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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칼럼29

[경남시론] 삐치지 말자 삐치지 말자 아내가 삐쳤다. 갈 길은 먼데 뾰로통하니 입과 눈을 닫고 인상만 쓴 채 옆 자리에 있다. 삐친 이유야 내가 제공하긴 했지만 대화가 막히니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갑갑함에 슬슬 화가 치밀어 이제는 내가 입을 닫고 더 삐친다. 내 삐침은 좀 오래 간다. 냉랭함이 길어지면 그제야 아내가 슬그머니 달래려 들지만 나는 더욱 뻗댄다. 그렇게 소모적으로 삐치고 화내고 질질 끌다 마지못해 풀리고 그러는 게 우리 부부의 삐침 공식이다.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다. 삐친 아내보다 삐친 나 스스로를 다루기가 훨씬 더 힘들다. 한 작은 모임에서 친구가 회장을 맡게 되었다. 그는 취임 인사에서 회원들에게 딱 한 가지만 부탁한다며 한 말이 '삐치지 말자'였다. 듣는 순간에는 다들 크게 웃고 넘어갔지만, 그 말은 오랫동안.. 2021. 10. 10.
[허성원 변리사 칼럼] #45 백래시, 시대 변화의 행진곡 백래시, 시대 변화의 행진곡 걸음이 불편한 노인이 앞서 걷고 있다. 길 폭이 어중간하여 지나치지 않고 뒤따라 천천히 걷는데, 한 젊은이가 나를 툭 치며 빠르게 지나쳐 가서는 노인도 스치며 지나간다. 그때 노인이 적잖이 휘청이다 겨우 바로 선다. 젊음에 추월당하며 위태롭게 흔들리는 기성세대의 모습, 이 사회의 백래시 현상을 연상케 한다. '백래시(backlash)'는 기계 전문가들에게 매우 익숙한 용어다. 기어와 같이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기계요소는 운동을 전달하기 위해 구동측과 피동측이 서로 접촉하는 곳이 있다. 그 접촉점의 반대편에는 약간의 여유 틈새가 반드시 존재한다. 그런 틈새가 없으면 양측이 서로 꽉 끼여 움직일 수 없다. 양측의 상대적인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그 틈새가 바로 '백래시'다. 구동.. 2021. 9. 25.
[경남시론] 계약, 그 장미와 가시 계약, 그 장미와 가시 미국 볼티모어 야구단의 크리스 데이비스 선수가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한때 아메리칸 리그의 홈런왕으로서 2016년에 볼티모어와 7년에 약 1900억 원의 잭팟 계약을 했었다. 그런 그가 겨우 두 시즌 반짝 뛰고 나서 부상과 수술로 지지부진하다 결국 중도 은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는 계약이 끝난 후에도 15년간 매년 40억 원 내지 16억 원의 거액 연봉을 꼬박꼬박 받게 된다. 계약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먹튀 논란은 있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편히 넉넉한 수입을 보장받으니 기가 막힌 보험을 든 셈이다. 그러나 구단 입장은 모르긴 해도 보통 속 쓰린 일이 아닐 것이다. 아마 그 내부에서는 자신들이 어떤 멍청한 짓을 했는지 따지며 통렬히 반성하고 있을지 모른다. 유사한 .. 2021. 8. 14.
[경남시론] ‘벼리’를 놓치지 마라 ‘벼리’를 놓치지 마라 제문(祭文)이나 축문(祝文)은 항상 ‘벼리 維(유)’ 자로부터 시작한다. 이 글자를 무수히 쓰고 들었지만 그 뜻이나 쓰인 연유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그러다 돌연 궁금하여 사전을 찾아보았다. ‘維’의 훈인 ‘벼리’는 '그물의 위쪽 코를 꿰어 놓은 줄. 잡아당겨 그물을 오므렸다 폈다 한다'라 설명되어 있다. 그물을 조작하는 밧줄이라는 말이다. 오므렸다 폈다 한다고 하니 아마도 당초에는 투망 형태의 그물에 쓰였던 모양이다. 그 뜻을 알고 보니 '벼리 유(維)' 자가 축문 등의 발어사(發語辭)로 쓰이게 된 연유를 대충 짐작할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인 '벼리'를 통해 제관의 정성을 축문으로 전하여, 인간과 귀신을 영적으로 잇게 하려는 정성스런 뜻이라 상정해볼 수 있겠다. 그.. 2021.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