바로 豫備한다는 뜻이니, 나의 마음에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전에 아들이 태어난 지 3일 만에 뽕나무 활과 쑥대 화살 여섯 개를 天地四方에 쏘았으니, 천지사방은 남자가 일을 하여야 하는 곳이다. 반드시 마음에 일을 하는 곳이 있고 난 뒤에 감히 곡식을 먹는다. 그러므로 하는 일 없이 밥을 먹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21. 故古者吉行五十里,奔喪百里,贈賵及事之謂時;時,禮之大者也。

生而相與交通,故曰留賓。自天子至士,各有次,贈死不及柩尸,弔生不及悲哀,非禮也。故古者吉行五十里,奔喪百里,贈賵及事之謂時;時,禮之大者也。春秋曰:「天王使宰咺來歸惠公、仲子之賵。」賵者何?喪事有賵者,蓋以乘馬束帛輿馬曰賵,貨財曰賻,水被曰襚,口實曰唅,玩好曰贈。知生者賻賵,知死者贈襚;贈襚所以送死也,賻賵所以佐生也。輿馬、束帛、貨財、衣被、玩好,其數奈何?曰,天子乘馬六匹,諸侯四匹,大夫三匹,元士二匹,下士一匹;天子束帛五匹、玄三纁二,各五十尺,諸侯玄三纁二,各三十尺,大夫玄一纁二,各三十尺,元士玄一纁一,各二丈,下士綵縵各一匹,庶人布帛各一匹;天子之賵,乘馬六匹乘車,諸侯四匹乘輿,大夫曰參輿,元士下士不用輿;天子文繡衣各一襲到地,諸侯覆跗,大夫到踝,士到髀;天子唅實以珠,諸侯以玉,大夫以璣,士以貝,庶人以穀實。位尊德厚及親者賻賵唅襚厚,貧富亦有差;二三四五之數,取之天地而制奇偶,度人情而出節文,謂之有因,禮之大宗也。

살아서 서로 왕래하며 교유하였기 때문에 손님을 머물게 한다[留賓]라고 하니, 天子에서 까지 각각 차등이 있다. 죽은 사람에게 물품을 보낼 적에 시체가 널에 있을 때에 하지 않고, 산 사람을 弔喪할 적에 한창 슬퍼할 때 하지 않는 것은 에 맞는 일이 아니다그러므로 예전에 慶事에 갈 경우에는 하루에 50리를 가고, 喪을 만나 달려갈 경우에는 하루에 100리를 간다. 葬禮를 돕는 車馬나 물품을 일이 일어난 때에 보내는 것을 適時라 이르니, 적시는 예절 중의 중대한 것이다.

春秋天王을 보내 惠公仲子喪事에 쓸 거마[]를 보냈다.”라 하였다. 이란 무엇인가거마 등의 재물을 보내 장례를 돕는 예가 있으니 일반 말[乘馬]束帛이다. 거마를 이라 하고, 財貨라 하며, 옷과 이불[衣被]라 하고, 입에 채우는 것을 이라 하며, 완상하는 기호품[玩好]이라 한다. 살아 있는 喪主를 아는 사람은 을 보내고, 죽은 이를 아는 사람은 를 보낸다. 는 죽은 이에게 보내는 것이고, 은 살아 있는 이를 돕는 것이다.

車馬束帛財貨衣被玩好를 보낼 때의 수량은 얼마로 하는가天子乘馬 여섯 필이고, 諸侯는 네 필이고, 大夫는 세 필이고, 元士는 두 필이고, 下士는 한 필이다. 천자는 속백 다섯 필과 검정색 비단 세 필, 천홍색 비단 두 필에 각 50[]이고, 제후는 검정색 비단 세 필, 천홍색 비단 두 필에 각 40자이고, 대부는 검정색 비단 한 필, 천홍색 비단 두 필에 각 30자이고, 원사는 검정색 비단 한 필, 천홍색 비단 한 필에 각 2이고, 하사는 채색 비단과 무늬 없는 비단 각 한 필이고, 庶人은 베와 비단 각 한 필이다.

천자의 은 승마 여섯 필에 乘車, 제후는 승마 네 필에 乘輿, 대부는 參輿, 원사와 하사는 수레를 쓰지 않는다. 천자는 채색 옷과 수놓은 옷 각 한 벌인데 길이가 땅에 닿고, 제후는 길이가 발등을 덮고, 대부는 길이가 복사뼈에 닿고, 사는 넓적다리에 닿는 옷을 보낸다. 천자는 입에 채울 飯含으로 珍珠, 제후는 , 대부는 작은 구슬[], 사는 조개껍질을, 서인은 곡식을 쓴다. 지위가 높고 덕망이 높으며 친근한 사람은 를 후하게 한다.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도 차등이 있으니, 2345는 천지에 근본하여 홀수와 짝수를 만들어내고, 人情을 헤아려 禮節條文을 만들어내었다. 이를 원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 禮儀本源이다.

 

22. **

春秋曰:「庚戌天王崩。」傳曰:「天王何以不書葬?天子記崩不記葬,必其時也;諸侯記卒記葬,有天子在,不必其時也。」必其時奈何?天子七日而殯,七月而葬;諸侯五日而殯,五月而葬;大夫三日而殯,三月而葬;士庶人二日而殯,二月而葬。皆何以然?曰,禮不豫凶事,死而後治凶服,衣衰飾,修棺槨,作穿窆宅兆,然後喪文成,外親畢至,葬墳集,孝子忠臣之恩厚備盡矣。故天子七月而葬,同軌畢至;諸侯五月而葬,同會畢至;大夫三月而葬,同朝畢至;士庶人二月而葬,外姻畢至也。

春秋庚戌天王이 세상을 떠났다.”라 하였는데, 公羊傳에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천왕을 장례한 날짜를 쓰지 않았는가? 천자가 세상을 떠난 것만 기록하고 장례한 날짜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반드시 장례할 시기를 정해놓은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諸侯逝去한 날을 기록하고 장례한 날짜를 기록한 것은, 천자가 있어서 기필코 그 시기를 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 시기를 정해놓은 규정은 어떤 것인가? 천자는 죽은 뒤 7일 만에 을 하고 7개월 만에 장례를 하며, 제후는 5일 만에 빈을 하고 5개월 만에 장례하며, 大夫3일 만에 빈을 하고 3개월 만에 장례를 하며, 庶人2일 만에 빈을 하고 2개월 만에 장례한다.

무엇 때문에 모두 이렇게 하는가? 禮法喪事를 미리 준비하지 못하여 죽은 뒤에 상복을 갖추기 때문이다. 喪服을 입고 棺槨을 마련하며 구덩이를 파 묘역을 조성하고 난 뒤에 초상 치를 禮文이 완성된다. 外親이 모두 와서 埋葬하는 일을 마치면 孝子忠臣의 깊은 恩情을 모두 다한 것이다그러므로 천자는 죽은 지 7개월 만에 장례하여 同軌가 모두 오고, 제후는 5개월 만에 장례하여 同會가 모두 오며, 대부는 3개월 만에 장례하여 同朝가 모두 오고, 庶人2개월 만에 장례하여 姻戚이 모두 오는 것이다.

23. 骨肉歸復於土,命也。若魂氣則無不之也!無不之也!

