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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

마르시아스 예찬 (1/2)

by 변리사 허성원 2021. 4. 13.

마르시아스 예찬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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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포스 신들의 연회가 있었다. 풍부히 차려진 연회장이었지만,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한 가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음악이었다. 아테나는 그녀 특유의 지혜와 창의력을 발휘하여 연회를 더욱 즐겁게 하고 싶었다. 둘러보니 식탁에 먹고 버려진 사슴의 넙적다리 뼈를 발견하였다. 잠깐 생각한 후 속을 파내고 보니 멋진 피리가 하나 만들어졌다. 

그러고 나자, 문득 메두사가 을 때 들었던 아름다운 고음의 음율이 생각났다. 괴물 고르곤의 세 자매 중 하나인 메두사가 페르세우스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때, 고르곤 자매들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가슴으로 토해내는 통곡의 고음 소리는 무척이나 슬펐지만 그래서 너무도 아름다웠었다. 아테나는 그 아름다운 소리를 재현해보기 위해 고음용 피리를 하나 더 만들었다. 그러고는 두 개의 피리를 한 사람이 동시에 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그것들을 더블 리드로 결합하여 보았다. 그 더블 리드을 입에 넣고 불어보니, 고음과 저음의 두 피리가 서로 화음을 맞추어 지극히 아름다운 음율을 내었다. 크게 만족한 아테나는 그것을 아울로스(Aulos)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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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는 그 아울로스를 연회에 모인 신들 앞에서 불었다. 아름다운 피리소리는 모든 신들을 감동시키고 연회의 즐거움을 더하였다. 그런데 유독 헤라와 아프로디테는 그녀의 연주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이었다. 서로 미모를 다투는 경쟁자인 여신들이 자신을 보고 웃는 이유가 너무도 궁금하였다. 그래서 아테나는 개울물에 자신의 연주하는 모습을 비춰보았다. 아울로스를 부는 동안 더블리드가 입안에 들어가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볼이 부풀어올랐고, 그 때문에 자신의 얼굴이 보기싫게 일그러졌다. 그것이 다른 여신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아테나는 화가났다.
그래서 그녀
는 아울로스를 인간 세계인 지상으로 던져버렸다. 그러면서 경고를 덧붙였다. 

'누구든지 이 아울로스를 가져가 부는 자는
끔찍한 저주의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아울로스를 연주하는 아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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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으로 버려진 아울로스는 마침 그곳을 지나던 마르시아스(Marsyas)의 눈에 띄었다. 마르시아스는 사티로스(Satyros)의 일종이다. 사티로스는 반인반수(상체는 인간 하체는 염소)의 모습을 한 숲의 정령으로서, 인간과 동물의 본능을 동시에 지닌 존재이다, 그래서 이성보다는 감성에 밝고 절제보다는 쾌락을 따랐기에, 술과 여자, 춤과 노래 등이 항상 함께 하는 디오니소스 신을 따라 다녔다.

아울로스를 손에 쥔 마르시아스는 그것이 피리의 일종임을 알고 입에 물고 소리를 내보았다. 그는 단번에 그 조화로운 음율에 매료되었고 그것으로 자신만의 음율을 만들어내었다.
고귀한 여신의 발명품으로서 천상의 신들에게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었던 아울로스가 천박한 동물적 본능을 가진 사티로스인 마르시아스의 손에 들려 이제는 그의 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아테나가 버린 아울로스를 줍는 마르시아스>

 

