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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와 제사', 이제 변해야 한다.

변리사 허성원 2018. 9. 26. 12:52

'차례와 제사', 이제 변해야 한다.

 

- 이번 추석을 쇠면서 차례와 제사가 대폭적으로 간소화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당장 적용하기 힘들 수는 있겠지만, 반드시 점진적으로라도 변화가 필요하다.

- 종가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뭐니 해도 '봉제사(奉祭祀)'이다. 우리집은 대종손은 아니지만 그래도 할아버지 대에서부터 꽉채운 4대 봉제사를 지켜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2010년)에는 사실상 5대로 늘었고, 할머니 한 분의 제사를 작은집으로 덜어갔는 데도 총 11위가 된다. 그러니 현재 기제사 11번과 명절 차례 2번이 집안의 가장 중요하고 큰 행사이다.

아버지는 조상을 모시는 산소 돌보기와 제사의 의무에 대해 매우 완고하시다. 그래서 지금껏 몇 번 운을 뗐다가 호되게 당하고 나서는 제사 간소화에 대해서는 아예 금기시하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생각은 깊이 해두어야겠다.

- 제사를 분당의 내게로 옮긴지 3년째다. 그 동안 고향 김해에서 동생이 부모님을 모시며 제사와 명절 차례를 지내왔다. 제수씨가 근 20년을 군말없이 어른 수발과 봉제사를 해온 데 대해 나는 장손으로서 무한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평생 어깨에 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언제나 죄스런 마음으로 가급적이면 빠짐없이 참석하고 아내가 음식을 분당에서 해서 갖다 나르기까지도 하면서 나름으로 노력했지만, 그건 제수씨와 동생이 감내해야 하는 정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제사를 옮기니 그런 심적 부담을 덜 수 있어 너무도 마음 편하고 좋다. 그런데 적잖은 문제가 있다. 우선 동생 식구들이 거의 올라오지 못하니 제관이 없고, 제관이 없으니 아버지가 올라오셔도 집사람까지 달랑 네 식구이다. 거기다 아들은 기숙사에 있어서 1년에 한두번쯤만 운좋으면 참례가 가능하다.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내가 지내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나도 창원과 울산의 지사들을 오가며 관리해야 하니 기일 맞추기가 쉽지 않고, 아흔이 넘으신 아버지가 어제까지나 참례하실 수 있으리라 보장 못하니, 언젠가 아내 혼자서 썰렁하니 제사를 지내고 있어야 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그리고 냉장고는 항상 제사 음식으로 꽉 차있다. 상당 부분 내려보내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남아 쌓이기 마련이다. 제사가 다가오면 냉장고 비우기 비상이 걸리니, 음식 처리가 고역이다. 

그리고 제사 음식 만드는 일도 그렇다. 솔직히 다 공감하지만, 제수 준비라는 게 그저 단순노동이 아닌가. 그나마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 '함께'라는 것 때문에 수고가 다소 가벼워 질 수도 있을텐데, 혼자서 꾸역꾸역하게 되면 오히려 힘은 몇 배 더 드는 법이다. 불경스럽다 할까봐 아내가 감히 겉으로 드러내어 말을 하지 않고 있어도, 그 속내를 어찌 모르겠나. 

더 문제는 '홀로 제수 준비'가 상당 기간 더 가야한다는 것이다. 아내는 친구들 여럿이 이미 손자를 봤을 정도인 환갑을 앞둔 어중간한 할마시다. 아들이 이제 고3이니 며느리가 들어올려면 아직 10년은 더 있어야 할 거다. 설사 며느리가 온다고 해도 요즘 애들이 국내에 살지 외국에 살지 훗날을 모를 일 아닌가. 그러니 내가 우찌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 기제사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볼 일이다.
기제사는 조상님들의 돌아가심을 기리는 일이니 결코 가벼이 손을 대서는 안된다. 지금 11번의 기제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9번으로 줄어든다. 이를 1년에 두어번 정도로 단촐하게 지내고, 제사가 없는 기일에는 우리 나름의 간단한 의식을 배려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당연히 제수도 대폭 줄여 안식구들의 노력과 스트레스 및 음식의 낭비도 줄일 필요가 있다.

- '명절 차례'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명절 차례'라는 게 무엇인가? '명절'은 그냥 관습이 만든 그저 '좋은 날'에 불과하다. 이런 날 별난 음식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었고, 그런 음식을 보니 조상이 생각나고 죄송스러워서 예를 차렸을 것이다. 그 예가 세월이 흐르면서 덧칠되어 지금의 과도히 무거운 '차례'로 정착된 것이다. 어제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과거 러시아에서 멀건 잔디밭에 80년 동안 초병을 세워둔 일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좋은 날' 좀더 정성들여 만든 '후손들이 먹을 음식'을 조상님들께 먼저 선보이는 것이 '차례'임을 제대로 인식하여야 한다. 그러니 '조상님들만 드실 음식'을 차리는 것은 차례의 본래 의미를 벗어난 것이다.

그래서, 우선 각 세대별로 상을 차리는 것을 단일 상으로 줄여야 한다. 이미 많은 집안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데, 우리집에서만 아버지의 고집 때문에 유지되고 있다. '차례'는 기제사와 달리 조상들에게 우리가 먹을 음식을 함께 즐기자는 의미이니만큼, 하나의 상에 조상들을 다 모셔도 전혀 흠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음식을 줄여야 한다. 특히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전은 생략하여야 한다. 전을 쓰던 풍습은 절에서 나온 것이다. 전은 제사상의 필수품이 아니라 선택품이다. 굳이 그 많은 양의 전붙이를 굽는데 고급 인력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
생선과 과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먹을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상차리기 위해 장만할 필요는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차례상의 표준은 없다. 우리가 먹을 음식을 조상님과 함께 잠시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먹고 싶은 음식을 정하고, 그에 따라 상을 차리면 된다.

- 명절에는 더 중요한 일을 하여야 한다.

명절은 국가가 정해준 휴가이다. 전국민이 동시에 쉬는 날이니, 평소 만나기 힘든 가족들이 짧든 길든 함께 지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시간들이다.

그레서 제사도 그렇지만 특히 명절은 소속원들에게 고통이나 스트레스가 아니라 즐거움과 행복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기다려지는 반가운 만남이 있고, 행복한 대화가 있고, 충만한 재충전이 있는 그런 시간이 되어야 한다. 오랫만에 가족이 모여 돌아가신 어른들을 기리면서 애들이 자라는 모습을 격려하고 서로의 삶을 축복해주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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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쪽은 “예의 근본정신을 다룬 유학 경전 <예기>의 ‘악기’에 따르면 ‘큰 예법은 간략해야 한다’(大禮必簡)고 한다”며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음식의 가짓수에 있지 않으니 많이 차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https://www.hani.co.kr/arti/well/news/1057582.html

 

명절에 전 안 부쳐도 된다…성균관이 선언했다

성균관의례위, 간소화 결정“경제부담·가족갈등 줄어들길”

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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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7255

 

부모 기일 상관없이 제사 한번에…경북 안동 종갓집도 변했다 | 중앙일보

제사 방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www.joongang.co.kr