延陵季子適齊,於其反也,其長子死於嬴博之間,因葬焉。孔子聞之,曰:「延陵季子吳之習於禮者也。」使子貢往而觀之,其穿,深不至泉;其斂,以時服;既葬,封壙墳掩坎,其高可隱也;既封,左袒右旋,其封且號者三。言曰:「骨肉歸復於土,命也。若魂氣則無不之也!無不之也!」而遂行。孔子曰:「延陵季子於禮其合矣。」

延陵季子나라에 갔다가 돌아올 적에 그의 長子사이에서 죽자 그곳에 그대로 장사 지냈다孔子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고 말씀하였다. “延陵季子나라의 에 익숙한 사람이다.” 子貢을 보내어 가서 보고 오게 하였다무덤의 구덩이를 파는데 그 깊이는 샘물이 솟는 데까지 이르지 않았고, 은 당시 입던 옷을 입혔으며, 매장을 마치고 封墳을 쌓으니, 봉분의 둘레는 구덩이를 덮을 정도였고, 높이는 기댈 수 있을 정도였다.

봉분 쌓기를 마치고 왼쪽 어깨를 드러내어 봉분을 오른쪽으로 돌면서 또 세 번 號哭하며 말하기를 “너의 뼈와 살이 흙으로 돌아갔으니 이는 天命이다. 靈魂이 가지 않는 곳이 없으며, 가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그곳을 떠났다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연릉계자의 아들을 매장한 일은 에 부합한다.”

24. **

子生三年,然後免於父母之懷,故制喪三年,所以報父母之恩也。期年之喪通乎諸侯,三年之喪通乎天子,禮之經也。

자식이 태어난 지 3년이 된 뒤에야 비로소 부모의 품을 벗어난다. 그러므로 3년상을 제정한 것은 부모의 은혜를 갚기 위한 것이다傍系 親屬1년상[朞年喪]諸侯에게 통용되고, 부모의3년상은 天子에게 통용되니 常度이다.

25. 閔子哀未盡,能斷之以禮,故曰君子也;子夏哀已盡,能引而致之,故曰君子也

子夏三年之喪畢,見於孔子,孔子與之琴,使之絃,援琴而絃,衎衎而樂作,而曰:「先生制禮不敢不及也。」孔子曰:「君子也。」閔子騫三年之喪畢,見於孔子,孔子與之琴,使之絃,援琴而絃,切切而悲作,而曰:「先生制禮不敢過也。」孔子曰:「君子也。」子貢問曰:「閔子哀不盡,子曰君子也;子夏哀已盡,子曰君子也。賜也惑,敢問何謂?」孔子曰:「閔子哀未盡,能斷之以禮,故曰君子也;子夏哀已盡,能引而致之,故曰君子也。夫三年之喪,固優者之所屈,劣者之所勉。」

子夏3년상을 마치고 孔子를 뵈었다. 공자께서 을 주시고 연주하게 하자 자하가 금을 당겨 연주하는데 화락하여 즐거운 표현이 있었다자하가 일어서서 말하였다. “先王이 제정한 喪禮를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君子로구나.”

閔子騫3년상을 마치고 공자를 뵈었다. 공자께서 금을 주시고 연주하게 하자 민자건이 금을 당겨 연주하는데 슬퍼하고 근심하는 표현이 있었다민자건이 일어서서 말하였다. “선왕이 제정한 상례를 감히 넘을 수 없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로구나.”

子貢이 물었다. “閔子는 슬픔이 아직 다 가시지 않았는데 선생님께서 군자이다라 하시고, 자하는 슬픔이 이미 다 가셨는데 선생님께서 군자이다라 하시니, 저는 의혹되어 무슨 말씀이신지 감히 여쭙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민자는 슬픔이 아직 다 가시지 않았는데 정한 예의 규정을 따라 마쳤고, 자하는 슬픔이 이미 다 가셨는데 정한 예의 규정을 따라 연장하여 喪期를 채웠다. 그 때문에 둘 다 군자라고 말한 것이다. 3년의 상기는 孝心이 많은 사람은 슬픔을 줄이고, 효심이 부족한 사람은 노력하여 미치게 하는 것이다.”

26. 凡事君所以為親也

齊宣王謂田過曰:「吾聞儒者喪親三年,喪君三年;君與父孰重?」田過對曰:「殆不如父重。」王忿然怒曰:「然則何為去親而事君?」田過對曰:「非君之土地無以處吾親,非君之祿無以養吾親,非君之爵位無以尊顯吾親;受之君,致之親,凡事君所以為親也。」宣王邑邑無以應。

齊 宣王田過에게 말했다. “내가 들으니, 儒者는 죽은 부모를 위해 三年服을 입고, 죽은 임금을 위해 삼년복을 입는다는데, 임금과 아버지 중에 누가 더 중요한가?” 전과가 대답했다. “아마 임금이 아버지만 못할 것입니다.” 선왕이 발끈 노하여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부모를 떠나 임금을 섬기는가?”

전과가 대답했다. “임금의 土地가 아니면 저의 부모가 거주할 곳이 없고, 임금의 祿俸이 아니면 저의 부모를 봉양할 수가 없으며, 임금의 爵位가 아니면 저의 부모를 尊顯하게 할 수 없습니다. 임금에게 이것을 받아 부모에게 드리는 것이니, 임금을 섬기는 것은 부모를 위해서입니다.” 선왕은 怏怏不樂할 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였다.

27. **

古者有菑者謂之厲,君一時素服,使有司弔死問疾,憂以巫醫,匍匐以救之,湯粥以方之。善者必先乎鰥寡孤獨,及病不能相養,死無以葬埋,則葬埋之。有親喪者不呼其門,有齊衰大功,五月不服力役之征,有小功之喪者未葬,不服力役之征。其有重尸多死者,急則有聚眾,童子擊鼓苣火,入官宮里用之,各擊鼓苣火,逐官宮里。家之主人冠立於阼,事畢出乎里門,出乎邑門,至野外;此匍匐救厲之道也。師大敗亦然。

古代癘疫이 발생하는 것을 라 하였다. 임금이 이때 素服을 입고 담당관리를 보내어 죽은 사람을 弔喪하고 병든 사람을 위문하며, 巫醫로 질병을 치료하며, 있는 힘을 다해 구원하며, 湯粥을 베풀어 구제하게 한다구제를 잘하는 사람은 반드시 의탁할 곳 없는 홀아비과부고아독거인과 병들어 봉양하지 못하는 사람을 먼저 구제하고, 죽어서 매장할 사람이 없으면 매장해준다. 부모의 喪中에 있는 사람은 그의 앞에서 큰 소리로 부르지 않고, 齊衰大功服이 있는 사람은 5개월 동안 勞役에 징발하지 않으며, 小功이 있는 사람은 장례 지내지 않았으면 노역에 징발하지 않는다.

만일 많은 사람이 죽어 시체가 쌓인 집이 있어서 사정이 급하면 사람들을 모으고 童子에게 북을 치게 하며 갈대 횃불을 들고서 그 집안으로 들어가 厲鬼를 몰아낸다. 각기 북을 치며 갈대 횃불을 들고서 집안에 들어와 여귀를 몰아내거든 그 집의 주인은 을 쓰고 동쪽 계단에 서 있는다. 여귀를 몰아내는 일이 끝나면 주인은 마을 문을 따라 나오고, 邑門(城門)을 따라 나와 野外까지 와서 전송하니, 이것이 있는 힘을 다하여 여역을 구제하는 방법이다. 군대가 전쟁에 패배했을 때에도 이와 같이 한다.

