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다스림과 '모름'의 다스림
_ 도덕경 제65장
옛부터 도를 잘 닦은 자는
백성들이 많이 알도록 하지 않고,
오히려 모르게 한다.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이유는 '앎(알아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앎'으로 나라를 다스리면 나라를 그르치게 되니,
'모름'으로 다스리는 것이 나라에 복이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치를 제대로 아는 것이며,
이를 잘 아는 것을 현덕(玄德, 깊은 덕)이라 한다.
현덕(玄德)은 깊고도 심오한 것이어서,
사물에 반하는 듯하지만,
결국 큰 순리에 이르게 된다.
古之善爲道者(고지선위도자) 非以明民(비이영민) 將以愚之(장이우지)
民之難治(민지난치) 以其智多(이기지다)
故以智治國(고이지치국) 國之賊(국지적) 不以智治國(불이지치국) 國之福(국지복)
知此兩者亦稽式(지차양자역계식) 常知稽式(상지계식) 是謂玄德(시위현덕)
玄德深矣遠矣(현덕심의원의) 與物反矣(여물반의) 然後乃至大順(연후내지대순)
* '앎의 다스림'이란 백성들이 알아야 할 것이 많은 정치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며 '알아야 할 것'은 너무도 많다. 생활이나 생존에 필요한 정보, 더나은 삶을 위해 배워야 할 학문과 지식, 사회 생활에 필요한 예의 규범, 법이나 규제 등이다.
이런 필요 지식들이 많고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진다. 우리 현대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너무 과도한 정보와 지식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며 산다. 잠시도 주의를 놓치면 그 홍수에 떠밀려가고 만다.
'앎'의 다스림은 일반적으로 '부정적 동기 부여(Negative Motivation)'의 에너지를 제공한다. 법률이나 계약서에서 조항들이 치밀하면 치밀할수록 그 규정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하는 동기가 부여되는 것을 보면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그런 부정적 동기의 발생은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에게 있어 본능과 같다. 그래서 노자는 법령이 잘 정비되면 될수록 도둑은 더 늘어난다고 하였다(法令滋彰 盜賊多有 _ 도덕경 제57장)
한편 그러한 부정적 동기는 복잡한 법규정을 집행하는 쪽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하니, 가능한한 법의 올가미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법치가 가혹하였던 통일 진나라의 수도 함양에서는 장정의 7할이 얼굴에 경(黥, 범죄인임을 표시하는 문신)을 치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노자는 '앎의 다스림'은 나라를 그르치며, '모름의 다스림'이 나라를 복되게 한다고 가르친다.
'모름의 다스림'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법과 규제가 없어도 세상이 평화롭게 돌아가고, 앎이 적든 많든 골고루 먹고 살 수 있으며, 학문이나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차별없이 존중받으며 사는 그런 세상.
노자는 그런 '모름의 다스림'을 아는 것을 '현덕(玄德)'이라 하고, 그게 뭔가 이치에 맞지 않는 듯하여도 결국 그렇게 하면 하늘의 순리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 '앎'의 속성은 매사를 분별하는 데 있다.
* '앎'은 더하는 것이요, '모름'은 덜어내는 것이다.
도덕경은 이미, "배움은 날마다 더하는 것이요, 도를 행함은 날마다 버리는 것이다"(爲學日益 爲道日損, 도덕경 제48장)라고 가르쳤다.
'앎' 혹은 '배움'은 더하는 것이니 화려하고 복잡하다. '모름' 혹은 '도'는 덜거나 버리는 것이니 단순함을 추구한다.
궁극의 세련된 정치도 '모름'의 경지에 이른 '단순함'에 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단순함은 궁극의 세련미'라고 하였다.
* 약법삼장(約法三章)
'앎의 다스림'의 대표적인 사례는 진시황의 진나라이다. 진나라는 상앙과 이사로 이어지는 법가들에 의해 거미줄처럼 촘촘히 짜여진 가혹한 법치의 도움으로 나라는 강해졌고 그 힘으로 결국 중국을 통일하였다.
그러나 그 가혹한 법치의 학정을 견디지 못해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 통일된 지 겨우 15년만에 진나라는 멸망하고 만다.
진의 멸망을 주도한 한 고조 유방은 진의 수도인 함양에 처음으로 입성하여 가장 먼저 약법삼장(約法三章)을 공표하였다. 약법삼장은 진의 가혹한 법치에 시달렸던 사람들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으로서,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간단하다.
"내가 관중의 왕을 맡게 되어
어르신들과 함께 약조하니,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남을 다치게 하거나 도둑질한 자에게는 사안에 따라 처벌하며,
나머지 진나라 법은 모두 폐지한다."
