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대로, 아는 대로, 타인의 일을 섣불리 판단하지 마라. 섣부른 판단이나 섣부른 단정을 경계하라는 가르침.)
마부와 교수
_ 이태준
하필 그 여학교 문 앞에서였다, 자갈을 실은 두 마차가 그 경사진 길을 올라가다 앞의 말이 쿵하고 나가동그라진 것은.
마부야 으레 하는 순서로 땀 배인 등허리에서 그 말 가죽에 알른달른 닳은 물푸레 채찍을 뽑아 드는 수밖에 없었다.
'이 놈의 말이 그만 죽고 싶은가…….'
암만 죄기어도(때려도) 넘어진 동물은 입에 거품만 뿜을 뿐, 일어서기는 커녕 가로 박힌 눈알이 주인을 바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나중에는 멍에를 부려 놓고도 족치어 보나 매가 떨어질 때마다 네 굽만 움죽움죽하여 보일 뿐, 그 이상 매도 타지 않는다.
마부는 화가 밀짚 벙거지에까지 올려 뻗친 듯 그것을 벗어 내팽개치더니, 길 아래 남의 밭에 가서 울짱(말뚝)을 하나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그래서 다른 마부는 고삐를 낚아채이기, 이 마부는 저도 거의 거품을 물다시피 악을 써 매를 때리기 한창인 때였다. 벌써 하학(하교)들을 하고 돌아가는 것인지 제복의 처녀 한 떼가 우르르 쇠문 안에서 쏟아진다.
"저런, 망측해!" "아구머니나, 불쌍해……." "저런!" "저런!"
선량한 그들의 가슴은 돌발적으로 의분에 떨리었다.
"저런 망할 녀석! 힘에 부쳐 넘어진 걸 왜 자꾸 때리기만 할까……." "저런 무도한 녀석같으니!" "선생님, 저것 좀 말리서요." "선생님 가만두라고 좀 그러서요."
마침 교수 한 분이 나오다가 길도 막혔거니와, 이내 어여쁘고 선량한 제자들에게 둘러싸였다.
교수는 성큼 매질하는 마부 앞으로 나섰다. "여보?" 마부는 소매로 이마를 씻으며 긴치않게 쳐다본다. "왜 그다지 때리오?"
교수는 말의 주인보다 더 가까운 말의 친구이나처럼 꽤 높은 소리로 탄했다. 학생들은 손뼉이라도 칠 뻔 속이 시원하였다.
그러나 마부는 '댁이 웬 걱정이냐?' 싶은 듯이 대꾸도 없이, 다시 매를 드는데는 교수도 말을 말리기보다, 제자들 앞에서 잃어지는 체면을 도로 찾기 위해서도 그냥 있을 수가 없는 듯, 다시 한걸음 나서며 마부를 나무란다.
"글쎄, 여보? 아무리 동물이기로 당신 이익을 위해 저렇게 힘의 착취를 당하고 쓰러진 걸 왜 불쌍히 여길 줄 모르오? 한참 그냥 두어 좀 쉬게 하면 큰일 나오?"
교수의 말투로 보면 자본주 격인 마부는 이번에는 대꾸를 하되,
"이를테면 댁이 나보다 더 이 말을 중히 여겨 하는 말이오?"
하고 을러댄다. 교수도 화가 날밖에.
"그렇소. 동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당신보다 더하오."
학생들은 또 손뼉이라도 칠 뻔, 속이 시원하였다.
"모르면 모르나 보다 하고 어서 가슈, 허……."
이것이 대담하게도 마부의 대답인데는 둘러섰던 다른 사람들도 마부를 괘씸히 던져 보는 한편, 교수의 톡톡한 닦달이 어서 나리기를 기다렸다. 교수는 얼굴이 투지발발하여, "고약한 사람이로군……." 하고 안경 쓴 눈을 으르댄다.
그러나 마부는 의외에 교수의 노염은 타려 하지 않고 오히려 목소리를 낮추어 어린애에게 타이르듯,
"말이란 것은 쓰러졌을 때 이내 일으켜 세우지 못하면 죽고 마는 짐승이오. 그래서 병이 들어 약을 먹이고도 눕지 못하게 허리를 떠 복 고개에 매달아 놓는 것이오, 허허……." 하고 다시 말을 족치기 시작한다.
교수는 그만 땀은 흐르되 입은 얼고 말았다. 모여 섰던 사람들도 모두 저 갈 데로 갔다. 흥분하였던 여학생들도 모두 무슨 운동 시합에서 저희 선수가 지는 것을 보고 돌아서는 듯 하나씩 둘씩 말없이 흩어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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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정보
『마부와 교수』는 이태준이 1933년 잡지 [학등(學燈)]에 처음 발표한 단편소설로, 그의 대표 작품집 『달밤』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짧은 콩트 형식으로, 현실과 이상, 인정(人情)과 실제의 괴리를 교훈적으로 드러낸다.
여학교 앞 경사진 길에서 자갈을 실은 두 마차가 오르다가, 앞의 말이 힘에 겨워 쓰러집니다. 마부는 으레 그렇듯 채찍을 꺼내 말을 때리지만, 말은 일어나지 못하고 거품만 뿜습니다. 마부는 화가 나서 더 세게 말을 때리고, 그 모습을 본 여학생들과 지나가던 교수는 동물을 불쌍히 여기며 마부를 나무란다.