28. **

齋者思其居處也,思其笑語也,思其所為也;齋三日,乃見其所為齋者。祭之日,將入戶,僾然若有見乎其容;盤旋出戶,喟然若有聞乎嘆息之聲。先人之色,不絕於目;聲音咳唾,不絕於耳;嗜欲好惡,不忘於心;是則孝子之齋也。

齋戒는 제사하는 분의 起居하던 모습을 생각하며, 웃고 말하던 모습을 생각하며, 일하던 모습을 생각하여 재계한 지 3일 만에 제사 지내기 위하여 재계한 그분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제사 지내는 날 祠堂 문에 들어가려 할 때는 어렴풋이 그분의 모습이 나타나는 듯하며, 배회하며 머물다가 문을 나올 적에는 서글피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先人의 안색이 눈에서 떠나지 않으며, 말소리와 기침소리가 귀에서 끊어지지 않으며, 즐기고 좋아하며 싫어하던 것이 마음에서 잊히지 않아야 되니, 이것이 효자의 재계이다.

29. **

春祭曰祠,夏祭曰禴,秋祭曰嘗,冬祭曰烝;春薦韭卵,夏薦麥魚;秋薦黍豚,冬薦稻鴈。三歲一祫,五年一禘;祫者,合也;禘者,諦也。祫者大合祭於祖廟也,禘者諦其德而差優劣也。聖主將祭,必潔齋精思,若親之在;方興未登,●●憧憧,專一想親之容貌彷彿,此孝子之誠也。四方之助祭,空而來者滿而反,虛而至者實而還,皆取法則焉。

봄 제사를 라 하고, 여름 제사를 이라 하며, 가을 제사를 이라 하고, 겨울 제사를 이라 한다. 봄 제사에는 부추와 새알을 올리고, 여름 제사에는 보리와 물고기를 올리며, 가을 제사에는 기장과 돼지를 올리고, 겨울 제사에는 벼와 기러기를 올린다.

3년에 한 차례 祫祭를 지내고 5년에 한 차례 禘祭를 지내니, 은 합하여 제사한다는 뜻이고, 는 자세히 살핀다는 뜻이다. 협제는 先祖神主를 크게 모아 祖廟(宗廟)에서 제사하는 것이고, 체제는 功德優劣을 자세히 살펴서 등급을 나누어 제사하는 것이다.

聖王이 제사 지낼 때 반드시 몸을 깨끗이 하여 齋戒하고 마음을 정결히 하여 마치 부모가 계신 듯이 여겨서, 막 일어나 祭壇에 오르려 할 적에 공경하고 황홀한 마음으로 전일하게 先人의 용모를 어렴풋이 생각해야, 이것이 효자의 정성이다. 사방에서 와 제사를 돕는 사람들이 빈손으로 온 자는 가득 싣고 돌아가고, 빈 마음으로 온 자는 느낀 바를 채워서 돌아가 모두 본받을 법칙을 얻는 것이다.

30. 吾不為人之惡我而改吾志,不為我將死而改吾義

韓褐子濟於河,津人告之曰:「夫人過於此者,未有不快用者也;而子不用乎?」韓褐子曰:「天子祭海內之神,諸侯祭封域之內,大夫祭其親,士祭其祖禰。褐也,未得事河伯也。」津人申楫舟中水而運,津人曰:「向也,役人固已告矣,夫子不聽役人之言也;今舟中水而運,甚殆,治裝衣而下遊乎!」韓子曰:「吾不為人之惡我而改吾志,不為我將死而改吾義。」言未已,舟泆然行。韓褐子曰:「 詩云:『莫莫葛藟,施于條枚;愷悌君子,求福不回。』鬼神且不回,況於人乎?」

韓褐子河水를 건널 적에 뱃사공이 그에게 말해주었다. “이 하수를 건너는 사람들은 뱃길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선생은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까?”

한갈자가 말했다. “天子海內神明에게 제사하고, 諸侯封地 안의 신명에게 제사하며, 大夫는 자기의 祖先에게 제사하고, 는 자기의 祖父와 아버지에게 제사하는 것이오. 그러니 나는 河伯에게 제사할 이유가 없소.”

뱃사공이 노를 저어 하수 가운데에 이르자 배가 빙빙 돌았다. 이에 뱃사공이 말했다. “방금 제가 이미 말씀드렸건만 선생께서 저의 말씀을 따르지 않더니, 지금 배가 물 가운데에서 빙빙 돌아 매우 위험합니다. 행장과 옷을 정리하여 배에서 내려 헤엄쳐 건너야 될 것 같습니다.” 한갈자가 말했다. “나는 남이 나를 미워한다 하여 내 뜻을 바꾸지 않으며, 내가 장차 죽을 것이라 하여 나의 義理를 바꾸지 않는다.말을 미처 마치기도 전에 배가 안정되고 편안히 갔다한갈자가 말했다. “詩經무성한 칡덩굴이여, 나뭇가지에 뻗어 있구나. 화락한 군자여! 복을 구하는 방법이 사특하지 않다네.’라고 하였으니, 귀신도 사특하지 않은데 하물며 사람이랴!”

31. 不言而信,不動而威,不施而仁。志也

孔子曰:「無體之禮,敬也;無服之喪,憂也;無聲之樂,懽也;不言而信,不動而威,不施而仁。志也,鐘鼓之聲怒而擊之則武,憂而擊之則悲,喜而擊之則樂;其志變,其聲亦變。其志誠,通乎金石,而況人乎?」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儀式이 없는 至誠으로 공경하는 것이고, 喪服이 없는 居喪은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이며, 소리가 없는 음악은 마음에서 나오는 즐거움이다. 말하지 않아도 믿으며, 움직이지 않아도 위엄스러우며, 은혜를 베풀지 않아도 仁을 느끼는 것은 그 마음의 반영인 것이다. 과 북의 소리는 분노할 때 치면 사납고, 근심할 때 치면 구슬프고, 기쁠 때 치면 즐거움이 나타난다. 품은 뜻이 변하면 그 소리도 변하는 것이니, 그 뜻이 정성스러우면 金石도 통하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32. 去爾外厲,與爾內折,色勝而心自取之,去三者而可矣

公孟子高見顓孫子莫曰:「敢問君子之禮何如?」顓孫子莫曰:「去爾外厲,與爾內折,色勝而心自取之,去三者而可矣。」公孟不知以告曾子,曾子愀然逡巡曰:「大哉言乎!夫外厲者必內折,色勝而心自取之必為人役。是故君子德行成而容不知,聞識博而辭不爭,知慮微達而能不愚。」

公孟子高顓孫子莫을 뵙고 말했다. “감히 여쭙건대 君子는 어떤 것입니까?”

전손자막이 대답했다. 너의 외면에 나타나는 엄격함과 內心의 우월함과 마음에 자신이 옳다고 고집하는 것을 버려야 되니, 이 세 가지를 버리면 될 것이다.”

공맹자고가 이를 이해하지 못하여 曾子에게 말씀 드리자, 증자는 안색이 변하며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훌륭하구나. 그가 한 말이여! 외면이 엄격한 사람은 반드시 내심이 잘 꺾이고, 내심에 우월하고 마음에 자신이 옳다고 고집하는 사람을 반드시 남에게 부림을 당한다. 이 때문에 군자는 德行이 이루어져도 용모는 지혜롭지 못하고, 見識이 많아도 남과 말로 다투지 않으며, 智謀思慮가 세밀한 곳까지 통달하여 愚昧하지 않다.”