(吾當王關中 與父老約 法三章耳 殺人者死
傷人及盜抵罪 餘悉除去秦法)
극도로 단순화시킨 궁극의 '모름의 다스림'이라 할 것이다. 그 후 항우를 물리치고 개국한 한나라는 법률를 대폭 완하하여 덕치주의를 표방함으로써 400년이 넘는 긴 번영을 누렸다.
* 특허의 권리는 '모름의 다스림'이어야 한다.
특허의 힘은 청구범위에 기재된 언어에 의해 정해진다. 원칙적으로 특허 침해는 청구범위의 기재 언어 모두를 그대로 사용할 때 성립한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청구범위의 기재가 많으면 많을수록 침해의 기회는 줄어들고, 기재가 적을 수록 권리는 더욱 넓고 강해지는 것이 특허의 법리이다.
미숙한 변리사는 '앎'의 청구범위를 작성한다. 자신이 알게된 발명의 기술을 최대한 잘 기재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면 기재된 내용은 많아지고, 권리는 좁아진다.
그리고 하수는 발명의 실시예들에 대해서도 너무 구체적으로 기재하여 경쟁자들의 모방을 도와준다. 비교적 간단한 발명임에도 수십장의 명세서에 수많은 설계 도면까지 동원하여 기술을 만방에 공표한다.
그러나 고수 변리사는 '모름'의 청구범위를 작성한다. 발명의 사상만을 취하고 가능한한 기재되는 언어를 줄여 명료하고 간결하게 작성한다. 그래야만 그 기재가 단순하면서 넓고도 강력한 권리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고수는 특허를 받아 모방을 방지하기에 적절한 정도로만 발명을 개시한다. 발명자가 가진 세부적인 노하우나 미묘한 현장의 정보는 가능한한 기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발명자의 숨은 기술을 보호하는 것이다.
[특허 도덕경 제65장]
특허의 도를 잘 닦은 자는
남들이 발명의 내용을 많이 알도록 하지 않고,
오히려 모르게 한다.
특허 침해를 배제하기 어려운 것은 '기재'가 너무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많이 기재하여 특허를 받으면 권리를 그르치게 되고,
최소한으로 기재하여야만 권리는 강하게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특허의 법리를 제대로 아는 것이며,
이를 잘 알고 실행할 수 있으면 현통(玄通)하다 할 수 있다.
현통함은 깊고도 심오한 것이어서,
체득하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지만,
결국 도달하지 않을 수 없는 경지이다.
[최소의 언어로 기재된 특허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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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컴의 면도날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이라는 것이 있다. 여러 가설(hypothesis)이 있을 때에는 가정(assumption)의 개수가 가장 적은 가설을 채택해야 하기 때문에 논리적이지 않은 것을 사유의 면도날로 다 잘라내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오컴의 면도날은 절약의 원리, 경제성의 원리, 간결함의 원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말을 한 것으로 알려진 오컴은 중세 말기인 14세기에 프란체스코회의 수사이자 스콜라 철학자로, 논리학자인 윌리엄 오컴(William of Ockham, 1285~1349)이다. 영국 런던 근교인 서레이(Surrey) 지역의 오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오컴 윌리엄이라 불리는데 이는 피렌체 근교의 빈치(Vinci)에서 태어난 레오나르도를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런데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말은 오컴 자신이 붙인 것이 아니라 훨씬 나중인 1852년에 윌리엄 해밀턴(Sir William Hamilton)이 붙인 표현이다.
이러한 오컴의 면도날 발상은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혁명을 낳았다. 과거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행성의 운행을 설명하기는 했지만 상당히 복잡했다. 그런데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가 계산해보니 태양이 정지해 있고 지구가 돈다고 가정하면 행성의 운행을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로 인해 단순한 가정으로 현상을 설명하는 지동설이 맞고 복잡한 가정이 많은 천동설이 틀리다는 것이 입증됐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풀기 어려운 문제'를 뜻하며, 고르디우스 매듭을 푸는 행위는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BC 800년 전 고대 국가인 프리기아의 왕 고르디우스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설화에 따르면 고르디우스는 자신의 마차를 제우스 신전에 봉안한 뒤 복잡한 매듭으로 묶어둔다. 그리고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의 왕이 되리라는 신탁을 남기게 된다. 이에 매듭을 풀기 위해 수많은 영웅들이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수백 년이 흘러 프리지아 원정에 나선 알렉산더(Alexander) 대왕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제우스 신전을 찾아가게 된다. 알렉산더 대왕은 수많은 시도에도 매듭이 풀리지 않자, 칼로 매듭을 잘라 버렸고 이후 실제로 아시아를 정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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