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가 없어도 귀 조직은 잘 돌아갈까?>
조직을 이끄는 리더로서 어쩌다 장기간 자리를 비워야 하거나 갑작스러운 유고가 발생했을 때 내 조직은 문제가 없을까? '내가 없어도 아무 일 없이 잘 돌아가도 문제이고 잘 돌아가지 않아도 문제다'라고들 말한다. 잘 돌아가면 자신이 불필요한 사람으로 비칠 테고, 잘 돌아가지 않으면 리더 한 사람에게 과도히 의존하는 위태로운 조직이라는 말이다. 이런 이슈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들이 있다.
한 경영자('헨리 포드'라는 말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부서장에게 예외 없이 2주간 크루즈 여행을 다녀오라고 명령했다. 조건은 단 하나! “편히 쉬고 오라!” 부서장들이 여행에서 돌아왔다. 그런데 그들은 승진한 사람과 해고된 사람으로 나뉘어졌다. 왜였을까? 경영자는 부서장이 없는 부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지켜보았다.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 부서는 리더가 자율적이고 강한 팀을 만들어놓았다는 의미다. 반대로 부서가 혼란에 빠진 곳은 지나치게 리더에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뜻이니 그 리더의 리더십은 실패한 것이다. 누가 승진하고 누가 해고되었는지는 자명하다.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관중(管仲, ?~BC645년)은 제환공(齊桓公)을 춘추오패의 첫 패자로 만든 명재상이다. 그는 춘추시대 제(齊)나라를 부국강병의 길로 이끈 실용주의 개혁가로서, 그의 업적은 공자와 사마천 등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당송팔대가 중의 한 명인 소순(蘇洵)은 ‘관중론(管仲論)’에서 그를 혹독하게 비판하였다. 그가 죽고 나서 간신들이 득세하여 나라가 크게 혼란에 빠졌는데, 그것은 그가 죽기 전에 현명한 후임자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 데에 그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피터 드러커는 “최고의 조직은 리더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조직”이라고 했다. 진정한 리더십은 ‘그의 부재(不在)’에서 드러난다는 말이다. 리더라면 자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조직이 문제없이 기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인력 배치, 권한 위임 및 시스템을 굳건히 해두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관중은 그러고도 어찌하여 그냥 죽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소순의 지적은 현대의 리더들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에 소순의 ‘관중론(管仲論)’의 내용을 일부 의역하여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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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은 제나라 재상으로서 제환공을 뭇 제후들의 패자로 만들었다. 그가 있을 때는 제나라가 부강하여 다른 제후들이 감히 제나라에 거스르지 못하였으나, 그가 죽고 나서 수조(竪刁), 역아(易牙), 개방(開方)과 같은 간신들이 중용되었다. 그 간신들의 난리통에 제환공은 허무하게 죽고, 아들들은 보위를 다투어 그 화가 만연하여, 제간공(簡公)에 이르기까지 나라가 편안했던 적이 없었다.
무릇 공과 화에는 그 연유나 조짐이 있기 마련이다. 제나라가 잘 다스려진 것을 두고, 나는 관중보다는 포숙(鮑叔)의 덕분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제나라에 그 난리가 난 것도, 나는 수조 등 간신들 때문이 아니라 관중 때문이었다고 말하고자 한다.
