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닭을 키우겠다면 계경(鷄經)을 만들어보아라
네가 양계(養鷄)를 한다고 들었는데 양계란 참 좋은 일이긴 하지만 이것에도 품위있는 것과 비천한 것, 맑은 것과 더러운 것의 차이가 있다. 농서(農書)를 잘 읽고 좋은 방법을 골라 시험해보아라. 색깔을 나누어 길러도 보고, 닭이 앉는 홰를 다르게도 만들어보면서 다른 집 닭보다 더 살찌고 알을 잘 낳을 수 있도록 길러야 한다. 또 때로는 닭의 정경을 시로 지어보면서 짐승들의 실태를 파악해보아야 하느니, 이것이야말로 책을 읽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양계다. 만약 이(利)만 보고 의(義)는 보지 못하며 가축을 기를 줄만 알지 그 취미는 모르고, 애쓰고 억지 쓰면서 이웃의 채소 가꾸는 사람들과 아침저녁으로 다투기나 한다면 이것은 서너집 사는 산골의 못난 사람들이나 하는 양계다. 너는 어떤 식으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이미 닭을 기르고 있으니 아무쪼록 앞으로 많은 책 중에서 닭 기르는 법에 관한 이론을 뽑아낸 뒤 차례로 정리하여 "계경(鷄經)" 같은 책을 하나 만든다면, 육우(陸羽)라는 사람의 "다경(茶經)", 혜풍(惠風) 유득공(柳得恭)의 "연경(烟經)"과 같은 좋은 책이 될 것이다. 속사(俗事)에 종사하면서도 선비의 깨끗한 취미를 갖고 지내려면 언제나 이런 식으로 하면 된다.
_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박석무 편역) 중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 4년(1805년)에 강진으로 면회온 큰아들 학연(學淵) 편으로 닭을 키우겠다는 작은아들 학유(學遊)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 일부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인 다산 정약용은 정조의 보살핌을 받아 그의 정치철학을 펼칠 수 있었지만, 정조가 세상을 뜨면서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 고난의 세월을 겪는다. 18년의 유배기간 동안 약 500권의 책을 저술하여 초인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는 그 엄청난 저술 외에도 서신을 통해 아들과 제자, 친지 등과 소통하고 가르쳤다. 특히 아내가 보내준 치마폭을 잘라 첩을 만들고 거기에 아들들에게 훈계하는 글을 쓴 '하피첩(霞帔帖)'은 2015년에 서울옥션 경매에 나온 것을 국립민속박물관이 7억5천만에 낙찰받은 것이 알려져 유명해졌다.
둘째아들의 양계(養鷄)에 관련하여 훈계한 이 글을 보면 정약용 선생의 실학자 다운 면모를 제대로 알 수 있다.
먼저 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잘나가던 사대부 집안의 아들이 닭을 키우겠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 같으면 명문 대학을 나온 아들이 양계장을 하겠다고 하는 것과 같을 텐데, 이 시대의 부모라면 뭐라고 말할까?
그리고 이(利)만 보지말고 의(義)를 추구하라고 가르친다. 이익을 위해 기르지 말고 옳게 기르는 취미를 위해 기르라는 말이다. 선비에게 양계가 쉬운 일이 아닐텐데, 그것이 취미가 되면 일은 즐거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일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지적하신 것이다.
정작 기가 막힌 최고의 가르침은 양계를 시로 쓰라고 하신 말씀이다.
'시'라는 게 뭔가. 깊은 관찰을 바탕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그를 통해 새로운 통찰을 얻는 경지가 되어야만 창작할 수 있는 게 아니던가. 아무리 하잖은 일이라 하더라도 그 일을 기초로 시를 쓸 수 있다면, 이미 양계를 통해 도의 경지를 경험하였다는 뜻이다.
그런 도의 경지를 경험하면, 양계의 경전인 "계경(鷄經)" 같은 책을 어찌 만들지 못하겠는가. 책을 쓰기 위해 많은 책을 읽고 그 중에서 양계에 관한 이론을 뽑아 정리하라고 하신다. 이왕 양계에 종사하였다면 그 분야의 대가가 되어야 하고, 대가가 되었다면 양계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계경(鷄經)" 정도는 저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일 것이다. 특히 비록 천한 일이라 하더라도 계경을 쓸 정도로 공부하여 정리하고 기록을 남기면 선비의 깨끗한 취미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계경(鷄經)"을 만들라고 하신 진정한 이유는, 닭을 기르면서 익히고 경험한 지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하여 더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양계 방법을 널리 퍼뜨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리라. 목민심서를 쓰는 선생의 실학자적인 목민(牧民) 정신이 이렇게 드러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계경(鷄經)"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선생의 가르침이 선생의 둘째아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