33. 鳥之將死,必有悲聲;君子集大辟,必有順辭

君子脩禮以立志,則貪慾之心不來;君子思禮以脩身,則怠惰慢易之節不至;君子脩禮以仁義, 則忿爭暴亂之辭遠

曾子有疾,孟儀往問之。曾子曰:「鳥之將死,必有悲聲;君子集大辟,必有順辭。禮有三儀,知之乎?」對曰:「不識也。」曾子曰:「坐,吾語汝。君子脩禮以立志,則貪慾之心不來;君子思禮以脩身,則怠惰慢易之節不至;君子脩禮以仁義,則忿爭暴亂之辭遠。若夫置樽俎、列籩豆,此有司之事也,君子雖勿能可也。」

曾子가 병이 들자 孟儀가 가서 문병했는데, 증자가 말했다. 새가 죽으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우는 소리가 슬프고, 君子가 죽으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말이 이치에 순하다. 는 세 가지 준칙이 있는데, 너는 이를 아느냐?” 맹의가 대답했다. “알지 못합니다.” 증자가 말하였다. “앉아라. 내 너에게 말해주마.

군자가 예를 修行하여 뜻을 세우면 탐욕스런 마음이 들어오지 않고, 군자가 예를 생각하여 몸을 修養하면 게으르고 경솔한 태도가 찾아오지 않으며, 군자가 예를 수행하여 仁義를 행하면 忿爭과 난폭한 말이 멀어지게 된다. 예컨대 罇俎를 안치하고 籩豆를 진설하는 등의 일은 바로 담당하는 자가 하는 일이니, 군자는 잘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34. 其質美而無文,吾欲說而文之
其質美而文繁,吾欲說而去其文。

孔子曰可也簡。簡者,易野也,易野者,無禮文也。孔子見子桑伯子,子桑伯子不衣冠而處,弟子曰:「夫子何為見此人乎?」曰:「其質美而無文,吾欲說而文之。」孔子去,子桑伯子門人不說,曰:「何為見孔子乎?」曰:「其質美而文繁,吾欲說而去其文。」故曰,文質脩者謂之君子,有質而無文謂之易野,子桑伯子易野,欲同人道於牛馬,故仲弓曰太簡。上無明天子,下無賢方伯,天下為無道,臣弒其君,子弒其父,力能討之,討之可也。當孔子之時,上無明天子也,故言雍也可使南面,南面者天子也,雍之所以得稱南面者,問子桑伯子於孔子,孔子曰:「可也簡。」仲弓曰:「居敬而行簡以道民,不亦可乎?居簡而行簡,無乃太簡乎?」子曰:「雍之言然!」仲弓通於化術,孔子明於王道,而無以加仲弓之言。

孔子께서 가까스로 괜찮으니, 사람됨이 소탈[]하다.”고 말씀하셨다소탈함은 순박하고 촌스러운 것이니, 소탈하고 촌스러운 사람은 文飾이 없다. 공자께서 子桑伯子를 만나셨는데 자상백자가 衣冠을 갖추지 않은 채 거처하였다弟子가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런 사람을 만나십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그는 本質은 아름다우나 文飾이 없으니, 나는 그를 설득하여 문식을 권유하고자 하였노라.” 공자께서 떠난 뒤에 자상백자의 門人이 기뻐하지 아니하여 말했다. “무엇 때문에 공자를 만나십니까?”

자상백자가 대답했다. “그는 본질은 아름다우나 문식이 많으니, 나는 그를 설득하여 문식을 버리게 하고자 하였노라.”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식과 본질이 잘 닦인 사람을 君子라 하고, 본질은 있으나 문식이 없는 것을 소탈하고 촌스럽다고 한다. 자상백자는 소탈하고 촌스러워 사람의 도덕규범을 소나 말과 동일하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仲弓이 그를 지나치게 소탈하다.”고 말하였다.

위에 밝은 天子가 없고 아래에 어진 方伯이 없어 천하 사람들이 無道한 행위를 하니, 신하가 임금을 弑害하고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거든 이를 토벌할 능력이 있으면 토벌하는 것이 옳다. 공자 때를 당하여 위에 밝은 천자가 없었다. 그러므로 冉雍은 남쪽을 향하여 앉을 만하다.”라 하였으니, 남쪽을 향하여 앉는 사람은 천자이다.

염옹이 남쪽을 향하여 앉을 만하다는 칭찬을 받게 된 것은 염옹이 공자께 자상백자에 대해 여쭙자, 공자께서 가까스로 괜찮으니, 사람됨이 소탈[]하다.”고 하셨는데, 중궁은 몸가짐을 공경히 하면서 소탈한 행위를 하여 백성을 인도하면 옳지 않겠습니까? 몸가짐을 소탈하게 하면서 소탈한 행위를 하면 지나치게 소탈하지 않겠습니까?” 하니, 공자는 염옹의 말이 맞다.” 하셨다. 중궁은 敎化에 통하였고, 공자는 王道에 밝으셨으니, 중궁이 한 말에 더 보충할 것이 없다.

 

35. 孔子至彼,聞韶三月不知肉味

孔子至齊郭門之外,遇一嬰兒挈一壺,相與俱行,其視精,其心正,其行端,孔子謂御曰:「趣驅之,趣驅之。」韶樂方作,孔子至彼,聞韶三月不知肉味。故樂非獨以自樂也,又以樂人;非獨以自正也,又以正人矣哉!於此樂者,不圖為樂至於此。

孔子께서 나라 國道城門 외곽에 도착하여 병을 들고 가는 한 어린아이를 만나 서로 함께 가셨다. 그 아이의 시선은 밝게 빛나고 마음은 바르며 행동은 단정하였다.

공자께서 수레를 모는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수레를 빨리 몰아라. 수레를 빨리 몰아라. 성 안에 韶樂을 한창 연주하고 있구나.” 공자께서 그곳에 당도하여 소악의 연주를 들으시고 매료되어 3개월 동안 고기의 맛을 모르셨다. 그러므로 음악은 연주하는 자신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 또 남을 즐겁게 하며, 자신만을 단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또 남을 단정하게 하니, 음악의 작용이 지극하다. 이 음악에 있어서 즐거움이 이런 경지에 이를 줄은 헤아리지 못하였다.

36. **

黃帝詔伶倫作為音律,伶倫自大夏之西,乃之崑崙之陰,取竹於嶰谷,以生竅厚薄均者,斷兩節間,其長九寸而吹之,以為黃鐘之宮,日含少次,制十二管,以崑崙之下,聽鳳之鳴,以別十二律,其雄鳴為六,雌鳴亦六,以比黃鐘之宮,適合黃鐘之宮,皆可生之,而律之本也。故曰黃鐘微而均,鮮全而不傷,其為宮獨尊,象大聖之德,可以明至賢之功,故奉而薦之于宗廟,以歌迎功德,世世不忘。是故黃鐘生林鐘,林鐘生大呂,大呂生夷則,夷則生太簇,太簇生南呂,南呂生夾鐘,夾鐘生無射,無射生姑洗,姑洗生應鐘,應鐘生蕤賓。三分所生,益之以一分以上生;三分所生,去其一分以下生。黃鐘、大呂、太簇、夾鐘、姑洗、仲呂、蕤賓為上,林鐘、夷則、南呂、無射、應鐘為下。大聖至治之世,天地之氣,合以生風,日至則日行其風以生十二律,故仲冬短至則生黃鐘,季冬生大呂,孟春生太簇,仲春生夾鐘,季春生姑洗,孟夏生仲呂,仲夏生蕤賓,季夏生林鐘,孟秋生夷則,仲秋生南呂,季秋生無射,孟冬生應鐘。天地之風氣正,十二律至也。