왜 그런가. 세 간신은 본시 백성과 나라를 어지럽힐 인물이었다. 그들을 임용한 사람은 제환공이지만, 돌이켜보면 제환공이 그 세 사람을 등용하게 만든 자는 사실상 관중이었다 할 것이다. 관중이 병이 났을 때 제환공이 후임 재상에 대해 물었다. 그런 때가 닥치면, 응당 관중이라면 천하의 현자를 천거하였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는 수조 등 세 사람은 인간의 정리가 없으니 가까이하여서는 안 된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아아! 관중은 제환공이 과연 그 세 사람을 쓰지 않으리라 여겼을까? 관중은 제환공의 위인 됨을 잘 알았다. 제환공은 아첨 소리가 귀에 끊이지 않고 눈에는 미색이 끊이지 않도록 하였으니, 그 세 사람이 없으면 그의 욕구를 채워줄 수가 없었다. 제환공은 관중이 지켜보고 있을 때는 그 간신들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관중이 없어지면 간신들은 자기들 세상을 만났다고 기뻐했을 터인데, 관중이 죽음을 앞두고 몇 마디 말을 해주었다고 해서 제환공의 손발을 묶어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제나라로서는 간신 세 사람의 존재가 우환거리가 아니라, 관중이 존재하지 않음이 우환이었던 셈이다. 관중이 있으면 그 세 사람은 그저 필부에 불과할 터였다. 천하에 그런 간신 무리는 널려 있다. 제환공이 다행히 관중의 말을 듣고 그 세 사람을 처형하였다 하자. 그렇더라도 세상에 널려 있는 나머지 수많은 간신은 어찌 미리 헤아려 모두 제거할 수 있겠는가?
아아! 관중은 진정 근본을 모르는 사람이라 해야 할 것이다. 제환공의 물었을 때, 천하의 어진 사람을 천거하여 자신을 대신하게 하였다면, 그가 비록 죽더라도 제나라에 새로운 관중이 존재하게 되는 셈이니, 어찌 그 세 간신을 걱정할 필요가 있으리오. 그러면 간신들을 멀리하라 말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섯 패자(五覇) 중에 제환공과 진문공만큼 번성한 사람은 없다. 진문공의 재능은 제환공을 넘지 못하였고 그의 신하들도 모두 관중에 미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진문공이 죽은 후 제후들은 감히 진(晉)나라에 거스르지 못하였고, 진나라가 진문공의 여세를 이어받아 계속하여 뭇 제후들의 맹주 노릇을 백년 넘게 할 수 있었다. 왜 그런가? 임금은 비록 무능했으나, 그들에겐 여전히 뛰어난 신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환공이 죽고 나서, 제나라는 한 번의 난리에 그 위세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건 의심할 바 없이 오직 관중 한 사람만 믿고 있었는데 그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천하에 일찍이 현자(賢者)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그러니 '천하에 관중 같은 사람을 다시 가지지 못하리라.”라는 말을 나는 믿지 못한다.
위(衛)나라의 대부인 사추(史鰌)와 같은 이는 현인 거백옥(蘧伯玉)을 천거하지 못한 데다 간신 미자하(彌子瑕)를 내치지도 못하였음을 통탄하면서, 그는 자신의 시신까지 이용하여 임금에게 간하였고, 한 고조 유방의 책사인 소하(蕭何) 또한 죽음을 맞아 조참(曹參)을 천거함으로써 자신을 대신하도록 안배하였다. 이와 같이 큰 신하라면 나라를 위해 마음을 쓰는 바가 마땅히 이러하여야 하는 것이다.
한 나라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흥하기도 하고 한 사람으로 인해 망하기도 한다. 현자(賢者)라면 제 죽음을 애달파하기보다 제 죽음 이후 나라가 쇠멸할 것인지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니 반드시 현자를 채워놓은 뒤에야 죽을 수 있는 법이거늘, 저 관중은 어찌하여 그냥 죽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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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thenae.tistory.com/448532
관중론(管仲論) _ 소순(蘇洵)
관중론(管仲論) _ 소순(蘇洵) 관중(管仲)은 제환공(여기서는 '齊威公'이라 부름)의 재상으로서 뭇 제후들의 패자가 되게 하고 오랑캐(夷狄)를 물리쳤다. 그의 평생에는 제나라가 부강하여 제후들
athena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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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92510/episodes/25135024?ucode=L-JCCOyQkB
[리더] 귀하가 없어도 귀 조직은 잘 돌아갈까?
어쩌다 장기간 자리를 비워야 하거나 갑작스런 유고가 발생할 때 오랫동안 직접 관리해온 내 조직은 문제가 없을까? '잘 돌아가도 문제고 잘 돌아가지 않아도 문제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www.podbb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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