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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아버지24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_ 중2병 * 2014년 오늘 페북에 올렸던 글 * 달리 공포의 중2가 아니다. 이 녀석들이 무서워서 북이 도발을 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더니.. 중2 아들놈이 어제 저녁 제 엄마와 머리를 깍고 들어왔다. 좀 시원하게 깍고 왔는데.. 내 아들이지만 훤하게 잘 생겼다. 소지섭이는 저리 가라다. 그 동안 온통 덥수룩하니 덮은데다 이마까지 가리고 다니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얼굴을 좀 드러내 놓으니 속이 시원하다. 그런데 이 녀석은 영 불만인 모양이다. 볼멘 얼굴이 불퉁하다. 지 나름대로 화장실에서 어떻게 손을 보고(?) 왔는 데도 영 아닌가 보다. 지 엄마에게 푸념을 해댄다. 오늘 가지 말자고 했더니.. 엄마가 깔끔하게 해달라고 주문을 해서 그런다는 둥.. 엄마는 엄마대로 억울해서 소리 높여 대꾸를 하고.. 바.. 2019. 3. 24.
제사의 이관과 증조할아버지의 필갑 제사의 이관과 증조할아버지의 필갑 ** 2016년(병신년)에 모든 제사를 서울로 이관했다. 이관을 고하는 절차는 설날 차례를 지내면서 간략히 그 취지를 언급한 축문을 독축하는 것으로 이행되었다. 그렇게 해서 장남으로써의 유기된 직무를 드디어 넘겨가져가게 된 것이다. 그동안 근 20년 가까이를 동생 부부가 부모님을 모시면서 제사를 맡아왔다. 제수씨의 수고를 더는 만큼 우리 부부의 심적 부담도 많이 가벼워졌다. 지차 입장에서 어른들 수발하며 4대 봉제사에 정성을 다하며 사는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제수씨의 후덕한 마음 씀씀이와 그동안의 노고는 내 평생의 고마운 마음의 빚이 될 것이다. 제사를 이관하고 나니 매 기일마다 아버지는 서울 나들이를 하셔야 했다. 동생 가족은 아무래도 업이 있으니 부득이 윗대 .. 2019. 2. 23.
아버지의 컴퓨터 아버지의 컴퓨터** 아버지는 제사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서울로 올라오셔서 제사에 참례하신다. 그렇게 참례하시고 나서 올라 오신 김에 며칠 머물다 가시면 좋을텐데, 아무래도 서울 집이 편치 않으신지 대체로 파제 날에 바로 내려가신다. 하지만 여름에 사흘 간격을 두고 있는 제사 때에는 부득이 며칠을 지내ㅅ히게 된다. 작년에 그 제사 때 올라 오시는 데 모시러 갔더니 가져오신 여행용 가방이 평소보다 묵직하다. 보통 거의 빈 가방을 가지고 오셔서, 그 가방에 참례하지 못한 동생 식구들이 음복할 수 있도록 제사 음식을 담아 가져가신다. 이 묵직한 게 뭔지 궁금하다.- 뭐가 들었는데 이렇게 무겁습니꺼?"컴퓨터다"- 컴퓨터를 뭣하러 가져오셨습니꺼? 여기도 좋은 거 있는데예."그걸로는 주식거래 못한다. 이걸로만 된다... 2018. 12. 21.
모호함의 미학 모호함의 미학 .. 내가 변리사로서 첫 실무를 시작했던 그 사무소의 대표 변리사는 군산 출신이셨다. 그 지방 출신답게 불특정 대명사인 '거시기'라는 말을 자주 쓰셨다. 가끔 내 자리에 어슬렁어슬렁 오셔서는 뜬금없이, '허변, 거시기 그거.. 거시기 하고 있는가?'라고 물으셨다. 처음에는 질문하시는 진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어느 사건 말씀인가요?'라고 되묻기도 하고, 어떤 땐 최근에 함께 협의하였던 사건에 대해 물어보시는 거라 여기고 그 사건의 진행 상황에 대해 상세히 보고드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좀 지나고 보니 그 질문에는 별 뜻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저 '별 일 없지?' 혹은 '열심히 하고 있는가?' 정도의 인사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좀 익숙해진 후에는 대화가 매우 순조로워졌다."허변,.. 2018. 1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