黃帝伶倫에게 명하여 음률을 만들게 하니, 영윤은 大夏의 서쪽에서 崑崙山의 북쪽으로 가 嶰谷에서 대[]를 찾아 채취하였다. 대가 生長하면서 가운데 구멍이 뚫리고 두께가 고른 것을 이용하여 두 마디 사이를 잘라 그 길이가 아홉 치[] 되는 것을 불어서 黃鍾宮調로 삼으니, 이를 含少라 한다. 차례로 12개의 竹管을 만들어 곤륜산 아래에서 봉황의 울음소리를 듣고 12音調를 구별하였다. 그중 수컷의 울음소리가 여섯 종류이고, 암컷의 울음소리가 또한 여섯 종류이기에 이것으로 황종의 궁조에 비교하니, 황종의 궁조에 부합하였다. 모두 音律生成할 수가 있으니, 이 황종이 음률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황종의 음조는 미세하면서 고르며, 곱고 純正하여 듣는 귀를 슬프게 하지 아니하여 황종의 궁조만 홀로 존귀하니, 위대한 聖人을 상징하여 지극히 현명한 사람의 功業을 밝게 드러낼 수가 있다. 그러므로 宗廟 祭祀에 받들어 연주하여 선조의 공덕을 노래함으로써 대대로 잊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황종이 林鍾을 낳고 임종이 大呂를 낳고 대려가 夷則을 낳고 이칙이 太簇을 낳고 태주가 南呂를 낳고 남려가 夾鍾을 낳고 협종이 無射을 낳고 무역이 姑洗을 낳고 고선이 應鍾을 낳고 응종이 蕤賓을 낳는다.

3等分하여 음률을 생성하는데 1분을 더하여 위로 생성하고, 3등분하여 음률을 생성하는데 1분을 제하여 아래로 생성한다. 황종대려태주협종고선중려유빈은 위로 생성하는 음률이고, 임종이칙남려무역응종은 아래로 생성하는 음률이다. 위대한 성인의 지극히 잘 다스려진 시대에는 천지의 기운이 서로 합하여 바람을 일으키고, 冬至夏至가 되면 태양이 바람을 타고 운행하여 12율을 낳는다. 그러므로 仲冬(음력 11)에 해가 가장 짧은 동지가 되면 황종을 생성하고, 季冬(음력 12)에는 대려를 생성하며, 孟春(음력 正月)에는 태주를 생성하고, 仲春(음력 2)에는 협종을 생성하며, 中夏(음력 5)에 해가 가장 긴 하지가 되면 유빈을 생성하고, 季夏(음력 6)에는 임종을 생성하며, 孟秋(음력 7)에는 이칙을 생성하고, 中秋(음력 8)에는 남려를 생성하며, 季秋(음력 9)에는 무역을 생성하고, 孟冬(음력 10)에는 응종을 생성한다. 천지의 風氣가 바르게 움직이면 12율이 정해지는 것이다.

37. **

聖人作為鼓控揭塤箎,比六者德音之音,然後鐘磬竽瑟以和之,然後干戚旄狄以舞之;此所以祭先王之廟也,此所以獻酢酳之酬也,所以官序貴賤各得其宜也,此可以示後世有尊卑長幼之序也。

聖人를 만들었으니, 이 여섯 악기는 德化를 표현하는 소리이다. 그런 뒤에 로 반주하여 조화를 이루고, 그런 뒤에 을 가지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다. 이것이 宗廟에서 先王을 제사할 때 쓰는 것이며, 잔치할 때 에 쓰는 것이며, 벼슬 등급의 차례에 따른 貴賤에 각각 알맞게 쓰는 것이며, 이것으로 後代 사람들에게 尊卑長幼의 차례가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38. **

鐘聲鏗鏗以立號,號以立橫,橫以立武,君子聽鐘聲則思武臣。石聲磬磬以立辯,辯以致死,君子聽磬聲則思死封疆之臣。絲聲哀哀以立廉,廉以立志,君子聽琴瑟之聲,則思志義之臣。竹聲濫濫以立會,會以聚眾,君子聽竽笙簫管之聲,則思畜聚之臣。鼓鞞之聲懽懽以立動,動以進眾,君子聽鼓鞞之聲,則思將帥之臣。君子之聽音,非聽其鏗鏘而已,彼亦有所合之也。

소리는 크고 강하니, 크고 강한 소리는 號令를 세울 수 있고, 호령은 용기를 솟구치게 하며, 용기는 威武를 세우게 한다. 그래서 君子는 종소리를 들으면 武臣을 생각하게 된다. 돌로 만든 악기 소리는 과감하고 강경하니, 과감하고 강경한 소리는 是非를 변별하고, 시비를 변별함은 죽음을 바쳐 충성하게 한다. 그래서 군자는 石磬소리를 들으면 죽음으로 변경을 지키는 신하를 생각하게 된다.

현악기의 소리는 구슬프니, 구슬픈 소리는 청렴한 기상을 세울 수 있고, 청렴함은 고상한 뜻을 세우게 된다. 그래서 군자는 琴瑟의 소리를 들으면 志節이 있는 신하를 생각하게 된다. 대로 만든 관악기의 소리는 거둬들이는 힘이 있으니, 거둬들이는 소리는 사람을 모을 수 있고, 사람을 모아 民衆을 단결시킬 수 있다. 그래서 군자는 의 소리를 들으면 민중을 모아 기르는 신하를 생각하게 된다.

鼓鼙의 소리는 歡呼하게 하니, 환호하게 하는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고,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켜 군대를 진격하게 한다. 그래서 군자는 고비의 소리를 들으면 장수 노릇하는 신하를 생각하게 된다. 군자가 음악을 듣는 방법은 울리는 악기 소리를 들을 뿐만 아니라, 그 소리에서도 합당한 情感을 추구하는 것이다.

39. 德者性之端也,樂者德之華也,金石絲竹,樂之器也。詩言其志,歌詠其聲,舞動其容,三者本於心,然後樂器從之;是故情深而文明,氣盛而化神,和順積中而英華發外,惟樂不可以為偽