교수는 "동물을 불쌍히 여길 줄 모르냐"며 마부에게 따지지만, 마부는 오히려 "말이란 것은 쓰러졌을 때 이내 일으켜 세우지 못하면 죽고 마는 짐승"이라며, 말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때린 것이라고 설명한다. 교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구경하던 사람들과 학생들도 흩어진다356.
마부는 매우 현실적인 인물로, 생계와 현실의 필요에 따라 행동하지만, 교수는 현실을 잘 모르는 이상주의적 인정주의자로, 겉으로만 동정심을 드러낸 셈이다.
이 작품은 "어설픈 인정(人情)으로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즉, 현실의 고통과 문제는 단순한 동정이나 감상적 태도로 해결되지 않으며, 실제 상황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말이 쓰러졌을 때 즉시 일으켜 세우지 않으면 죽는다는 주장은 과장된 면이 있지만, 실제로 말이 오랜 시간 일어나지 못하면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 말은 건강할 때는 대부분 서서 생활하며, 누워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 말이 스스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오랜 시간 누워 있으면, 체중 때문에 혈액 순환이 방해받아 근육과 장기에 손상이 생길 수 있고, 이로 인해 압박성 궤양, 콜릭(급성 복통), 폐렴 등 2차적인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256.
- 특히 말의 몸무게가 무거워 오랫동안 누워 있으면 혈액이 제대로 돌지 않아 "reperfusion injury(재관류 손상)"가 발생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심각한 건강 문제가 생긴다6.
- 실제로 말이 오랜 시간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회복 가능성이 급격히 낮아지며, 연구에 따르면 24시간 이상 누워 있던 말의 생존율은 매우 낮다23.
- 다만, 말이 잠깐 쓰러지거나 넘어졌을 때 바로 죽는 것은 아니며, 쓰러진 원인(예: 외상, 질병, 피로 등)에 따라 다그다. 하지만 말이 넘어져서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은 매우 위급한 응급상황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다356.
즉, "말이 쓰러졌을 때 즉시 일으켜 세우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은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말이 오랜 시간 누워 있으면 실제로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으므로, 가능한 한 빨리 일으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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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대한민국의 소설가. 소설의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조선의 모파상'이라는 별명도 있으며, 일반적으로 '한국 근대 단편 소설의 완성자'라고 불린다. 문장가로서도 유명하다. '시에는 정지용, 문장에는 태준' 이라 일컬어졌다. 정지용은 그의 '지용문장독본'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남들이 시인 시인 하는 말이 너는 못난이 못난이 하는 소리 같이 좋지 않았다. 나도 산문을 쓰면 쓴다. - 태준만치 쓰면 쓴다고 변명으로 산문 쓰기 연습으로 시험한 것이 책으로 한권은 된다."
이태준은 자신의 저서 <문장강화(講話)>에서 주장한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에 따라 소설을 썼다. 실제 이태준의 소설은 2020년대에 와서 읽어도 누가 따로 설명하지 않는 한 1930년대 소설이라 믿기지 않을만큼 문장과 구성이 현대 소설과 비슷하다. 게다가 이오덕 선생이 군더더기 없는 문장의 전형이라고 칭찬했듯 깔끔한 표현의 정수를 보여주는 문장가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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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에 선의로 참견하여 도와주려 했으나 오히려 낭패를 본 사례는 역사와 현실에서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표적 사례
1. SS 이스트랜드(SS Eastland) 참사
1915년, 미국 시카고에서 SS 이스트랜드라는 여객선이 전복되어 844명이 사망한 대참사가 있었습니다. 이 배에는 타이타닉 참사 이후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추가로 많은 구명보트가 설치됐는데, 이로 인해 배의 무게중심이 높아져 오히려 불안정해졌고, 승선 중에 배가 뒤집히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선의로 안전을 강화한 조치가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불러온 대표적 사례입니다1.
2. 도로 턱(커브) 제거 정책
미국의 한 도시에서는 장애인과 노약자의 이동 편의를 위해 도로의 턱을 없애고 경사로(램프)를 설치했습니다. 이는 휠체어나 목발을 사용하는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으나, 동시에 어린이들이 자전거나 스케이트보드로 도로를 빠르게 질주하는 일이 많아져 교통사고 위험이 크게 증가하는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선의의 정책이 예기치 않은 위험을 초래한 사례입니다5.
3. 조지 워싱턴의 죽음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감염병에 걸렸을 때, 당시로선 표준 치료법이었던 사혈(피를 빼는 치료)을 받았습니다. 의사들은 그의 건강을 회복시키려는 선의로 사혈을 반복했지만, 오히려 그의 상태를 악화시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선의의 의료적 개입이 오히려 해가 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3.
교훈
이러한 사례들은 선의로 남의 일에 개입하거나 도우려 할 때, 그 결과가 반드시 긍정적이지 않을 수 있으며,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의도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실제 상황과 맥락, 예상치 못한 결과까지 신중히 고려해야 함을 시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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