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시론] 결국 그 벽을 넘는 담쟁이 _ 벽은 곧 문이다
결국 그 벽을 넘는 담쟁이 _ 벽은 곧 문이다
"이게 너무 오랫동안 닫혀 있어서, 벽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 문이다." 영화 <설국열차>에 나오는 대사다. 벽은 그것이 무너지거나 열리면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결국 벽이 문이 되어주는 셈이다.
창업자들을 멘토링하거나 스타트업 심사를 가면 진입장벽이라는 말을 종종 하거나 듣게 된다.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려는 자들은 그들의 나아감에 저항하며 방해하는 높고 낮은 장벽을 불가피하게 만나게 된다. 그것은 기득권자의 기술이나 특허일 수도 있고, 자신이 가진 자금과 인력일 수도 있다. 혹은 경쟁업체 상황이나 마케팅 환경 혹은 제도적인 규제 등일 수도 있다. 비즈니스를 불편하게 하는 부정적인 이슈이기에, 대개의 스타트업은 가급적이면 진입장벽이 낮고 수월한 쪽에서 기회를 찾으려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들 앞의 비즈니스 진입장벽이 높고 강력하며, 그러기에 자신들에게 강한 기회가 된다고 역설하는 창업자들을 가끔 본다. 이유를 들어보면 설득력이 있다. 높고 강한 장벽은 소수만이 혹은 자신들만이 넘을 수 있고, 그 장벽을 넘기만 하면 시장의 지배력이나 배분을 크게 가져갈 수 있기에, 진정한 비즈니스 매력이 있다는 말이다. 장벽이 낮으면 경쟁자들이 쉽게 달려들어 금세 이전투구의 장이 될 것이니, 그럴듯하다. 그러고 보면, 강한 핵심역량과 열정을 가진 이들에게 있어, 장벽은 그들의 잠재력을 입증해주는 동시에, 경쟁자들을 걸러주는 강력한 우군이 되어주는 셈이다.
장벽은 원래 그것을 만든 자들을 위한 보호벽이다. 장벽은 기득권자의 두려움이 드러낸 다른 모습이다. 지켜야할 귀중한 가치가 있고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자가 장벽을 쌓는다. 그런데 외부의 공격을 막는 장벽은 결국은 스스로를 가둔다. 장벽 속의 안전은 안락하고 지루하다. 그곳에 안주하면 스스로 변화하여 뛰쳐나갈 용기와 힘이 거세되고, 내적 갈등으로 인해 쉬이 부패된다.
그래서 역사가 웅변으로 말해주듯이 모든 장벽은 끝내는 무너지게 되는 운명이다. 콘크리트로 된 베를린 장벽도 무너졌고, 그 만리장성도 변방 민족을 막지 못해 원과 청에 의해 중원을 지배 받았다. 그래서 돌궐의 장수 톤유쿠크는 말했다.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내는 자 흥한다.'
사실 스타트업이란 것은 남의 장벽을 넘거나 무너뜨려 새로운 길 혹은 더 큰 길을 내는 일을 감히 저지르는 행동이다. 그 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그렇게 하여 세상이 변화시킨다. 그 길은 대부분 높은 장벽을 뚫거나 넘어야 하는 험한 도전과 고달픈 여정의 결과다. 그래서 장벽은 그를 넘으려 도전하는 스타트업의 역량과 열정을 확인하고, 부실한 것을 차단하여 걸러내는 필터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랜디 포시(Randy Pausch) 교수는 그의 마지막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벽은 나름의 존재이유가 있다. 장벽은 우리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 지를 확인하여 기회를 주기 위해 존재한다. 장벽은 간절히 원하지 않는 사람을 막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막아주기 위해 거기 있다."
랜디 포시 교수에게 있어 장벽은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위해 경쟁자를 막아주는 이로움으로 전환된다. 바로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이환위리(以患爲利)의 전술이다. 자신에게 닥친 재앙, 장애의 불리함을 자신의 이로움으로 전환하라는 가르침이다. 소극적으로 운명에 따르는 전화위복(轉禍爲福)과 달리, 이환위리는 주어진 불리함을 전략적으로 자신의 프레임으로 재구성하여, 스스로의 역량과 열정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는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대응이다. 동시에 상황에 쉬이 굴복하지 않겠다는 불굴의 의지이기도 하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이 시는 '담쟁이'라는 도종환의 시이다. 스타트업은 다들 넘을 수 없다고 한 그 벽을 결국 넘고 마는 담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