樂者,聖人之所樂也,而可以善民心,其感人深,其移風易俗,故先王著其教焉。夫民有血氣心知之性,而無哀樂喜怒之常,應感起物而動,然後心術形焉。是故感激憔悴之音作,而民思憂;嘽奔慢易繁文簡節之音作,而民康樂;粗屬猛奮廣賁之音作,而民剛毅;廉直勁正莊誠之音作,而民肅敬;寬裕肉好順成和動之音作,而民慈愛。流僻邪散狄成滌濫之音作,而民淫亂。是故先王本之情性,稽之度數,制之禮義;含生氣之和,道五常之行,使陽而不散,陰而不密,剛氣不怒,柔氣不懾;四暢交於中,而發作於外,皆安其位,不相奪也。然後立之學等,廣其節奏,省其文彩;以繩德厚,律小大之稱,比終始之序,以象事行,使親疏貴賤,長幼男女之理,皆形見於樂,故曰樂觀其深矣。土弊則草木不長,水煩則魚鱉不大,氣衰則生物不遂,世亂則禮慝而樂淫;是故其聲哀而不莊,樂而不安,慢易以犯節,流漫以忘本,廣則容姦,狹則思慾;感滌蕩之氣,滅平和之德,是以君子賤之也。凡姦聲感人而逆氣應之,逆氣成象而淫樂興焉;正聲感人而順氣應之,順氣成象而和樂興焉。唱和有應,回邪曲直,各歸其分,而萬物之理,以類相動也。是故君子反情以和其志,比類以成其行,姦聲亂色,不習於聽,淫樂慝禮,不接心術,惰慢邪辟之氣,不設於身體;使耳目鼻口心智百體,皆由順正以行其義,然後發以聲音,文以琴瑟,動以干戚,飾以羽旄,從以簫管;奮至德之光,動四氣之和,以著萬物之理。是故清明象天,廣大象地,終始象四時,周旋象風雨;五色成文而不亂,八風從律而不姦,百度得數而有常。小大相成,終始相生,唱和清濁,代相為經,故樂行而倫清,耳目聰明,血氣和平,移風易俗,天下皆寧,故曰樂者樂也。君子樂得其道,小人樂得其欲,以道制欲,則樂而不亂;以欲忘道,則惑而不樂,是故君子反情以和其意,廣樂以成其教,故樂行而民向方,可以觀德矣。德者性之端也,樂者德之華也,金石絲竹,樂之器也。詩言其志,歌詠其聲,舞動其容,三者本於心,然後樂器從之;是故情深而文明,氣盛而化神,和順積中而英華發外,惟樂不可以為偽。樂者,心之動也,聲者,樂之象也,文采節奏,聲之飾也。君子之動本,樂其象也,後治其飾,是故先鼓以警戒,三步以見方,再始以著往,復亂以飭歸;奮疾而不拔,極幽而不隱,獨樂其志,不厭其道,備舉其道,不私其欲。是故情見而義立,樂終而德尊,君子以好善,小人以飭過,故曰生民之道,樂為大焉。

음악은 聖人이 즐거워하는 것이니, 백성의 마음을 하게 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켜서 풍속과 습관을 바꾸기가 쉽다. 그러므로 先王이 그 敎化를 밝게 드러낸 것이다. 사람은 血氣知覺天性은 있고, 슬프고 즐겁고 기쁘고 성을 내는 떳떳한 감정은 없어서 사물에 感應하여 감정이 일어나고 난 뒤에 마음이 따라서 표현되어 나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감격하고 번뇌[憔悴]하는 음악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슬프고 근심하며 완만하고 잘 어울리며 느리고 화평하며[慢易] 문채가 많으며[繁文], 가락이 간단하고 느린 음악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편안하고 즐거우며 높고 맹렬하며[粗厲] 강경하고 격렬하며[猛奮], 우렁차고 높은[廣賁] 음악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강력하고 과감하며 청렴하고 정직하며 굳세고 바르며, 단정하고 성실한 음악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엄숙하고 공경하며 너그럽고 넉넉하며 윤택하고 원만하며[肉好] 차례를 따라 유창함을 이루고, 조화롭게 움직이는 음악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인자하여 남을 사랑하며 방탕 邪僻하고 邪淫 散漫하며 빠르게 왕래하여 이루고, 가락이 빠르고 급한 음악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음란하게 된다.

이 때문에 先王이 사람의 性情에 근본하고, 音律度數를 헤아리며, 禮義를 제정하고, 生氣의 화평함을 담으며, 오상의 운행을 인도하여 陽氣는 흩어지지 않고, 陰氣는 갇혀서 숨어 있지 않으며, 강렬한 기운은 성내지 않고, 유순한 기운은 겁을 먹지 않게 하였다.

그리하여 네 가지가 마음속에서 막힘없이 통하고 밖으로 발산하여 모두 자기 자리에 편안하여 서로 남의 것을 빼앗지 않는다. 그런 뒤에 재능에 따라 학습의 등급[學等]을 정하여 그 가락을 넓히고, 음조의 조화[文彩]를 살펴서 德行純厚한 정도를 評定하며, 크고 작은 음률의 칭호를 법도에 맞게 정리하며, 先後의 순서를 견주어 합하여 음악으로 실행하는 일의 상징으로 삼아 親疏貴賤長幼男女의 도리가 모두 음악을 통해 드러나게 하였다. 그러므로 음악으로 관찰하는 의의가 깊다고 말하는 것이다.

地力이 고갈되면 초목이 자라지 못하고, 물의 유입이 번다하면 魚鼈이 크지 못하며, 음양의 가 미약하면 生物이 생장하지 못하고, 세상이 어지러우면 禮樂이 사특하고 음란해진다. 이 때문에 그 소리가 구슬퍼서 장중하지 못하고, 즐거우면서도 편안하지 못하며, 완만하고 느슨하여 절도를 어기고, 절제하지 못하여 근본을 잊는다.

이런 음악은 크게는 奸惡함을 용납하고, 작게는 탐욕을 생각하여 방탕한 기운을 느끼고, 화평한 덕을 소멸시킨다. 이 때문에 군자는 이런 음악을 천시하는 것이다. 간사한 소리가 사람을 감동시키면 正理를 거스르는 기운이 호응해오고, 거스르는 기운이 형상을 이루면 음란한 음악이 일어나며, 純正한 음악이 사람을 감동시키면 和順한 기운이 호응해오고, 화순한 기운이 형상을 이루면 화순한 음악이 일어난다.

부르고 화답하는 데 호응함이 있어서 간사하고 사벽하며 굽음과 곧음이 각기 그 분수대로 돌아가 만물의 이치가 같은 종류끼리 서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그 性情을 회복하여 心志를 화평하게 하고, 善類와 나란히 하여 그 품행을 이루어 간사한 음악과 음란한 姿色을 귀와 눈에 머물러 두지 않으며, 음란한 음악과 사특한 를 마음에 접촉하지 않으며, 게으르고 오만하며 邪辟한 기운을 몸에 두지 아니하여 귀마음의 지각과 온몸이 모두 화순하고 정직함을 따라 그 道義를 실천하게 한다.

그런 뒤에 음악으로 표현해내고, 琴瑟로 꾸며내며, 방패와 도끼[干戚]를 잡고 춤(武舞)을 추고, 깃과 소꼬리[羽旄]로 장식하며(文舞), 簫管으로 뒤따르게 하여 가장 훌륭한 덕의 광채를 선양하고, 四時의 온화한 기후를 발동하게 하여 만물의 生理를 드러낸다. 이 때문에 淸明한 음악은 하늘을 상징하고, 광대한 음악은 大地를 상징하며, 끝나면서 다시 시작하는 것[終始]은 사시를 상징하고, 회전하여 도는 것은 風雨를 상징한다.

五色()이 문채를 이루어 어지럽지 않고, 八風이 음률을 따라 간특하지 않으며, 온갖 법도가 합당한 도수를 얻어 떳떳한 규율이 있어서 작고 큰 악기가 서로 이루어주고, 처음과 끝이 순환하며 서로 생성하며, 부르고 화답하고 맑고 탁한 소리가 서로 교차하여 규칙이 된다. 그러므로 바른 음악이 유행하면 윤리가 맑아져서 귀와 눈이 밝아지고, 血氣가 화평하며, 풍속이 선하게 변화하여 천하 사람들이 모두 평안해진다.

그러므로 음악은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군자는 그 안에서 도리를 얻은 것을 즐거워하고, 소인은 그 욕망을 얻은 것을 즐거워하니, 도리로 욕망을 제재하면 즐거워도 어지럽지 않고, 욕망 때문에 도리를 잊으면 현혹되어 즐겁지 않게 된다. 이 때문에 군자는 성정을 되돌려 그 마음을 화평하게 하고, 음악의 공효를 확대하여 교화를 이룬다. 그러므로 바른 음악이 유행하여 백성들이 바른 도리로 향하면 이를 따라 덕행을 관찰할 수가 있다.

