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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세상살이/열하일기

연암 박지원의 세 도적 이야기 _ 열하일기 황금대기(黃金臺記)

by 변리사 허성원 2021. 2. 28.

연암 박지원의 세 도적 이야기

열하일기(熱河日記) 黃圖紀略(황도기략) 편 황금대기(黃金臺記) 중

 

옛날 세 도적이 있었다.
이들은 함께 무덤을 도굴하고 서로 말하기를,
오늘 피로하고 많은 황금이 생겼으니 술을 마시자고 하였다.
한 놈이 기꺼이 술을 사러 갔다. 그는 길을 가며 스스로 기뻐하면서,
'하늘이 내려준 기회로다. 셋이 나누는 것보다 홀로 독차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라고 하며, 음식에 독을 넣었다.
그런데 그가 돌아오자 두 놈이 다짜고짜 일어나 그를 죽여버렸다.
두 놈은 술을 나눠 먹었다.
그러고 나서 황금을 나누려고 했었지만,
이내 무덤 곁에서 함께 죽고 말았다.

슬픈 일이다.
그 금은 길가를 굴러다니다가, 필시 누군가가 주워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을 습득한 사람도 말없이 하늘에 감사하겠지만,
그 금이 무덤 속에서 나온 것으로서,
독약을 먹은 자가 남긴 것이며,
앞뒤 사람들을 거치면서 몇 천, 몇 백명을 독으로 죽일지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금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왜 그럴까?

주역에서 말하기를,
두 사람이 한 마음을 가지면 그 예리함(利)이 쇠도 자른다고 하였다
(二人同心, 其利斷金). 
이 말은 필시 도적들에게서 나온 말인 듯하다. 
자른다는 것은 나누는 것이다.
그 나누는 것이 금(金)이라면, '한 마음'이란 것은 이로움(利)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의로움에 대해 말하지 않고 이로움을 말하고 있으니,
그것은 의롭지 않은 재물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도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금을 가졌다고 해서 기뻐하지 말고,
없다고 하여 슬퍼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 이유없이 갑자기 눈앞에 재물이 나타나면
천둥을 맞은 것처럼 두려워하고
귀신을 만난 것처럼 조심하고
풀섶에서 나온 뱀을 만난 것처럼 하여
머리털이 곤두선 듯 뒤로 물러설 일이다.

"..昔有三盜 共發一塚 相謂曰 今日憊矣 得金多 盍沽酒食來 一人欣然而去 沿道自賀曰 天假之便也 與其三分 寧專之 鴆其食而還 二盜突起格殺之 先飽酒食 將兩分之 旣而俱死塚旁
嗟乎 是金也必將宛轉于道左 而必將有人拾而得之也 其拾而得之者 亦必將默謝于天 而殊不識是金者 乃塚中之發而鴆毒之餘 而由前由後 又未知毒殺幾千百人 然而天下之人 無有不愛金者 何也
易曰 二人同心 其利斷金 此必盜賊之繇也 何以知其然也 斷者 分也 所分者金則其同心之利 可知矣 不言義而曰利 則其不義之財 可知矣 此非盜賊而何
我願天下之人 有之不必喜 無之不必悲 無故而忽然至前 驚若雷霆 嚴若鬼神 行遇草蛇 未有不髮竦而卻立者也
_ 열하일기(熱河日記) 제24권 黃圖紀略(황도기략) 편 황금대기(黃金臺記) 중

 

** 
연암 박지원의 위트가 잘 드러나는 문장이다.

'其利斷金(기리단금)'은 원래 절친한 친구 사이의 우정을 의미한다.
주역의 '두 사람이 한 마음이면 그 예리함이 쇠도 끊을 수 있다(二人同心, 其利斷金)'에서 따온 것이다.

연암은 이 말을 재치있게 비틀었다.
'金'(금)은 쇠와 황금을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利'(리)는 예리함과 이로움의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 주목하여,
'其利斷金(기리단금)'을
'두 사람이 한 마음이 되면 그 이로움이 황금을 나눈다'로 짓궂게 풀이한 것이다.

**
연암이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우리가 갖거나 갖고자 추구하는 모든 재물은
무덤에 들어간 어느 죽은 사람의 소유였던 것으로서,
친구 사이에서도 서로 죽고죽이는 이유가 되는 것이며,
이후에도 수많은 죽음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니,
이유 없는 재물을 만나면,
벼락을 맞은 듯, 귀신을 본 듯, 풀섶에서 뱀을 만난 듯 피하라는 가르침이다.

