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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내 연기가 마음에 들었다면 이 무대를 떠나는 내게 박수를 쳐주게 _ 아우구스투스

by 변리사 허성원 2025. 4. 23.

내 연기가 마음에 들었다면, 이 무대를 떠나는 내게 박수를 쳐주게

 

인생이라는 희극에서
내 연기가 마음에 들었는가?
그렇다면 이 무대를 떠나는 내게 박수를 쳐주게.

“Have I have played my part well in the comedy of life?
If so, clap your hands and dismiss me from the stage with appla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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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언은 로마 제국 초대 황제 가이우스 옥타비우스(Gaius Octavius), 즉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임종 시에 한 말이다.

출처는 '수에토니우스(Suetonius)'로마 황제 열전(Divus Augustus)이다.
수에토니우스는 황제들의 생애를 전기 형식으로 기록한 고대 로마의 역사가였다.
그에 따르면, 아우구스투스는 죽기 직전 그리스 희극 전통의 관습어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Si quid bene gessisti, prope adscende, et plaudite!"
"내가 연기를 잘 했다면, 박수를 보내주시오!"

또 다른 전해지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Acta est fabula, plaudite!"
"연극은 끝났소. 박수를!"

이는 고대 로마 연극의 종막에서 사용된 관용적 표현으로, 배우가 퇴장하며 관객에게 하는 마지막 인사였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의 '공연'으로 간주했다.
이는 단순한 격식어가 아닌, 진심 어린 자기 성찰의 표현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줄리우스 시저의 후계자로 살아가며, 내전과 권력투쟁, 황제라는 새로운 정치 형태의 창조까지 역사의 중심 무대에서 연기하였다.

이 말에는 다음과 같은 철학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 삶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무대이다
우리는 모두 배우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연기하는 존재이다.
이 생각은 스토아 철학, 특히 에픽테토스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사유와도 닿아 있다.

2) 죽음은 퇴장이며, 평가의 순간이다
황제라 해도 죽음 앞에선 겸허하였고, 관객(시민 혹은 신들)의 평가를 기다린다.
이는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로도 해석 가능하다.

3) 자기 인생의 작가이자 배우로서의 자각
그는 스스로 인생의 극본을 짜고, 연출하고, 연기한 존재였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연기가 남에게 감동을 주었는지는 타인의 평가에 맡긴다는 겸손을 보였지.

오늘날 이 말은 자기 삶의 완성도에 대한 반성적 질문으로도 쓰인다.

내가 진정으로 잘 살았는가?”
내 역할을 충실히 해냈는가?”
죽는 순간, 남들이 나를 기억할 때 박수를 쳐줄까?”

이는 리더, 예술가, 혹은 보스 같은 창조자에게 특히 울림이 크지.
삶을 하나의 작품으로 여기는 사람에게 이 마지막 인사는 최고의 평가 요청이자 가장 진실한 작별 인사일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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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플렉시티 검색)

*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 대해

아우구스투스(Augustus, 기원전 63년~서기 14년)는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이자, 로마의 전성기를 연 인물입니다.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Gaius Octavius)였으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로 입적되어 후계자가 되었습니다58.

* 주요 생애와 업적

  • 출생과 배경: 기원전 63년 로마에서 태어났으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조카이자 양자입니다.
  • 권력 장악: 카이사르가 암살된 뒤(기원전 44년), 옥타비우스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제2차 삼두정치를 구성하여 카이사르의 암살자들을 물리쳤습니다. 이후 삼두정치가 와해되자, 악티움 해전(기원전 31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격파하고 로마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었습니다58.
  • 황제 즉위: 기원전 27년,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라는 칭호를 받고 사실상 황제로 등극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는 ‘제1시민(Princeps)’이라 칭하며 공화정의 외형을 유지하려 했습니다58.
  • 팍스 로마나(Pax Romana): 그의 통치 기간(기원전 27년~서기 14년)은 ‘로마의 평화’라 불리는 태평성대의 시작으로,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 문화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369.
  • 내치와 개혁: 조세 제도 개혁, 도로망·통신망 정비, 상비군과 근위대 창설, 로마 경찰청·소방청 설치 등 행정과 사회 기반을 크게 발전시켰습니다38.
  • 문화 발전: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등 당대 최고의 시인들을 후원하며 로마 문학의 황금시대를 열었습니다. “진흙의 로마를 대리석의 로마로 만들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9.
  • 영토 확장: 이집트, 달마티아, 히스파니아 등 여러 지역을 정복하며 제국의 영토를 크게 넓혔습니다. 그러나 게르마니아 원정에서는 패배를 겪기도 했습니다8.
  • 후계와 유산: 아우구스투스는 양자인 티베리우스에게 황위를 물려주었고, 사후 신격화되어 로마인들의 숭배를 받았습니다. 이후 모든 로마 황제들이 그의 이름인 ‘아우구스투스’와 ‘카이사르’를 계승해 사용했습니다38.

* 의미와 영향

아우구스투스는 혼란스러웠던 로마 공화정을 안정된 제국으로 전환시킨 인물로, 로마사에서 가장 위대한 정치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통치 아래 로마는 약 200년간의 평화와 번영을 누렸으며, 서양 문명의 기초를 닦았습니다369.

또한, 그를 기념해 기존의 8월(Sextilis)이 ‘Augustus’로 명명되어 오늘날의 8월(August)이 되었습니다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