덕은 사람 성품의 根本이고, 음악은 덕의 精華이며, 金‧石‧絲‧竹은 樂器이다. 詩는 그 사람의 뜻을 말하고, 노래는 그 사람의 소리를 읊는 것이며, 춤은 그 사람의 동작을 표현하는 것이니, 이 세 가지가 마음에 근본하고 난 뒤에 악기를 따라 연주한다. 이 때문에 感性이 깊으면 나타나는 형식이 밝고 기세가 성대하면 교화의 효과가 신묘하다. 화평하고 온순한 감정이 마음속에 쌓여서 아름다운 형태가 밖으로 표현되어 나오니, 음악만은 허위로 할 수가 없다.

음악은 마음이 감동하여 생기는 것이고, 소리는 음악의 밖으로 표현되어 나오는 것이며, 音色과 연주는 소리를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다. 君子는 마음에 감동하고, 음악으로 표현하고서 그런 뒤에 아름답게 다스려 꾸미는 것이다. 이 때문에 먼저 북을 쳐서 경계하며, 세 번 발을 들어 춤추는 방향을 보이며, 一節을 마치고 재차 시작하여 가는 곳을 드러내며, 을 마치고 정리하여 자리로 돌아가서 춤사위가 빨라도 지나치게 빠르지 않고, 음악이 지극히 은미하여도 감추지 않는다. 그러니 홀로 그 뜻을 즐거워하고, 正道를 싫어하지 않으며, 그 정도를 빠짐없이 시행하고, 개인적인 욕망을 따르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감정을 드러내자 도의가 확립되고, 음악을 마치자 덕이 높아진다. 군자는 음악으로 선을 좋아하고, 소인은 음악으로 허물을 듣는다. 그러므로 백성을 교화하는 방법은 음악이 가장 위대하다고 하는 것이다.

40. 故禮以定其意,樂以和其性,政以一其行,刑以防其姦;禮樂刑政,其極一也,所以同民心而立治道也。

樂之可密者,琴最宜焉,君子以其可脩德,故近之。凡音之起,由人心生也;人心之動,物使之然也;感於物而後動,故形於聲;聲相應故生變,變成方故謂之音。比音而樂之,及干戚羽旄謂之樂;樂者音之所由生也,其本在人心之感於物。是故其哀心感者,其聲以殺;其樂心感者,其聲嘽以緩;其喜心感者,其聲發以散;其怒心感者,其聲壯以厲;其敬心感者,其聲直以廉;其愛心感者,其聲和以調。人之善惡非牲也,感於物而後動,是故先王慎所以感之,故禮以定其意,樂以和其性,政以一其行,刑以防其姦;禮樂刑政,其極一也,所以同民心而立治道也。

악기 중에 가장 친밀히 할 만한 것은 이 가장 적합하니, 君子는 이것으로 을 수양할 수 있기 때문에 가까이하는 것이다. 의 발생은 사람의 마음을 따라 생성되니,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사물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마음은 사물에 느낌을 받은 뒤에 움직인다. 그러므로 소리로 형성되어 나오고, 소리가 서로 호응하기 때문에 변화가 생기고, 변화가 일정한 音調를 이루기[成方] 때문에 이를 이라고 한다.

각종 음을 배합하여 악기로 연주하는 것과 干戚羽旄를 잡고 춤을 추는 것을 이라고 한다. 악은 음을 따라 생긴 것이니, 그 근본은 사람의 마음이 사물에 느낌을 받아 나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느낀 경우에는 그 음악소리가 빠르면서 처지고, 즐거운 마음을 느낀 경우에는 그 음악소리가 완만하면서 펴지고, 기쁜 마음을 느낀 경우에는 그 음악소리가 밝으면서 경쾌하고, 노한 마음을 느낀 경우에는 그 음악소리가 맹렬하면서 사납고, 공경하는 마음을 느낀 경우에는 그 음악소리가 곧으면서 정결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느낀 경우에는 그 음악소리가 온화하면서 조화를 이룬다. 사람의 天性으로 생긴 것이 아니니, 사물에 느낌을 받은 뒤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先王이 사물에 느낌을 받는 것을 신중히 하였다. 그러므로 禮法으로 意志를 굳건히 안정시키고, 음악으로 性情을 和順하게 기르며, 政令으로 행동을 통일시키고, 형벌로 간악한 범죄를 방지하게 하였다. 예법‧음악‧형벌‧정령의 최종 목적은 똑같으니, 이것으로 백성의 마음을 통일하고 다스리는 방도를 세운다.

41.

凡音,生人心者也,情動於中而形於聲,聲成文謂之音。是故治世之音安以樂,其政和;亂世之音怨以怒,其政乖;亡國之音哀以思,其民困。聲音之道,與政通矣。宮為君,商為臣,角為民,徵為事,羽為物;五音亂則無法,無法之音:宮亂則荒,其君驕;商亂則陂,其官壞;角亂則憂,其民怨;徵亂則哀,其事勤;羽亂則危,其財匱;五者皆亂,代相淩謂之慢,如此則國之滅亡無日矣。鄭、衛之音,亂世之音也,比於慢矣;桑間、濮上之音,亡國之音也,其政散,其民流,誣上行私而不可止也。

音은 사람의 마음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情感이 마음에서 움직여 소리로 표현되어 나오니, 소리가 곡조를 이룬 것을 음악이라 한다. 이 때문에 잘 다스려진 세상의 음악은 편안하면서 즐거우니 정치가 평화롭기 때문이고, 혼란한 세상의 음악은 원망하면서 분노하니 정치가 道義에 어그러지기 때문이며, 망하는 나라의 음악은 슬프면서 근심하니 백성의 삶이 괴롭기 때문이다. 음악이 표현하는 형식은 정치와 통한다.

은 임금을 상징하고, 은 신하를 상징하며, 은 백성을 상징하고, 는 일을 상징하며, 萬物을 상징한다. 五音()이 어지러우면 法度가 없다. 그러니 법도가 없는 음악은, 宮聲이 어지러우면 그 소리가 荒亂하니 이는 그 임금이 교만함을 반영하고, 商聲이 어지러우면 그 소리가 바르지 못하니 이는 그 관료사회가 부패함을 반영하고, 角聲이 어지러우면 그 소리가 근심스러우니 이는 그 백성들이 원망함을 반영하고, 徵聲이 어지러우면 그 소리가 슬프니 이는 그 일이 고달픔을 반영하고, 羽聲이 어지러우면 그 소리가 위태로우니 이는 그 재물이 고갈되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오음이 모두 어지러워져서 번갈아 서로 침범하는 것을 질서가 없어 怠慢하다고 말하니, 음악이 이와 같으면 나라가 곧바로 멸망하고 말 것이다. 나라와 나라의 음악은 어지러운 세상의 음악이고, 桑間濮上의 음악은 망하는 나라의 음악이다. 그 나라의 정치는 散亂하고, 백성들은 유랑하여 윗사람을 속이고 개인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풍조를 그치게 할 수 없다.