아울로스의 매력에 흠뻑 빠진 마르시아스는 음악에 대한 태생적 재능을 발휘하여 밤낮으로 연습하였다. 마르시아스의 감성적 본능과 결합된 아울로스의 신비한 음률은 특히 짐승들의 영혼을 홀려서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그림 형제의 동화 '피리부는 사나이'에 나오는 마술피리는 이 마르시아스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취월장으로 숙련된 마르시아스의 아울로스 연주실력은 널리 명성을 얻게 되고 이윽고 천상의 신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마르시아스의 아울로스 연주에 홀려모여든 토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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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아울로스 연주 실력에 대한 마르시아스의 자부심은 자신감을 넘어 오만(Hubris)의 경지에 이른다.
그는 음악의 신인 아풀론에게 감히 도전하기로 한다. 아폴론은 그의 교만을 응징하기 위해 도전을 받아들였다. 아폴론이 사용하는 악기는 헤르메스로부터 얻은 '리라'라는 현악기였기에, 관악기와 현안기 사이의 치열한 연주 승부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승부가 가려지면 패자는 승자의 처분에 따르기로 하였다.

이런 승부에는 심판이 필요하다. 심판으로는 프리기아의 왕 마이다스(Midas)가 선정되었다. 
마이다스는 손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가, 그로 인해 심대한 어려움을 겪고 자신의 탐욕을 깊이 뉘우친 후, 겨우 원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그 신화의 왕이다.
마이다스에게 황금의 능력을 부여하였다가 다시 원상복구시켜준 신은 디오니소스이다.

마이다스는 심판의 입장에서 양쪽의 음악을 골고루 들어보았지만, 아폴론과 마르시아스 중 누가 우월한지를 가리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래서 제대로 판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마이다스는 아폴론의 미움을 샀다. 아폴론은 마이다스가 음악을 좀 더 잘 들을 수 있게 해주겠다며 그의 귀를 잡아당겨 당나귀 귀로 만들어버렸다.
그로 인해 마이다스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동화에서도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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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처럼 연주 시합은 명쾌한 승부를 내지 못했다. 양쪽의 연주가 어금버금한 상황을 거듭하자, 최종적으로 한판의 연주로 승부를 가리기로 하였다. 이 때 아폴론이 다소 억지스런 제안을 하였다. 각자의 악기를 거꾸로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자고 한 것이다. 마르시아스는 그 말이 터무니없기는 하지만, 자신과는 비할 바 없이 강한 올림포스 주신 중 하나인 아폴론의 말이었기에 그 제안을 거부하지 못한다. 

결과는 마르시아스의 명백한 패배였다. 리라는 현악기이기에 거꾸로 잡고 연주하여 노래를 부를 수 있지만, 피리는 거꾸로 불기 자체가 불가능하고, 거기다 입으로 불어야 하기에 노래는 더더욱 부를 수 없다. 패배한 마르시아스는 아폴론의 처분을 기다렸다.

 

<아폴론과 마르시아스의 연주 경쟁. 심판은 마이다스 왕. by Palma il Giov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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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이 내린 형벌은 너무도 가혹했다. 마르시아스를 나무에 묶어두고 산채로 살가죽을 벗기도록 한 것이다. 감히 인간의 가죽을 쓰고 신의 음율을 흉내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마르시아스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한껏 비명을 질렀고, 그의 가족과 동료 사티로스들은 그 고통을 공감하면서 함께 아픔의 눈물을 흘렸다. 

마르시아스가 흘린 피와 동료들이 흘린 눈물은 강을 이루었다.
그 강은 마르시아스의 이름을 따서 마르시아스 강이라 불리웠다. 마르시아스 강은 대지를 흐르면서 널리 많은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수많은 인간의 삶을 이롭게 하였다.
단지 땅을 비옥하게 한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교만을 경계하게 하여 겸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의 거울이 되었다.
(2/2편으로 이어집니다)

<가죽을 벗기는 형벌을 받는 마르시아스>

Marsyas Flayed by the Order of Apollo (Charles André van Loo, ca. 1734-1735, oil on canvas)

<Giulio Carpioni (1613-1678)>

Apollo flaying Marsyas (Luca Giordano, 17th century, oil on canvas))

Apollo flaying Marsyas (Luca Giordano, 17th century, oil on canvas))

 

The Flaying of Marsyas (Titian, ca.1570-76, oil on canvas)

<나무에 묶인 마르시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