**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은 후기의 실학자, 문학가, 소설가.
열하일기
(熱河日記), 양반적(兩班傳), 허생선(許生傳) 등의 풍자 소설을 집필.

 

**
공자가 자상호(子桑雽)에게 물었다. 
"나는 노나라에서 두 번 쫒겨났고, 송나라에서 나무를 베었고, 위나라에서 흔적을 없앴고, 상나라와 주나라에서는 배를 곯았고, 진나라와 채나라에서는 갖히는 일을 당했소. 그러는 동안 친한 사람들과 멀어지고 제자와 벗들도 흗어졌소. 어찌된 일이오?"

자상호가 말했다.
"선생께서는 가(假)나라 사람의 도망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습니까? 임회(林回)라는 사람은 천금 가치의 옥을 버리고 아기를 업고 달아났습니다. 누가 물었습니다. '값어치로 따져도 아기의 값이 덜 나가고, 짐으로도 아기가 더 짐스러웠을 텐데, 천금 짜리 옥을 버리고 아기를 업고 달아난 것은 무엇 때문이오?' 임회가 답했습니다. '옥은 이익으로 만난 것이고, 아기는 하늘이 맺어준 것이오.' 이익으로 만난 사람은 위급하고 힘든 일을 당하면 서로 버리지만, 하늘이 맺어준 사람은 어렵고 위급하면 서로 거두어줍니다. 서로 거두어주는 것과 서로 버리는 것은 크게 다르지요. 그리고 군자의 사귐은 맹물과 같이 담백하고, 소인의 사귐은 단술처럼 달콤합니다. 군자는 담백하기에 가까워지고, 소인은 달콤하기에 곧 끊어집니다. 그들은 까닭없이 만났기에 까닭없이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공자는 '가르침을 잘 받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천천히 돌아와서는 학문을 멈추고 책을 버렸다. 제자들은 그 앞에서 예를 다하지 않았지만 애정은 더 두터워졌다.

孔子問子桑雽曰:「吾再逐於魯,伐樹於宋,削迹於衞,窮於商周,圍於陳蔡之間。吾犯此數患,親交益疏,徙友益散,何與?」 子桑雽曰:「子獨不聞假人之亡與?林回棄千金之璧,負赤子而趨。或曰:『為其布與?赤子之布寡矣;為其累與?赤子之累多矣;棄千金之璧,負赤子而趨,何也?』林回曰:『彼以利合,此以天屬也。』夫以利合者,迫窮禍患害相棄也;以天屬者,迫窮禍患害相收也。夫相收之與相棄亦遠矣,且君子之交淡若水,小人之交甘若醴;君子淡以親,小人甘以絕。彼无故以合者,則无故以離。」 孔子曰:「敬聞命矣!」徐行翔佯而歸,絕學捐書,弟子无挹於前,其愛益加進。 _  莊子 '山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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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지도층 자제의 부모 찬스를 통한 스펙 쌓기 뉴스는 이제 새로운 뉴스거리도 아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처럼 잊을 만하면 들려온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4월 말에 진행되었던 새 정부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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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은 한양의 이름 높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글 솜씨가 좋았다. 조선은 알다시피 문(文)을 숭상하던 나라였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날개를 가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얼마나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지,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그와 가까워지려고 애썼다. 그의 특별한 글재주는 왕과 고위 벼슬아치에게도 알려졌다. 그들은 언젠가 박지원도 벼슬을 얻어 함께 할 날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박지원은 출세에 별 관심이 없었다. 집안 어른의 성화에 서른세 살에 처음 과거시험을 보았고 1차 시험에 1등을 했다. 영조 임금이 그를 불러 직접 격려하기까지 했지만, 두 번째 시험에서 백지를 내고 나왔다고 한다. 영조 임금이 다시 한 번 기회를 줬는데, 이번엔 종이에 그림을 그려 냈다고 한다. 그는 후에 과거를 다시 보긴 했지만 낙방한 후 과거 시험은 접고 학문 연구에 매진했다. 그의 학식과 문장력으로 인해 정조 시절에 수없이 관직에 추천됐지만, 번번이 사양하다가 나이 50세가 돼서야 처음 관직에 올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