42. 使耳聽雅音,目視正儀,足行正容,心論正道

凡人之有患禍者,生於淫泆暴慢,淫泆暴慢之本,生於飲酒;故古者慎其飲酒之禮,使耳聽雅音,目視正儀,足行正容,心論正道。故終日飲酒而無過失,近者數日,遠者數月,皆人有德焉以益善,詩云:「既醉以酒,既飽以德。」此之謂也。

사람이 禍難을 당하는 것은 음란하고 방탕하며 사납고 거만한 데서 생기는데, 음란하고 방탕하며 사납고 거만함의 근원은 술을 마시는 데서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예전에 술 마시는 예절을 신중히 하였다. 귀는 高雅한 음악을 듣고, 눈은 단정한 儀容을 보며, 발은 단정하게 걷고, 마음은 올바른 도리를 講論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하루 종일 술을 마셔도 過失이 없었다. 짧게는 며칠에 한 번, 길게는 몇 달에 한 번 마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德行이 있는 사람이 되어 더욱 선량한 인품이 되었다. 詩經이미 술에 취하고, 아름다운 덕에 취했다.”라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43. 樂之動於內,使人易道而好良;樂之動於外,使人溫恭而文雅

凡從外入者,莫深於聲音,變人最極,故聖人因而成之以德曰樂,樂者德之風,詩曰:「威儀抑抑,德音秩秩。」謂禮樂也。故君子以禮正外,以樂正內;內須臾離樂,則邪氣生矣,外須臾離禮,則慢行起矣;故古者天子諸侯聽鐘聲,未嘗離於庭,卿大夫聽琴瑟,未嘗離於前;所以養正心而滅淫氣也。樂之動於內,使人易道而好良;樂之動於外,使人溫恭而文雅;雅頌之聲動人,而正氣應之;和成容好之聲動人,而和氣應之;粗厲猛賁之聲動人,而怒氣應之;鄭衛之聲動人,而淫氣應之。是以君子慎其所以動人也。

신체 밖에서 내면으로 들어오는 것 중에 聲音보다 더 큰 것이 없어서 사람을 가장 잘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聖人이 성음에 의지하여 을 융합해 만들었으니, 이를 음악이라고 한다. 음악은 덕을 표현하는 것이니, 詩經威儀가 신중하고 치밀하며, 德音이 명쾌하고 정연하다.” 하였으니, 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君子는 예를 이용하여 외면의 용모를 바르게 하고, 음악을 이용하여 내면의 마음을 바르게 한다. 마음이 잠시라도 음악에서 떠나면 邪惡한 기운이 생기고, 용모가 잠시라도 예에서 떠나면 오만한 행동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옛날 天子諸侯소리를 들을 적에 일찍이 조정에서 떠나지 않고, 卿大夫琴瑟 연주를 들을 적에 일찍이 악기의 앞에서 떠나지 않은 것은, 바른 마음을 涵養하고 淫邪의 기운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음악이 사람의 내면을 감동시키면 사람을 道德으로 향하게 하기 쉬워 선량하게 하고, 음악이 외면을 감동시키면 사람을 溫和하고 恭遜하며 고상하고 우아하게 한다. 高雅盛世의 음악이 사람을 감동시키면 正大한 기운이 호응해오고,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음악이 사람을 감동시키면 화락한 기운이 호응해오며, 거칠고 사나운 음악이 사람을 감동시키면 분노한 기운이 호응해오고, 나라 나라의 음악이 사람을 감동시키면 음란한 기운이 호응해온다. 이 때문에 군자가 사람을 감동시키는 음악을 신중히 하는 것이다.

44. 故君子執中以為本,務生以為基,故其音溫和而居中,以象生育之氣也

子路鼓瑟有北鄙之聲,孔子聞之曰:「信矣,由之不才也!」冉有侍,孔子曰:「求來,爾奚不謂由夫先王之制音也?奏中聲,為中節;流入於南,不歸於北。南者生育之鄉,北者殺伐之域;故君子執中以為本,務生以為基,故其音溫和而居中,以象生育之氣也。憂哀悲痛之感不加乎心,暴厲淫荒之動不在乎體,夫然者,乃治存之風,安樂之為也。彼小人則不然,執末以論本,務剛以為基,故其音湫厲而微末,以象殺伐之氣。和節中正之感不加乎心,溫儼恭莊之動不存乎體,夫殺者乃亂亡之風,奔北之為也。昔舜造南風之聲,其興也勃焉,至今王公述無不釋;紂為北鄙之聲,其廢也忽焉,至今王公以為笑。彼舜以匹夫,積正合仁,履中行善,而卒以興,紂以天子,好慢淫荒,剛厲暴賊,而卒以滅。今由也匹夫之徒,布衣之醜也,既無意乎先王之制,而又有亡國之聲,豈能保七尺之身哉?」冉有以告子路,子路曰:「由之罪也!小人不能,耳陷而入於斯。宜矣,夫子之言也!」遂自悔,不食七日而骨立焉,孔子曰:「由之改過矣。」

子路을 연주하는데 북쪽 변경의 거칠고 방종한 소리가 울려나오자 孔子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참으로 仲由는 재능이 없구나!”

염유冉有가 모시고 있었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冉有의 이름). 이리 오너라. 너는 왜 (子路의 이름)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先王이 제정한 음악은 中和의 소리를 연주하고 중화의 가락에 맞는다. 남방에만 널리 전해지고, 북방에는 전해지지 않았으니, 남방은 만물을 生育하는 지역이고, 북방은 殺伐한 지역이다그러므로 君子는 중화의 소리를 굳게 취하는 것으로 근본을 삼고, 생육을 힘쓰는 것으로 기틀을 삼는다. 그 때문에 군자의 연주 소리는 온화하면서 중화를 유지하여 생육하는 기운을 상징한다. 근심하고 슬퍼하며 비통한 감정을 마음에 두지 않고, 사납고 음란하며 방탕한 행동을 몸에 베풀지 않는다그렇게 되는 것은, 곧 다스려져서 보존되는 기풍이고, 편안하고 즐겁게 되는 표현이 된다.

저 小人은 그렇지 않아 枝葉을 취하는 것으로 근본을 논하고 剛愎함을 힘쓰는 것으로 기틀을 삼는다. 그 때문에 소인의 연주 소리는 침울하고 사나우며 細微하여 살벌한 기운을 상징한다. 溫和하고 中正情感을 마음에 두지 않고, 온유하고 의젓하며 공경하고 장중한 행동을 몸에 베풀지 않는다. 살벌한 기운은, 亂亡하는 기풍이고, 패배하여 달아나는 표현이 된다. 옛날 帝舜南風이란 樂章을 지으니, 그의 功業이 성하게 일어나 지금까지 王公들의 칭송이 그치지 않고, 殷紂北鄙의 음악을 만드니, 그의 패망이 빨라서 지금까지 왕공들이 웃음거리로 삼는다.

저 제순은 匹夫로서 正道를 축적하고 仁德에 부합하며, 中和의 도를 실천하고 善政을 행하여 마침내 興起하였고, 은주는 天子로서 교만하고 음란하며 방탕한 행위를 좋아하고, 강퍅하고 거칠며 포악한 정치를 하여 마침내 멸망하였다. 지금 는 필부의 무리이고, 布衣와 같은 부류이다. 이미 선왕의 禮制를 법으로 삼으려는 뜻이 없고, 또 나라를 망하게 한 음악을 연주하니, 어찌 일곱 자[] 남짓한 몸을 보존하겠는가?”

염유가 공자의 말씀을 자로에게 말해주자, 자로가 말했다. “나의 잘못이로구나. 내가 禮樂에 능하지 못하여 스스로 여기에 빠져들었으니, 夫子께서 하신 말씀이 당연하다.”마침내 스스로 뉘우쳐 7일 동안 밥을 먹지 않아 뼈가 앙상하였다. 이를 보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의 잘못을 고치는 일이 지나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